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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 ‘하여가’ 바꿔 ‘하야가’…정유라 빗대 ‘말달리자’ 떼창

중앙일보 2016.11.21 01:34 종합 8면 지면보기
최순실 국정 농단 촛불집회와 함께한 가요
  
“그대여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 함께 노래 합시다.”

투쟁·동지 외치는 민중가요 대신
친근한 록·힙합 등 대중가요 불러

1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퇴진 제4차 범국민행동’ 촛불집회에서 가장 크게 울려 퍼진 노래는 전인권 밴드의 ‘걱정말아요 그대’였다. 사전 문화제 무대에 오른 전인권이 나지막하게 가사를 읊조리자 수만 명이 ‘떼창’을 하며 대형 콘서트 못지않은 장관을 연출했다. 힘들지만 함께 노래하자고 서로 다독이는 듯한 가사가 절제를 잃지 않는 성숙한 시위대와 잘 어울렸다. ‘상록수’를 시작으로 ‘애국가’ ‘행진’ 등도 울려 퍼졌다. 특히 전인권의 포효하는 보컬에 실린 ‘애국가’ 때에는 울컥하는 표정을 짓는 사람이 많았다.

광장을 메우는 노래들이 달라지고 있다. 집회 때면 등장하던 ‘임을 위한 행진곡’이나 ‘투쟁가’ 등 정통 민중가요·운동권 노래들이 사라지고 친근한 대중가요들이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격앙된 목소리로 ‘투쟁’ ‘동지’ ‘해방’을 외치기보다 서정성으로 대중의 마음을 달래는 포크, 촌철살인 현실 풍자로 카타르시스를 안기는 록이나 힙합, 심지어 아이돌 댄스까지 다양한 장르의 대중가요들이 ‘시위곡’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운동권 노래패가 아닌 이승환·전인권·윤도현 같은 대중가수가 집회의 메인 무대를 장식하는 것도 달라진 변화다.
앞서 지난 12일 광화문광장에서 불려진 노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인권·이효리와 함께 ‘국민 위로송’인 ‘길가에 버려지다’를 발표한 이승환은 ‘덩크슛’의 후렴구를 “주문을 외워보자/오예~하야하라 박근혜 하야하라”라고 바꿔 부르며 대중의 호응을 유도했다. 남성 듀오 십센치는 ‘아메리카노’ 중 “아메리카노 좋아 좋아 좋아” 부분을 “박근혜 하야 좋아 좋아 좋아”로 바꿔 불렀고, 펑크록 밴드 크라잉넛은 “말은 독일로 달려가는 게 아니다. 이화여대로 달려가는 게 아니다. 달려야 할 곳은 청와대”라며 히트곡 ‘말 달리자’를 불렀다. 서태지의 ‘하여가’를 “순실에게 모든 걸 뺏겨버렸던 마음이/다시 내게 돌아오는 걸 느꼈지” 등으로 개사한 ‘하야가’ 등 개사곡들도 인기였다.

지난 7월 이화여대 총장 사퇴 촉구 시위에서 처음 등장한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다만세)는 이미 대학가에 새로운 ‘저항곡’으로 자리 잡았다. 2007년 소녀시대의 데뷔곡으로 유명한 곡이다. 당시 학생들은 “모두가 알고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를 찾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밝혔다.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수많은 알 수 없는 길 속에서 희미한 빛을 난 쫓아가” 등 의미심장한 노랫말도 주효했다. 지난 12일 혜화역에서 모여 서울광장으로 행진하던 대학생들도 ‘다만세’와 빅뱅의 ‘뱅뱅뱅’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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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 음악평론가는 “과거 운동권 혹은 진보 진영 위주로 참석하던 시위 문화가 촛불집회·문화제 등으로 변모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주최 측에서도 운동 경험이 없는 10~20대의 문화적 특성을 고려해 전인권이 힙합 가수 가리온과 함께 공연하는 등 신구 세대가 공존하는 무대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강태규 음악평론가는 “평소 즐겨 듣는 노래를 함께 부르며 동질감을 형성하고, 획일화를 거부하며 개성을 표출하려는 욕구가 더해져 시위 현장에 다양한 노래들이 탄생하고 소비되고 있다”며 “시위 현장의 정서적 결집 효과로 노래만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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