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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손 안 잡은 김연아, 왜 그랬는지 알겠네

중앙일보 2016.11.21 01:00 종합 26면 지면보기
최순실 국정 농단 스포츠 영웅들도 피해
김연아(왼쪽)가 지난해 8월 광복 70주년 국민대합창 행사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김연아는 당시 박 대통령이 잡은 손을 슬며시 놓고 시선을 피해 논란을 일으켰다. [뉴시스]

김연아(왼쪽)가 지난해 8월 광복 70주년 국민대합창 행사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김연아는 당시 박 대통령이 잡은 손을 슬며시 놓고 시선을 피해 논란을 일으켰다. [뉴시스]

온나라를 들끓게 한 ‘최순실 게이트’ 의 불똥이 ‘마린보이’ 박태환(27)과 ‘피겨 여왕’ 김연아(26) 등 스포츠 영웅들에게 튀었다. 최순실 국정농단 스캔들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김종(55) 전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이 부당한 요구를 하거나 막후 역할을 한 정황이 포착됐다.수영 국가대표 박태환의 측근은 20일 “김 전 차관이 지난 5월 박태환 및 소속사 관계자들과 만나 ‘올림픽 출전을 포기하면 뒤를 봐주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며 “박태환 측은 대화내용을 담은 음성 파일을 조만간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녹취록에 따르면 김 전 차관은 “(모교 단국대에서) 교수해야 할 것 아냐?”라고 말했다. 박태환의 올림픽 출전 포기 대가로 차후에 교수 임용을 위해 힘을 써주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내용이다. 김 전 차관은 “‘금메달 땄으니까 광고 주시오’하면 광고가 들어와? 체육회에서 인정하지 않으면 어느 광고주가 태환이한테 붙겠느냐 이거야”라며 스폰서십을 알아봐주겠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또 2014년 소치 올림픽 직전 러시아로 귀화한 쇼트트랙 선수 안현수(빅토르 안)를 거론하며 “안현수가 금메달을 따고 러시아에서 인정받아? 걘 그냥 메달 딴 애일 뿐이야. 국민은 금방 잊어요”란 말로 거듭 박태환 측의 결단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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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 차관 “교수해야 할 것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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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환은 2014년 말 금지약물 복용 사실이 적발돼 국제수영연맹(FINA)으로부터 18개월 간의 자격정지 징계를 받았다. 지난 3월 징계가 끝났지만 대한체육회는 ‘징계 만료 후 3년간 국가대표 선발 불가’ 규정을 내세워 박태환을 국가대표로 선발하지 않았다. 김 전 차관과 만날 당시 박태환은 리우 올림픽 출전을 위해 국내 법원과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소송을 준비하고 있었다. 박태환의 올림픽 출전 여부가 국내외에서 큰 관심을 끌던 시기였다.

이후 박태환은 김 전 차관의 제의를 거절하고 올림픽 출전을 강행했다. ‘박태환의 올림픽 출전을 막는 건 부당하다’는 법원의 가처분 판정을 근거로 국가대표 지위를 회복했지만 컨디션 조절에 실패해 메달을 따내지는 못했다. 자유형 400m와 200m 모두 예선에서 탈락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문체부가 박태환을 주저앉히려 한 건 ‘스포츠 비리 척결’ 정책의 명분 쌓기용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문체부는 최순실의 딸 정유라를 승마 국가대표로 만들기 위해 승마협회를 압박하는 과정에서 ‘스포츠계를 장악하기 위해 고질적인 비리가 심각하다’며 각종 처벌 규정을 강화했다.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의원 시절 주최한 행사에 박태환이 참석하지 않아 미운털이 박혔다는 증언도 있다”고 말했다.
박태환이 지난 5월2일 인천시청에서 리우 올림픽 출전을 허용해 달라며 사죄의 뜻으로 큰절을 하고 있다. 김종 전 문체부 차관은 5월25일 박태환 및 소속사 관계자들을 만나 올림픽 포기를 종용했다. [뉴시스]

박태환이 지난 5월2일 인천시청에서 리우 올림픽 출전을 허용해 달라며 사죄의 뜻으로 큰절을 하고 있다. 김종 전 문체부 차관은 5월25일 박태환 및 소속사 관계자들을 만나 올림픽 포기를 종용했다. [뉴시스]

‘피겨 여왕’ 김연아도 ‘최순실 게이트’의 피해자로 주목받는다. 최순실의 최측근 차은택이 개발을 주도한 늘품체조 시연회에 불참해 정부에 미운털이 박혔다는 주장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14년 11월 열린 늘품체조 시연회에 참석해 체육계 스타들과 함께 체조를 따라했다.
손연재(리듬체조)·양학선(기계체조) 등 국가대표 선수들이 참석했지만 당시 김연아는 ‘평창 올림픽 홍보 일정이 빡빡하다’는 이유로 불참했다. 최순실의 조카 장시호의 측근은 늘품체조 시연회가 끝난 이후인 2015년 초 장시호에게서 “김연아가 문화체육관광부에 찍혔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증언했다지난해 8월1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광복 70주년 행사에서 박근혜 대통령 옆에 섰던 김연아가 대통령이 잡은 손을 슬며시 놓은 것과 시선을 피하는 듯한 행동을 한 것도 이런 배경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교롭게도 김연아는 지난해 9월 체육회가 선정한 ‘2015년 스포츠 영웅’ 최종 심사에서 제외됐다. 12명의 후보 중 인터넷 투표에서 82.3%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지만 체육회는 ‘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김연아를 후보자 에서 제외했다. 이후 국정감사를 통해 스포츠 영웅 선정위원회가 ‘후보자를 50세 이상으로 제한하자’고 의견을 모아 김연아를 떨어뜨린 사실이 드러났다. 배후에 김 전 차관이 있다는 의혹도 함께 제기됐다. 김연아는 1년 뒤인 올해 스포츠 영웅으로 선정됐다.

지난 9월 평창 조직위원회가 공개한 평창올림픽 기념주화 중 단독 주화에 피겨스케이팅이 빠진 것도 논란이다. 피겨스케이팅은 동계 스포츠의 상징적인 종목으로 여겨지는데다 평창 올림픽 유치 과정에 김연아가 기여한 점 등을 감안하면 피겨스케이팅이 단독 주화로 제작되지 않은 건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이것도 김연아에게 미운털이 박혔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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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한 스포츠 관계자는 “정부가 김연아를 활용해 동계 스포츠 활성화 프로젝트를 기획했지만 선수 측이 고사해 무산된 것으로 안다”면서 “K스포츠재단, 동계스포츠영재센터 등 최순실 일파가 평창 올림픽을 활용해 동계 스포츠 이권 사업에 뛰어들려했던 정황과 맞물려 있다”고 주장했다.

송지훈·박린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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