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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트럼프 통상정책의 오류와 위험

중앙일보 2016.11.21 01:00 종합 29면 지면보기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당선으로 지난 30년간 대부분 대통령 출신 당과 의회 다수당이 유리되어 일종의 여소야대 구조로 운영돼 오던 미국 정치의 틀이 깨졌다. 특히 전통적 민주당 텃밭이라 여겨지던 중북부 러스트벨트까지 트럼프 후보 지지로 돌아서면서 좌충우돌하던 정치 신인이 미 대선에서 압승을 거둔 점은 가히 충격적이다. 표면상 공화당의 완전한 승리처럼 보이는 이번 선거 결과는 사실 주류 공화당 정치인들도 거의 포기한 민중 후보에 대한 미국 시민들의 열광적 지지라는 면에서 향후 공화당 당적의 대통령과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와의 쉽지 않은 공생 관계를 예고한다.

위대한 미국의 재건을 표방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경제정책, 특히 통상정책은 미국 패권주의의 부활을 의미한다. 트럼프 당선인은 미국을 대상으로 무역흑자를 쌓는 국가를 모두 기만적으로 불공정 무역을 하는 범죄국가로 취급하면서 미국의 무역적자 시대를 끝내겠다고 선언해 왔다.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목하면서 무조건 4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미국의 일자리를 빼앗은 나쁜 무역협정으로 거론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상징인 애플 제품의 시장경쟁력 기반이 중국 생산기지에 있고, FTA 체결 이후 한국 기업들의 대미 투자로만 1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만들어진 현실은 외면한 때문이다.

당장 내년 초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면 이번 선거의 일등공신이 된 무역 정치 공세의 시범 사례들이 쏟아져 나올 것으로 우려된다. 대선 지지에 화답하는 차원에서 러스트벨트에 집중된 산업 분야와 무역수지 적자가 많은 부문에 대해 과도한 수입 제한 조치가 부과될 소지가 크다. 또한 공화당 지지 기반 주들에서 생산되는 수출 농산물 분야에서도 통상압력이 커질 것이다. 환율조작 문제도 선거 과정에서 핵심 무역 쟁점으로 거론한 만큼 환율 인상 압박에 대비해야 한다. 향후 예상되는 평가절상 기조는 거시적으로 무역 구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인 반면 우리 산업계의 아킬레스건이라 보다 근본적인 산업계의 대책이 필요하다. 최근 세계무역기구(WTO) 소송과 FTA 이행 문제로 한·미 간 통상마찰이 고조돼 온 점을 감안하면 우리가 정권 초기 통상압력의 희생양이 될 소지가 높아 산업계는 특히 해외시장 관리에 주의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 통상정책의 시금석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향방이다. 트럼프 후보가 줄곧 주창한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무역협정의 최정점에 있는 것이 TPP인 점을 감안하면 과연 이를 폐기할지 아니면 11개 회원국들과 트럼프식 TPP로 수정하는 외교정치적 수완을 발휘할 수 있을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오바마가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공을 들이고, 사생결단으로 오바마의 모든 정책을 걸고넘어지던 공화당도 이 부분에 대해서만은 동의해 협상 권한을 부여해 타결시킨 것이 TPP다. 이제 중국에 대해 무역 불공정 문제로 각을 세우는 트럼프 당선인이 중국에 대한 가장 강력한 경제적 무기인 TPP를 파기하겠다는 정치적 자충수를 어떻게 풀어 갈 수 있을지가 향후 국정 운영의 화두가 될 것이다. TPP를 토대로 중국을 배제한 서비스무역협상을 통해 급속히 디지털화돼 가는 서비스 교역 규범을 강화해 디지털 무역의 패러다임을 구축하려는 미국의 포석까지 전면적으로 재검토될 처지이기 때문이다.

TPP의 파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신무역질서에 배제됨으로써 가장 큰 피해를 우려하던 중국·한국 등 비참여국에는 다행인 반면, 오바마 정권에서 동맹 관계를 강화해 온 일본에 도리어 치명타를 입히는 형국이다. 실제로 위대한 미국 재건의 기치하에 부활하는 패권주의의 말로는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공들여 발전시켜 온 다자주의 체제의 약화와 미국 패권주의 부활은 국제사회에서 미국에 대한 반발만 키워 결국 중국의 부상을 더욱 촉발하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남은 국방안보 분야의 절대우위 지위조차 방위비 분담이라는 명분하에 허물게 되는 경우 미국 패권의 장래는 매우 불투명하다.

미국의 정치 상황이 어떤 형태로 전개되건 우리의 통상 환경은 매우 악화될 전망이다. 그것도 수개월이 아니라 수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주의로 엎친 데 이어, 중국 경제성장 둔화와 사드 배치, 그리고 브렉시트까지 덮치는 형국이다. 대외 통상에 산업의 명운을 걸고 있는 우리로서는 위기 관리 차원이 아니라 보다 중장기적인 생존 전략 마련에 나서야 한다.

정부는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조속히 산관 대응 체제를 구성해 무역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신속히 감지해 협상이건 소송이건 적시에 대응책을 발동해야 한다. 앞으로 정치외교적 통상압력이 한층 거세질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경제통상외교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작업도 서둘러야 한다. 또한 산업계는 제품 경쟁력 강화 노력에 더욱 매진해 외국 정부의 통상압력이 미치지 못하도록 시장 경쟁을 선도해 가야 한다. 거친 통상 무대에서 생존하고 성장하는 비결은 정부 대책이 아니라 결국 기술력에 달려 있다.


안 덕 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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