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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뒷담화] 구르미 그린 달빛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윤이수 작가

중앙일보 2016.11.21 00:01
소설가 윤이수를 만나고 온 날이었다.
저녁 모임에 함께한 이들에게 윤이수 작가를 아는지 물어봤다.
아무도 아는 이가 없었다.
<구르미 그린 달빛>의 원작자라고 일러줬다.
하나같이 그 작품은 알고 있었다.

나 또한 취재기자가 인터뷰를 통보해 왔을 때 그들과 마찬가지였다.
‘윤이수’라는 이름조차 생소했다.
<구르미 그린 달빛>의 원작자라는 말에야 “아!”라는 소리가 났었다.

시청률이 20퍼센트가 넘는 인기드라마라 화제가 된 터였다.
마침 바로 전날 그 드라마의 주인공인 박보검의 사진을 찍었었다.
예닐곱의 기자가 한꺼번에 사진을 찍어야 하는 라운드인터뷰였다.
백여 명의 팬들까지 몰려와 사진 찍는 것을 지켜보는 상황이었다.
그들의 손에는 휴대폰카메라가 준비되어 있었다.
예닐곱의 기자와 백여 명의 팬, 거의 사진 촬영대회 수준이었다.

그간 많은 연예인 촬영을 했었지만 인터뷰 장소에 이렇게 많은 팬이 몰려든 건 없었다.
지난해도 박보검의 촬영을 한 적 있었다.
그때도 여러 기자가 한꺼번에 사진을 찍어야 했지만 팬들이 몰려들지는 않았었다.
과연 <구르미 그린 달빛>이 낳은 ‘박보검 신드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윤이수 작가를 만난 장소는 파주 헤이리였다.
그곳으로 가며 검색을 해봤다.
<구르미 그린 달빛>의 원작은 네이버에서 연재된 웹 소설로 누적조회수가 5000만에 이를 정도였다.

5000만이라는 숫자에 적잖이 놀랐다.
솔직히 웹 소설을 한 번도 본 적 없었다.
그런데 5000만의 누적조회수가 나오는 다른 세상이 존재하고 있었던 게다.
그만큼 원작자인 윤 작가는 그 세상의 최고 인기작가였다.
일러 준 주소로 가니 까페였다.
실내가 어둑했다.
윤 작가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웹 소설을 본 적도 없지만 웹 소설가를 만난 것도 처음이었다.
새로운 분야,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이니 인터뷰를 새겨 들어야 했다.

먼저 웹 소설에 대해 윤 작가가 이야기를 했다.
“일주일에 두 번 연재를 하니 쉽지는 않습니다. 독자들과 퍼즐 맞추듯 해나가는 작업이죠. 이것이 웹 소설이 가지는 장점입니다. 독자들과 피드백이 있기는 하지만 가장 큰 줄기는 바뀌지 않습니다.”
취재기자가 역사소설을 연이어 쓰는 이유를 질문했다.
<구르미 그린 달빛> 이후 윤작가는 <해시의 신루>라는 웹 소설을 연재해왔고 또 그것이 책으로 출간된 터였다.
“좋은 환경에서 자란 거 같아요. 강원도 평창입니다. 좋은 선생님들이 많았어요. 공부보다는 만약이라는 가정하에 토론을 많이 하게 해줬어요. 이를테면 ‘내가 만약 연산군이라면’이라는 가정하에 다른 친구들과 토론을 하곤 했죠. 학창시절부터 이런 역사관이 재미있었어요,”

그러면서 윤 작가가 <구르미 그린 달빛>의 탄생 뒷얘기를 이었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좋은 작품을 만나는 건 운명인 거 같아요. 전시를 보다가 모티브를 얻었어요. ‘홍운탁월(烘雲托月)’ 기법으로 그린 그림이었어요. 직접 달을 그리지 않고 구름을 그려 달빛을 표현하는 것이었어요. 재미있다고 생각했어요. 구름은 백성, 달은 군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홍운탁월’이라는 말을 메모했다.
사실 드라마의 제목을 보고 꽤 독특하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 제목이 ‘홍운탁월’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한번은 창덕궁 낙선재에 놀러 갔는데 문화해설사가 조선시대 최고의 꽃미남이 헌종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헌종에 대해 쓰려고 자료를 찾아봤어요. 헌종이 나이가 들어 당신의 아버지를 회상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그 아버지 또한 최고의 미남이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어요. 바로 효명세자였죠. 사실 실록에 나오는 부분은 한두 줄입니다. 그런데 저는 여백이 있어서 좋아요. 한 줄로 미루어 상상을 할 수 있는 여백이요.”

‘한 줄로 미루어 상상을 할 수 있는 여백’이란 말 또한 메모를 했다.
그때부터 ‘홍운탁월’과 ‘여백’이란 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러면서 윤 작가의 사진을 구름과 함께 찍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름과 함께라면 자연스레 여백의 메시지도 사진에 담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늘의 구름이 궁금했다.
잠깐 바깥으로 나왔다.
온 하늘이 잿빛이었다.
비를 머금은 듯했다.
사진의 배경으로 하기엔 마땅치 않았다.
기러기 오가는 잿빛 하늘만 한참 바라보다가 다시 까페로 들어섰다.

다시 윤작가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산후 우울증이 있었어요. 우울한지 슬픈지 구분할 수도 없이 빠져 들었습니다. 그것을 극복하려고 글을 썼어요. 그냥 글이 좋아요. 그 안에 들어가 있는 게 좋습니다. 그 안에선 제가 신이잖아요. 제가 여기서 위로를 받듯 그렇게 제 글에서 위안을 받는 사람이 많더라구요. 처음으로 제가 밥값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윤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떻게든 구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바깥으로 나왔다.
제 아무리 잿빛하늘이라도 그 안에서 해결책을 궁리할 작정이었다.
나오자마자 앞 산과 하늘의 경계에 밝은 빛이 비쳐 드는 게 보였다.
기다렸다.
하늘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다.
비를 머금은 듯 온통 잿빛이었던 구름이 언제 그랬냐는 듯 햇빛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홍운탁월(烘雲托月)은 아니지만 홍운탁일(烘雲托日)이었다.
‘구르미 그린 햇빛’이었다.
그때 취재기자가 바깥으로 나오더니 인터뷰가 끝났다는 신호를 줬다.
구름이 그려내는 하늘에 빠져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던 게다.
까페로 들어가 서둘러 몇 장의 사진을 찍고 바깥으로 나왔다.
또 하늘이 어찌 변할 줄 모르니 맘이 급했다.
그새 구름은 또 따른 그림을 그려내고 있었다.
구름을 배경으로 선 윤 작가가 내게 물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이야기의 신처럼 서 계시면 됩니다.”

농담처럼 들렸는지 윤 작가가 민망한 듯 한참을 웃었다.
사실 농담으로 한 말이 아니었다.
그는 구름이 그린 달빛과 한 줄 실록의 여백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작가가 아니던가.
적어도 그의 이야기 안에서는 그러하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한 말이었다.

사진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에서 그의 마지막 말을 메모했다.
구름을 살피느라 미처 메모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사는 게 팍팍한데 이야기 속에서 위로와 위안을 얻었으면 합니다. 세상이 좀 따뜻해졌으면 좋겠네요. 이 우울한 시기에….”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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