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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르재단, 박 대통령 아이디어…최씨에게 “운영 살펴봐달라”

중앙일보 2016.11.21 01:50 종합 4면 지면보기
최순실 국정 농단 3인 공소장에 담긴 대통령 공모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20일 최순실씨를 구속 기소하면서 강요 및 강요미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를 적용했다. 미르·K스포츠재단의 설립 과정에서 전경련 회원사에 출연금을 강요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뉴시스]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20일 최순실씨를 구속 기소하면서 강요 및 강요미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를 적용했다. 미르·K스포츠재단의 설립 과정에서 전경련 회원사에 출연금을 강요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뉴시스]

최순실(60·구속 기소)씨 국정 농단 사건의 시발점이 된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은 박근혜 대통령의 아이디어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재단의 출연금을 전국경제인연합회 소속 기업들로부터 충당하려는 계획, 최씨에게 사실상 재단 운영을 맡긴 것도 박 대통령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르·K스포츠 어떻게 만들었나
대통령, 전경련 기업 통해 충당 계획
최씨, 이사장·임원 입맛대로 구성
재단 이름도 용의 우리말 ‘미르’ 작명

검찰이 20일 법원에 제출한 최순실씨, 안종범(57·구속 기소)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47·구속 기소) 전 부속비서관에 대한 공소장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지난해 7월 미르재단 설립을 구상했다. 현 정부의 ‘문화융성’ 국정기조에 맞춰 한류 확산, 스포츠 인재 양성 등을 추진하겠다는 게 골자였다. 안 전 수석은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전경련 소속사인 삼성·현대차그룹 등 대기업 총수들과 면담 일정을 조율했다. 대기업 총수 7명이 지난해 7월 24~25일 이틀에 걸쳐 박 대통령을 독대했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재단 설립에 힘써 달라”고 요청했다.

박 대통령은 안 전 수석에게 두 재단의 출연금에 대한 구체적인 액수(각 300억원)도 제시했다. 또 최씨에게 이 사실을 알리면서 “재단 운영을 살펴봐 달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최씨는 지난해 9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재단 이사장과 주요 임원진 등을 자신의 입맛대로 구성했다. ‘미르’라는 재단명은 최씨가 지었다. ‘용’의 순우리말로, 신비롭고 영향력이 있다는 뜻이었다. 지지부진하던 재단 설립은 10월 중순 이후 급물살을 탔다. 최씨가 ‘그해 10월 말로 예정된 중국 리커창(李克强) 총리의 방한에 맞춰 한·중 문화재단 간 양해각서(MOU)를 체결하자’고 묘수를 내면서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19일 안 전 수석에게 “재단 설립을 서두르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불과 8일 만에 재단 설립까지 모든 게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20일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을 구속 기소하면서 강요 및 강요미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를 적용했다. 두 사람은 미르·K스포츠재단의 설립 과정에서 전경련 회원사에 출연금을 강요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뉴시스]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20일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을 구속 기소하면서 강요 및 강요미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를 적용했다. 두 사람은 미르·K스포츠재단의 설립 과정에서 전경련 회원사에 출연금을 강요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뉴시스]

청와대 행정관 최모씨는 안 전 수석의 지시에 따라 지난해 10월 21일부터 23일까지 세 차례 회의를 했다. 전경련 직원들만 참석한 첫 회의에선 ▶재단 설립시한(10월 27일) ▶재단 규모(300억원) ▶출연기업(삼성 등 9곳) 등을 결정했다. 이튿날 두 번째 회의에선 문화체육관광부 직원들을 만나 재단 설립 허가를 당부했다. 기업 9곳의 출연금 액수도 이때 확정했다.

전경련도 빠르게 움직였다. 그 다음 날(10월 23일) 설립 허가를 위해 출연기업들로부터 출연금 동의서류 등을 받아 냈다. 정관과 창립총회 회의록도 준비했다.

하지만 청와대에서 갑작스러운 추가 지시가 내려왔다. “롯데도 출연기업에 포함시켜라.” 이에 행정관 최씨와 미르재단 직원, 전경련 관계자 등이 모두 참석한 네 번째 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최순실씨는 재단을 좌지우지하려는 속내를 드러냈다. 재단 직원을 통해 “재단 출연금의 운용 비율, 즉 기본재산과 보통재산 비율을 2대 8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애초 전경련은 이 비율을 9대 1로 정해 놨다. 재단 마음대로 쓸 수 없는 기본재산의 비중을 높여 운용의 안정성을 도모하려던 것이었다. 이날 청와대는 전경련에 “재단 출연금을 500억원으로 증액하라”는 추가 지시를 내렸다.

결국 전경련은 출연금 운용 비율과 출연금 증액 모두 최씨와 청와대의 요구를 들어야 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전경련은 참여기업들의 재단 설립 동의 날인을 다시 받아야 했다. 결국 기업 한 곳이 날인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이에 전경련은 문체부에 “재단 설립 허가신청서를 서울에서 접수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요청을 했고, 세종시에 있던 문체부 직원이 서울로 와 출장 접수를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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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출연금 총 486억원. 007작전을 방불케 한 미르재단 설립은 정확히 리커창 총리의 방한 당일(지난해 10월 27일) 오전 9시36분에 허가됐다.

최씨는 지난해 12월 설립된 K스포츠재단에 대해서도 미르재단의 설립 과정을 그대로 반복했다. 재단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고, 주요 임직원들을 직접 면접해 뽑았다. 안 전 수석은 박 대통령으로부터 이를 건네받아 대기업의 출연금 288억원을 확보했다.

윤호진·서준석 기자 yoong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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