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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껏, 편견 없이 내 길 가는 얘기 담았다”

중앙일보 2016.11.21 01:06 종합 21면 지면보기
여성성을 강조하는 시를 많이 써온 문정희 시인. 새 산문집 『치명적 사랑을 하지 못한 열등감』에 예술과 인생의 반짝이는 순간들을 담았다. 문씨는 “여성으로 태어난 건 축복”이라고 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여성성을 강조하는 시를 많이 써온 문정희 시인. 새 산문집 『치명적 사랑을 하지 못한 열등감』에 예술과 인생의 반짝이는 순간들을 담았다. 문씨는 “여성으로 태어난 건 축복”이라고 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제목은 ‘치명적 사랑을 하지 못한 열등감’, 뒷면 표지에는 ‘나의 펜은 페니스가 아니다, 나의 펜은 피다’라는 처절한 느낌의 문장이 인쇄돼 있다. 시인 문정희(69)씨의 새 산문집 『치명적 사랑을 하지 못한 열등감』(문예중앙) 얘기다. 이렇게 ‘센’ 구절들을 서슴지 않고 사용하는 국내 문인은 많지 않다. 이는 문씨가 그만큼 거침 없이 살아왔다는 얘기다. 1969년에 등단, 50년 가까이 시를 써온 문씨는 어떻게 여전히 뜨거운 것일까.

산문집 『치명적 사랑…』 낸 문정희
“자궁은 여성의 것 아닌 인류 상징
개인적 차원 넘는 예술 사랑 고백
페미니즘에 날 가두는 건 음모”

지난 15일 문씨를 만났다. 그는 곧 일본에서 열리는 시카다상 국제 심포지움 참석을 앞두고 있었다. 스웨덴의 노벨문학상 수상 시인 해리 마르틴손(1904∼78)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2004년 제정된 시카다상은 동아시아 시인들에게 주어진다. 국내에서는 문씨 외에 고은·신경림 시인이 받았다. 문씨는 “남성성에 대결적인 의미의 여성성이 아니라 생명주체로서 여성성을 표현한 내 시를 낭송하고 그에 대해 얘기할 예정”이라고 했다. 심포지움에는 노벨상 후보로도 거론되는 중국 시인 베이다오도 참석한다고 했다.
생명과 여성성의 연결이 새롭지는 않다.
“자궁은 여자의 몸에 있지만 단순히 여자의 소유물이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인류의 자궁이다. 생명을 생산하는 대지모(大地母)적인 여성성을 다루는 게 세계적으로 시의 중요한 테마로 자리잡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겠다는 거다.”
산문집 뒷표지 문장 ‘나의 펜은…’도 그런 맥락인가(※‘펜은 페니스’는 문학에서의 남성 우월주의를 뜻한다).
“여성들에게는 피는 무기다. 한 달에 한 번씩 피를 보며 아이·생명을 만든다. 피를 자주 보기 때문에 여성들이 질기고 강인하다는 얘기도 있다. 그런 점에서 여성은 예술가적인 원형질을 갖췄다. 시인으로서 여자로 태어난 건 축복이다.”
산문집 제목도 강렬한데.
“마음껏 자유롭게 살겠다, 편견 없이 내 길을 가겠다, 그런 얘기를 주로 담았다.”

산문집 제목의 ‘치명적 사랑’은 이성간의 사랑만을 뜻하지 않는다. 평소 흠모해온 시인 김지하를 사례로 들어 문학사와 생애사, 작품과 정치적 언행이 일치하는, 개인의 예술 차원을 뛰어넘어 대의를 위해 자신 전체를 온전히 불태우는 삶을 살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낸 문장이다. 그러니까 산문집은 사적인 내면 고백이 아니라 프리다 칼로, 마르케스 등 문씨가 사랑하는 예술가들에 대한 애정 고백, 그들이 남긴 흔적과 마주친 과정, 그 속에서 싹튼 예술혼 등을 촘촘하게 기록한 책이다.
주로 페미니즘의 입장에서 강렬한 작품들을 써왔는데.
“사람들이 나를 늘 페미니즘 문학 안에 가두려고 하는데 음모다.”
요즘 최순실 사태는 어떻게 보나.
“구시대의 유산이 아직 해결되지 않은 탓이다. 언어에는 과거의 시간과 역사가 겹쳐지기 마련이다. 지도자라는 사람이 구사하는 언어 용량이라는 게 너무 한정돼 있고 황당하고 유치할 정도다. 그건 그 사람의 사유, 사고 역량이 그렇다는 뜻이다. 그런 개인의 문제이지 여성 대통령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 와중에 문단도 성추문으로 시끄럽다.
“과거와 달리 여성들은 성추행을 고발하는 시대가 됐는데 남자들은 아직 준비가 안 돼 있는 것 같다. 자칫하면 남자가 피해자가 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성추행은 범죄라는 명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일탈과 광기에 관대한 문학의 특성을 들어 어물쩡 넘어갈 일이 아니다. 작가가 되겠다면서 누군가에게 배워서 글 쓰겠다는 것도 나는 아니라고 본다. 글은 혼자서 쓰는 거다. 어디 정해진 시 작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가슴이 아프다.”
글=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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