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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진정한 ‘우리은행’으로 거듭나려면

중앙일보 2016.11.21 01:00 경제 8면 지면보기
박진석 경제부 기자

박진석
경제부 기자

2000년9월27일 늦은 밤. 한 중년 신사가 서울 서초동 서울지검(현 서울중앙지검) 중앙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피곤한 표정도 잠시, 취재진을 보고는 얼어붙었다. 몇 초의 침묵이 흐른 뒤 그는 냅다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로비 한가운데에 있던 제일 큰 문을 몸으로 힘차게 밀었다. 일몰 후 그 문이 잠긴다는 사실을 모른 채 말이다. 그는 큰 소리를 내며 문에 부딪힌 뒤 그대로 튕겨져 나왔다.

정말로 민망한 그림은 다음에 나왔다. 그는 어둠 속에 갇힌 시각장애인처럼 손으로 유리를 하나하나 더듬어 가며 문을 찾기 시작했다. 수십 미터를 유리와 씨름하던 그는 겨우 열린 곳을 찾아내 간신히 도주할 수 있었다. 그는 한빛은행 불법대출 사건 연루 의혹으로 소환된 금융회사 임원이었다. 한빛은행은 외환위기의 와중에 상업은행·한일은행을 합치고 공적자금을 쏟아부어 만든 은행이다. 하지만 출범 직후 이 사건에 연루돼 이미지에 치명상을 입었다.

당시 한빛은행이 정권 실세의 외압에 굴복해 그의 친척이 운영한다는 무자격 업체에 1000억원 이상의 불법대출을 해줬다는 게 의혹의 요지였다. 한빛은행 지점장이 대출 과정에 돈을 받았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은행 내부 감사 기능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모두 외환위기의 와중에 자력갱생하지 못하고 국가의 돈을 받아 연명했다는, 한빛은행의 정체성과 무관치 않은 문제점들이었다. 이후 십여 년간 한빛은행, 그리고 그 후신인 우리은행은 ‘정부 소유 시중은행’이라는 이율배반적 구조 하에서 수시로 정체성에 대한 문제점을 노출했다.

이런 우리은행이 드디어 민간 은행으로 탈바꿈한다. 한화생명·한국투자증권·동양생명 등 7명의 주인들이 ‘집단 대주주’가 된다. 우리은행 임직원들로서는 민영화 숙원을 어느 정도 푼 셈이다. 진정한 승부는 이제부터다. 정부 소유 은행이라는 건 족쇄인 동시에 면죄부로 작용하기도 했다. 정부를 핑계삼아 부실한 실적이나 낙하산 인사에 대한 비판을 피할 수 있었다. 이제는 방패 없이 맨몸으로 야전을 치러야 한다. 시중에는 우리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 같은 알짜 계열사를 다 팔아치운 우리은행의 경쟁력을 의심하는 시선도 분명하게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영 우리은행은 성공해야 한다. 우리은행은 국민이 12조원의 혈세를 투입해 살려낸 은행이다. 고만고만한 시중운행 하나 더 갖자고 국민이 희생을 감수한 게 아니다. 부디 각고의 노력으로 먼 훗날 국민이 이구동성으로 “살려내길 잘했다”고 뿌듯해 할, 진정한 ‘우리은행’으로 거듭나길 기원한다.


박진석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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