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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임명한 현직 대통령 조사…김수남 총장 “법불아귀”

중앙일보 2016.11.18 02:30 종합 3면 지면보기
최순실 국정 농단 검찰 수장의 심경
김수남 검찰총장이 17일 저녁 대검찰청 청사를 나서고 있다. 최순실씨 국정 농단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은 이날 최씨 등 구속된 3명이 기소되기 전에 박근혜 대통령의 대면조사가 이뤄져야 하며, 그 마지막 시점은 18일이라고 거듭 밝혔다. [사진 신인섭 기자]

김수남 검찰총장이 17일 저녁 대검찰청 청사를 나서고 있다. 최순실씨 국정 농단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은 이날 최씨 등 구속된 3명이 기소되기 전에 박근혜 대통령의 대면조사가 이뤄져야 하며, 그 마지막 시점은 18일이라고 거듭 밝혔다. [사진 신인섭 기자]

“법불아귀(法不阿貴). 법은 신분이 귀한 사람에게 아부하지 않는다. 검사는 그래야 한다.” 김수남(57) 검찰총장이 최근 대검찰청 간부 회의에서 『한비자』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김 총장은 지난해 12월 취임식 때도 이를 언급하며 검찰의 중립성·수사의 공정성을 강조했다.

미르 의혹 터졌을 땐 늑장수사 논란
김 총장, 수사팀 5차례 걸쳐 확대
전직 총장들 “할일 하면 된다” 조언

최순실(60·구속)씨 국정 농단 사건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직접 조사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많다”는 말이 나오자 김 총장이 ‘초심을 잃지 않았다’는 취지로 답변한 것이라고 한다. 대검 관계자는 17일 “김 총장은 현직 대통령 형사사건 연루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아 ‘법대로 하지 않으면 검찰조직이 죽는다’는 각오로 수사를 지휘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검의 또 다른 관계자는 “검찰이 청와대에 ‘15, 16일 참고인 대면조사’ 카드를 제시했을 때만 해도 박 대통령이 불응할 것이라는 예상은 거의 하지 못했다. 이후 수정 제시한 18일 카드도 거부당하자 최순실씨 공소장에 어떻게든 대통령 관련 부분을 넣으려던 검찰이 허를 찔린 듯한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에 김 총장의 고뇌도 커지고 있다.

김 총장의 고뇌는 ‘박연차 게이트’ 수사를 앞두고 장고했던 임채진(64) 전 총장의 8년 전 고뇌와 닮았다.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을 향해 칼을 겨눠야 하는 상황은 똑같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말에 낙점한 임 전 총장은 이명박(MB) 정부에서 재신임을 받아 총장직을 유지했다. 하지만 2008년 말 박연차 게이트의 단서를 잡고 이듬해 노 전 대통령을 수사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임 전 총장은 ‘옷을 벗고 후임 총장에게 사건을 넘기는 게 도리일지, 새 정권에서 재신임이 됐기 때문에 마무리를 지어야 할지’를 놓고 장고를 거듭했다. 결국 대검 중수부장을 새로 임명하고 수사팀을 꾸려 제기된 의혹을 캐 나가는 쪽으로 결론을 냈다.

김 총장의 심경은 그때보다 더 복잡하다. 우선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이 현직이다. 헌정 사상 첫 대통령 조사라는 타이틀도 부담을 가중시킨다. ‘최순실씨 국정 농단’ 사건의 시발점이었던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의혹에 대한 고발장이 검찰에 접수됐을 때 검찰이 시원스럽게 수사에 착수하지 못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았다. 이와 관련해 김 총장은 ‘늑장 수사’ 라는 비난을 씻어 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언론의 의혹 제기가 구체적이었음에도 검찰은 시민단체의 고발장을 받고야 뒤늦게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부장 한웅재)에 배당했다. 의혹의 규모에 비해 수사팀이 작아 ‘축소 수사’라는 비난에 직면했다
 
검찰 관계자는 “모르긴 해도 김 총장이 마시기를 거부할 수 없는 ‘독배(毒盃)’를 든 심정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상황이 급변했다. 최씨가 K스포츠재단을 통해 대기업 지원금 수십억원을 독일 현지법인으로 빼돌리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대통령 연설문 등이 담긴 최씨의 태블릿PC 등이 세간에 드러났다. 이후 검찰은 수사팀을 확대 개편했다. 다섯 차례에 걸쳐서다. ‘땜질식 대응’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김 총장은 지난 15일 “대통령 대면조사가 불가피하다”고 직접 거론했다. “대통령에 대한 조사를 못하고 특검에 사건을 넘기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 담긴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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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청와대는 17일 변호인을 통해 “다음주에나 조사에 응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에 검찰도 “마지막 조사 시한이 내일(18일)까지라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며 맞받아쳤다. 한 전직 검찰총장은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조사라도 ‘법대로’ ‘주어진 권한대로’ 할 일을 하면 된다. 그런 생각이 중심에 있다면 최순실 사건이 검찰의 시험대라는 말은 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이 최씨 관련 의혹의 중심에 서 있다면 김 총장은 수사의 중심에 각각 서 있는 형국이다.

글=윤호진·김선미 기자 yoongoon@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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