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소영의 컬처 스토리] 양극화 시대의 그림, 이삭줍기

중앙일보 2016.11.21 01:00 종합 28면 지면보기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부장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부장

지금 서울 예술의 전당에는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서 날아온 ‘이삭줍기’가 걸려 있다. (사진1) 어릴 때부터 들어온 옛 이야기처럼 익숙하고 정답고 그만큼 뻔하기도 한 명화. 하지만 1857년 장-프랑수아 밀레가 이 그림을 발표했을 때, 평론가들은 이 온화한 그림이 ‘위험하고 선동적’이라고 했다. 왜 그랬을까? 졸저 『그림 속 경제학』의 몇 구절을 인용해본다“일단 이삭 줍기라는 테마 자체가 당시에는 심상치 않게 받아들여졌다. 먼 옛날부터 추수가 끝난 뒤에 이삭을 줍고 다니는 사람은 자신의 농지가 없어서 주운 이삭으로 배를 채워야 하는 최하층 빈민이었으니까. 밭 주인이 추수 때 땅에 떨어진 이삭을 줍지 않고 이런 사람들을 위해 그냥 내버려두는 게 일종의 원시 사회보장제도였다.”
이삭 줍기(1857), 장-프랑수아 밀레 작, 캔버스에 유채, 83.8×111.8㎝,  오르세 미술관, 프랑스 파리

사진1. 이삭 줍기(1857), 장-프랑수아 밀레 작, 캔버스에 유채, 83.8×111.8㎝, 오르세 미술관, 프랑스 파리

“그러니 밀레의 그림 속 여인들은 자기 밭에서 이삭을 줍는 것이 아니라 남의 밭에서 품을 팔고 품삯으로만은 모자라 이삭을 줍는 가난한 아낙네들일 것이다. 그들의 얼굴과 손은 땡볕 아래 고된 노동의 결과로 검붉게 그을렸고 거칠고 투박하다. 맨 왼쪽에 있는 여인은 이삭을 쥔 팔을 등에 댄 걸로 보아 허리가 아픈 모양이다. (사진2) 하루 종일 넓은 밭을 헤매며 고개를 숙여 이삭을 찾고 허리를 굽혀 주워야 하니 오죽 온몸이 뻐근할까.”
사진2. 보는 사람까지 허리가 아파지는 여인들의 고된 노동

사진2. 보는 사람까지 허리가 아파지는 여인들의 고된 노동

“평론가들은 ‘이삭 줍기’를 불편하게 여겼다. 일단 농민 여성이 ‘마치 운명의 세 여신처럼’ 화면을 압도하며 무게 있게 등장하는 게 그들에게는 어딘지 위협적이었다.
사진3. 전경과 대조되는 원경의 풍요로운 풍경

사진3. 전경과 대조되는 원경의 풍요로운 풍경

게다가 이들의 굽힌 등 너머로 저 멀리 보이는 풍경이 문제였다. (사진3) 거기에는 늦은 오후의 햇빛을 받아 황금색으로 풍요롭게 빛나는 곡식 낟가리들과 곡식을 분주히 나르는 일꾼들, 그들을 지휘하는 말 탄 감독관, 즉 지주의 대리인이 있다. 반면에 여인들은 기울어진 햇빛을 등지고 서서 어둑어둑해지는 밭에서 자잘한 이삭을 찾고 있지 않은가.

이 조용하면서도 드라마틱한 대조야말로 빈부격차를 고발하고 농민과 노동자를 암묵적으로 선동하는 것이라고 당시 비평가들은 생각했던 것이다.”

사실 이것은 과민반응이었다. 밀레는 그 자신과 동료 화가들이 밝혔듯 정치적이기보다 종교적인 화가였고, 그가 나타내려 한 것은 농민의 노동에 대한 깊은 애정과 존경, 자연에 대한 서정이었으니까. 그러나 동시에 그는 현실도피나 감상주의에 빠지는 화가가 아니어서, 그가 직접 체험한 농민의 고된 현실을 정확히 포착했다. 그 온화한 화면에 깃든 한 줄기 예리함이, 19세기 중반 사회 갈등이 폭발하던 프랑스에서, 보수적 평론가들을 불편하게 하고 빈부격차 문제를 제기하던 사회 운동가들을 열광하게 했던 것이다.

뛰어난 고전은 시공간을 초월해 담론을 낳는다. 지금 서울에 온 ‘이삭줍기’를 보며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게 될까? 지난주 통계청의 ‘3분기 가계동향’ 발표를 보니 상위 20%와 하위 20% 간 소득 격차가 다시 악화됐다. 게다가 최순실 게이트는 10월 말 중앙선데이 헤드라인의 표현대로 ‘노력하면 성공하는 나라’에 대한 믿음을 산산조각 냈다. 지금 한국의 정치는 거기에 어떤 답을 하고 있는가?

코리아중앙데일리 부장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