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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완장을 슬며시 내려놓는 내부역자들

중앙일보 2016.11.21 01:00 종합 30면 지면보기
장혜수 JTBC 디지털뉴스룸 부장

장혜수
JTBC 디지털뉴스룸 부장

# 부역자

그때는 ‘체육 대통령’이었고 지금은 ‘최순실의 부역자’다.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얘기다. 지난 18일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아직 의혹이고 혐의일 뿐이라도 이를 전제로 얘기하는 게 부당하지 않다. 의혹과 혐의가 너무 많다. 또 구체적이다.

‘최순실 게이트’가 수면으로 떠오른 직후 김 전 차관은 “최순실을 모른다”고 했다. 그런 그가 사실상 최씨 소유인 더블루K, 최씨의 조카 장시호씨 소유인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를 부당 지원하는 데 발 벗고 나섰다. 평창 겨울올림픽 준비 등 많은 체육 관련 업무를 ‘최씨 일가 이익 극대화’에 맞춰 추진했다. 결국 검찰에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으로부터 최순실을 소개받았다”고 털어놨다.

어디 그뿐인가. 그는 ‘체육계 비리 척결’을 내세워 최씨 일가 심기 경호에도 나섰다. 최씨의 딸 정유라씨가 승마대회에서 2위를 하자 승마계를 비리 집단으로 몰아 애먼 사람들을 내쳤다.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이 슬퍼할 때도 그는 최씨의 심기만 살폈다. 문체부가 앞장서서 ‘도핑과 대한체육회 규정’을 이유로 박태환의 리우 올림픽 출전을 반대했던 것도, 내심은 ‘비리 척결’을 내걸고 저질러 온 자신들의 ‘비위’에 정당성을 부여하려 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한 일을 “통상적 업무”라고 강변해 왔다. 한 부처의 차관이 국가 이익에 반해 사인의 이익을 위해 봉사해 놓고 말이다. ‘부역자’는 사전에 ‘국가에 반역이 되는 일에 동조하거나 가담한 사람’이라고, ‘반역’은 ‘국가나 주권자(국민)를 배신하는 행위’라고 각각 나온다.

# 내(內)부역자들

김 전 차관은 취임 직후인 2013년 9월 언론사 스포츠부장들과 점심 식사를 했다. 참석자들은 프로야구단 프런트로 출발해 스포츠마케팅 전공 대학 교수를 거쳐 문체부 차관에 오른 그에게 애정 어린 축하를 했다. 한 참석자는 “공무원들 텃세가 심할 텐데 참으면서 꿋꿋이 버티시라”는 염려 섞인 충고까지 했다.

얼마 안 가 “김종이 문체부에선 장관보다 실세”라는 말이 들렸다. 그가 청와대 ‘문고리 3인방’ 쪽에 줄을 선 것이라는 ‘찌라시’급 풍문도 돌았다. 내부자인 문체부 공무원들한테야 이런 역학 관계가 얼마나 잘 보였을까. 2014년 12월 국회 교문위에서 정윤회씨의 승마협회 인사 개입 논란이 일었다. 당시 한 문체부 공무원이 김 전 차관에게 ‘여야 간 싸움으로 몰고 가야’라 적힌 쪽지를 건넸다가 딱 걸렸다. 나름 실세 차관을 챙기려 한 거란 의심을 버릴 수 없다. 김 전 차관은 또 올 상반기 내내 체육단체 통합 작업에 집착했다. 대의와 별개일 김 전 차관의 저의를 많은 체육계 인사가 의심했다. 그런 상황에서 여러 사람이 ‘완장’을 차고 통합 작업에 앞장섰다. 그렇게나 세심히 김 전 차관의 뜻을 살피던 이들이 잠잠하다. 체육계에선 “이미 말을 바꿔 탄 이도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말을 바꿔 타 봐야 내부자와 부역자를 합친 ‘내부역자’가 누군지 이미 서로 다 알 텐데 말이다.

장 혜 수
JTBC 디지털뉴스룸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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