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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 한나절 숙성시킨 회, 활어보다 감칠맛 10배 입에 착착 감기네요

중앙일보 2016.11.18 03:00 종합 20면 지면보기
한국식 선어·숙성회 유행…가격 부담 없어 혼술족에게 인기

숙성 음식 전성시대다. 수 세기 전통을 이어온 장·김치 이야기가 아니다. 고기도 숙성이 유행이다. 소·돼지고기뿐 아니라 생선회도 숙성해 먹는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 감칠맛 나고 차진 숙성회를 먹기 위해 전남 여수, 경남 통영 같은 어항이나 값비싼 일식 횟집을 찾지 않아도 된다. 서울에서도 선어회·숙성회를 다루는 대중식당·술집이 많이 생겼다. 그동안 활어만 팔던 노량진·가락 수산시장에서도 숙성회를 다루는 집이 늘고 있다.
숙성회 는 활어회보다 감칠맛이 좋다. 약 6시간 숙성한 광어(사진 오른쪽) 회와 제철 맞은 방어 회. [사진 임현동 기자]

숙성회 는 활어회보다 감칠맛이 좋다. 약 6시간 숙성한 광어(사진 오른쪽) 회와 제철 맞은 방어 회. [사진 임현동 기자]

용어부터 정리하자. ‘활어회’는 말 그대로 살아 있는 물고기를 바로 잡은 걸 말한다. ‘선어회’와 ‘숙성회’는 동의어로 쓰기도 하지만 엄격히 구별하기도 한다. 굳이 따지면 이렇다. 활어를 잡은 뒤 피를 빼고 살을 발라내 2~10시간 저온에서 숙성한 게 숙성회다. 선어회는 더 오래 숙성한다. 이미 죽었지만 횟감으로 쓸 수 있는 신선한 생선을 선어라고 부르기도 한다. 수입 참치와 연어, 남도에서 즐겨 먹는 삼치·민어회 등이 대표적이다.

조미료 감칠맛 성분 이노신산 나와
수분 빠지면서 살은 더 단단해져
1인분 1만원대, 젊은 층 즐겨 찾아
홍대·강남 인근 파는 곳 많이 늘어


싱싱회라는 것도 있다. 2003년 정부가 한국식 브랜드로 내건 선어회의 다른 이름이다. 정부가 회 사업에 뛰어든 사연이 있다. 유통·관리 비용이 많이 들고 위생 문제가 끊이지 않는 활어회 대신 저렴한 선어회를 보급하겠다는 취지였다. 거제·포항 등 바닷가 공장에서 10시간 이내로 숙성한 횟감을 전국에 유통했다. 그러나 사업은 지지부진했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활어회 중심의 식문화가 워낙 강고해 2007년 완전히 사업을 정리했다”고 말했다.

10년 전 정부 사업은 실패했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이 선어·숙성회를 찾는다. 조영제 부경대 식품공학과 교수는 “일정 시간 숙성한 생선회가 활어보다 맛있다는 걸 사람들이 알아가고 있다”며 “일본의 음식문화가 더 확산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인의 활어회 사랑은 유별나다. 주로 선어회를 먹는 일본의 경우 감칠맛과 혀로 느끼는 미각을 중시하는 반면 한국인은 ‘씹는 맛’이 있는 활어회를 선호한다. 조 교수는 “한국인은 생선 살이 물러질 정도로 숙성한 회를 좋아하지 않는다”며 “일본은 스시가 일반적이어서 밥의 식감과 조화를 중시한다면 한국은 생선만 먹는 경우가 많아 탱글탱글한 씹는 맛에 집중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소비자와 상인 사이에 신뢰가 형성되지 않은 것도 활어회 선호 문화와 관련이 있다. 여전히 전국 어시장과 횟집에서 소비자는 자신이 지목한 생선을 잡는 모습을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본다. ‘의심과 불신’ 때문에 한국이 세계 최대의 활어회 소비 국가가 됐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살코기를 해동지에 싸서 숙성시키면 수분이 빠지면서 살에 쫀득한 찰기가 생긴다. [사진 최승표 기자]

살코기를 해동지에 싸서 숙성시키면 수분이 빠지면서 살에 쫀득한 찰기가 생긴다. [사진 최승표 기자]

미식 문화의 발전과 함께 활어회 일변도 문화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불과 지난 4~5년 사이 일이다. 어류 칼럼니스트 김지민(40)씨는 “최근 몇 년 새 활어회의 이면에 대한 이야기를 언론에서 많이 다룬 영향도 있다”며 “수조 관리 문제, 과다한 유통비용 등이 부각되면서 도리어 싸고 합리적인 선어회가 주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선어·숙성회를 파는 식당도 부쩍 늘었다. 약 10년 전부터 일본식 선술집 이자카야(居酒屋)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자카야는 다양한 일본식 안주를 파는데 선어회를 다루는 집이 많다. 그리고 최근에는 아예 숙성회·선어회 간판을 내건 식당과 술집이 홍대·강남을 중심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이자카야와 숙성회 전문점에는 대부분 수조가 없다. 수산시장에서 활어를 손질해 가져오거나 도매업자가 트럭에 실어온 활어를 받은 즉시 잡기 때문에 수조가 필요 없다. 김지민씨는 “수조를 유지·관리하려면 많은 비용이 들고 위생에도 좋지 않다”며 “수조 속 물고기가 살아 있다 해도 반드시 신선하다고 볼 수도 없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생선을 하루 이상 숙성시키는 게 일반적이다. 2~4일 숙성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숙성된 횟감은 살이 두부처럼 부드러워지고, 감칠맛이 돈다. 생선 살이 숙성되면서 나오는 ‘이노신산’ 때문이다. 화학조미료에도 들어가는 이노신산은 숙성한 지 24시간이 되면 극대화되는데 활어 상태보다 10배까지 늘어나기도 한다.

생선을 숙성하면 수분이 빠지면서 살의 조직감도 달라진다. 숙성회가 활어보다 ‘차지다’고 하는 이유다. 조영제 교수는 “활어를 죽인 뒤 약 10시간까지는 사후 경직이 일어나면서 살이 단단해진다”며 “사후 24시간이 되면 살이 다시 이완되면서 경직이 풀려 흐물흐물해진다”고 설명했다. 한국인은 ‘씹는 맛’을 중시하는 까닭에 숙성회를 파는 집 대부분이 10시간 이내로 숙성한 회를 내놓는다. 저온 숙성고나 냉장고에서 1~4도로 숙성한다.

선어·숙성회를 다루는 식당에서는 일반 횟집보다 부담 없이 다채로운 생선을 맛볼 수 있다.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한 선어·숙성회 전문점에서는 모둠회 1인분을 1만~2만원에 팔기도 한다. 1인분만 파는 집도 많아 ‘혼술’을 즐기기에도 좋다. 반면 일식당이나 활어횟집에서 모둠회를 먹으려면 1인분에 3만원 이상 줘야 한다. 숙성회 전문 미니회바 최수형 사장은 “강남 최고급 일식집, 호텔이라고 해서 다른 생선을 쓰는 게 아니다”며 “반찬·서비스에서 차이가 날 뿐”이라고 말했다.

보통 숙성·선어회 전문 식당은 생선 서너 종을 모둠회 형태로 판다. 늦가을인 지금, 광어·도미·방어·숭어를 주로 내준다. 참치·연어를 주는 식당도 있다. 이자카야 카덴 정호영 셰프는 “한 마리씩 통째로 사야 하는 활어와 달리 고급 생선을 조금씩 다양하게 먹을 수 있는 것도 선어회의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의 수산시장에서도 숙성회를 먹을 수 있다. 노량진·가락 수산시장을 합쳐 숙성회를 다루는 집이 열 손가락에 들 정도지만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광주무등산수산 김승호(56) 사장은 1979년부터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활어회를 팔다 주변 권유로 3년 전부터 숙성회를 팔기 시작했다. 김 사장은 “처음에는 죽은 생선을 주는 건 아닌지 의심하는 사람이 있었다”며 “그러나 한 번 숙성회를 맛본 뒤 다시 활어를 찾는 고객은 없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매일 아침, 활어를 잡아 피를 빼고 살을 발라낸 뒤 해동지에 싸서 냉장고에 넣어둔다.

생선회 마니아 사이에서 ‘고기는 클수록 맛있다’는 말은 진리로 통한다. 1㎏짜리 광어 세 마리보다 3㎏짜리 한 마리가 맛도 좋고 살도 많다. 그러나 손님 한두 명이 수산시장이나 횟집에서 무작정 큰 고기를 주문할 순 없는 일이다. 일성수산 이용길(53) 사장은 “먹는 양이 적다고 작은 생선을 시키면 후회한다”며 “숙성회는 큰 생선을 여러 크기로 나눌 수 있는 만큼 인원이 적어도 맛있는 횟감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모둠숙성회 소(400g)는 3만원 선이다.

선어·숙성회의 인기는 모바일 시장까지 파고들었다. 횟집을 추천하고 회를 배달하는 푸드테크 회사 이야기다. ‘인어교주해적단’이 대표적이다. 인어교주해적단은 노량진·가락 수산시장 외에 전국 주요 어시장에서 엄선한 업체를 소개해 준다. 모바일 앱에서 숙성회 전문점을 찾을 수 있다. 미친물고기·회부르다 등은 회 배달 업체다. 숙성회를 전문으로 하는 회부르다 전철환 대표는 “도착 시간까지 계산해 6~7시간 숙성한 회를 배달한다”며 “숙성회가 대중화되면서 배달량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글=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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