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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영준의 차이 나는 차이나] “트럼프 모자도 Made in China” 뒤돌아 씩~ 웃는 중국

중앙일보 2016.11.21 01:15 종합 18면 지면보기
#1. 중국 저장성 진화(金華)의 한 고무공예품 업체 사장은 미국 대선 결과를 일찌감치 예측했다. 이 업체는 도널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 두 후보의 가면을 만들어 미국에 납품해 왔다. “가면 주문량은 후보의 인기도에 비례하는데 5월 말 이후 트럼프의 상승세가 뚜렷해져 힐러리 가면에 비해 3:2의 비율로 주문량이 많았고 50만개 이상의 차이를 냈다”는 게 이 업체 사장의 말이다. 트럼프 캠프가 선거 운동에 사용한 모자는 80%가 저장성의 물류중심지 이우(義烏)에서 공급됐다. 이 곳 상인 가운데 “중국산 제품의 수입 관세를 45% 올리겠다”는 트럼프의 공약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미국과 중국의 경제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트럼프 스스로가 잘 알고 있을 것이란 얘기다.

무역보복으로 경제 타격 있겠지만
만만찮은 클린턴보다 낫다고 판단

#2.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19일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보호무역주의의 도전과 무역 성장 정체에 직면해 있다”며 이를 타개할 대안으로 아시아태평양 자유무역지대(FTAAP) 의 조기 구축을 강조했다. 페루 리마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최고경영자(CEO)서밋의 기조연설에서다. 21개 APEC 회원국·지역을 아우르는 FTAAP는 미국 주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맞서 2006년부터 중국이 제기해 온 것이다. TPP를 대중국 포위 전략으로 간주해 온 중국으로선 보호무역주의 성향의 트럼프 당선으로 “TPP가 사망 판정을 받았다”며 반기는 분위기다. 시 주석의 행보는 이 틈을 타 중국 주도의 무역질서를 구축하겠다는 전략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트럼프 당선에 대한 중국의 시각과 대응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중국은 노골적인 표현은 자제하지만 뒤돌아 미소 짓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부담스런 상대인 클린턴의 낙선에 안도하는 모양새다. 클린턴이 당선되면 대(對)중국 포위망과 아·태 재균형 정책이 한층 더 강화될 것이란 우려 때문이었다. 가치나 원칙·명분을 내세우기 보다는 이익을 중시하는 트럼프와는 의외로 쉽게 의기투합할 수도 있다는 기대도 있다.

중국 역시 미국의 정권 교체가 몰고 올 변화가 불러올 이해 득실을 따지기 위한 주판 놓기에 분주하다. 대체적인 평가는 트럼프의 집권으로 경제에는 타격이 예상되지만 외교·안보 측면에선 나쁠 게 없다는 셈법이다. 우선 트럼프가 무역장벽을 높이면 가뜩이나 성장 둔화 상태인 중국 경제가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선거 과정에서 말한 것처럼 관세 45% 인상과 같은 극단적인 정책은 현실성이 없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러우지웨이(樓繼偉) 전 재정부장은 “비이성적”이라고 일축했다. 선단양(沈丹陽) 상무부 대변인은 “중·미 통상관계는 공동이익이 갈등보다 크기 때문에 전반적인 틀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전문가들 사이에선 트럼프 행정부의 경제 제재 카드는 수퍼301조 발동 등 제한적 수단에 머무를 것으로 본다. 관세율 인상보다는 환율 조작국 지정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더 크다.

안보 정책과 그에 따른 미·중 관계의 변화는 불확실성의 영역 속에 있다. “미국이 발을 뺀 공백을 메워 중국이 아·태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더 강화할 수 있을 것”이란 예상도 있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어떤 정책을 취할지 예상할 수 있는 아무런 기초 자료가 없다”며 신중론에 서 있다.

일각에선 트럼프가 ‘힘의 논리’를 강조하고 나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트럼프 진영에는 군비 증강을 주장하는 강경파들이 포진해 있어 향후 국방정책이 어떻게 짜질지 주목거리”라며 “차기 해군장관으로 거명되는 랜디 포브스 하원의원은 250척 수준인 해군 주력 전투함을 350척으로 늘리자는 군비 증강론자”라고 말했다. 이런 정책이 짜이면 미·중 갈등은 더욱 첨예해 질 수 있다.

중국이 결코 용인할 수 없다고 주장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도 트럼프가 양보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궈루이(郭銳) 지린대 교수는 “트럼프 역시 군수산업체와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만큼 사드 배치를 반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요인들을 종합하면 트럼프의 당선으로 중국에 ‘안보는 득, 경제는 실’이란 예상은 표면적인 셈법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예영준 베이징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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