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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자의 과학 오디세이] 파리 기후협정을 거꾸로 돌리려는 트럼프

중앙일보 2016.11.18 01:00 종합 28면 지면보기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한국과총 차기 회장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한국과총 차기 회장

미증유의 정치적 사태로 모두가 분노와 허탈에 빠진 가운데 미국발 대선의 이변도 뒤통수를 쳤다. 누군가는 “도널드 트럼프가 이기는 것은 해가 ‘동쪽’에서 뜨는 것처럼 확실하다”고 했다지만 ‘설마’가 현실이 돼 버렸다. “제4차 산업혁명이 쓰나미처럼 밀려온다”는 문명사적 대전환기에 어째서 정치만은 나라 안팎에서 이다지 절망적일까.

트럼피즘은 ‘버락 오바마 유산’ 털기의 시리즈를 연출할 조짐이다. 기후·에너지 정책은 시대착오적 역주행이 확실시된다. 환경보호청(EPA) 인수팀을 에벨(M Ebell)에게 맡긴 게 신호탄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기후변화 이론을 뼛속 깊이 부정한다”는 화석연료 옹호자가 청장이 될 것이라니 EPA 간판부터 바꿔야 할 형국이다.

트럼프는 파리 기후협정의 해체를 원한다. 기후변화가 실체라는 과학적인 근거 자체를 부정한다. 심지어 미국의 제조업 경쟁력 약화를 노린 중국의 날조극(hoax)이라고 한다. 파리 협정 비준마저 무효화할 기세여서 신기후체제 이행에 비상이 걸렸다. 그렇다고 즉각적인 탈퇴는 안 된다. 규정상 3년간 탈퇴할 수 없고 의사를 밝힌 뒤 공지기간 1년을 거쳐야 한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 에너지 계획(America First Energy Plan)’은 전통 에너지 산업에 대한 규제 철폐를 예고한다. 탄광 개발을 활성화하고, 셰일 에너지의 수압 파쇄 공법 규제도 풀고, 석유·가스 채굴 규제도 철폐한다. 탄소세나 탄소배출총량제는 일자리 죽이기라고 반대한다. 그의 말대로 되면 미국의 탄소 배출은 오바마 계획에 비해 2024년까지 16% 늘어난다.
[일러스트=김회룡]

[일러스트=김회룡]

그렇다면 기후변화의 스토리라인은 어떻게 되나? “지구 평균 기온이 오르고 있다. 산업화 이전 대비 1도 올랐고(지구 연평균 기온 14.1도), 온실가스 농도는 40% 증가했다. 북극의 기온 상승이 2~3배 더 높아 해빙과 해수면 상승이 가속된다. 이산화탄소가 주원인이다. 탄소 배출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자원 위기, 경제 위기, 정치사회적 위기의 복합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2015년 파리 유엔 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에서 195개국이 신기후체제에 합의했다. 파리 협정은 11월 4일 발효됐고, 현재 109개국이 비준했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 뜬금없이 ‘지구온난화 음모론’이 고개를 들곤 한다. “온난화 이론은 기온 상승을 과장하고 이산화탄소를 주범으로 몰아붙인 음모”라는 주장이다. 92년 서울의 영국문화원에서 ‘온실효과 음모(Greenhouse Conspiracy)’ 다큐를 봤던 기억이 생생하다. 2009년 BBC방송도 기온 상승을 부정하는 보도를 냈다.

음모론 신봉자들의 믿음은 견고하다. 그들은 기온 측정 장소가 열섬효과 지역에 치우쳐 있고, 기상위성 데이터에 온난화 조짐이 없고, 이산화탄소 증가와 기온 상승 사이에 상관성이 없다고 했다. 70년대까지 빙하기가 온다던 과학자들이 돌연 온난화설로 돌아선 건 또 뭐냐고 했다. 트럼프의 시각은 이런 음모론과 통한다. 그가 미국의 대통령이니 기후체제가 재앙을 만난 격이다. 2001년 앨 고어를 꺾고 당선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교토의정서를 탈퇴할 때 논리도 그랬다.

기후변화정부간위원회(IPCC) 보고서는 기후변화의 교과서다. 현재 우리나라의 이회성 박사가 IPCC 의장이다. 기상·해양·경제학 등의 전문가 3000여 명으로 발족된 이후 90년부터 기후변화에 대한 과학적·기술적·사회경제적 분석을 내놓고 있다. 2014년 제5차 종합보고서에서는 화석연료 사용 등 인간 활동이 기후변화의 원인일 확률이 95% 이상으로 ‘지극히 높다(extremely likely)’고 했다.

지구 나이 45억 년간 생물종은 다섯 차례의 대규모 멸종을 거쳤다. 화산 활동과 지각운동, 운석의 충돌 등 자연적 요인 때문이었다. 2012년 ‘사이언스’지에는 900년께 마야인 300만 명이 홀연히 사라진 이유를 기후변화 탓이라고 결론 내린 논문이 실렸다. 현 추세대로 간다면 21세기 안에 지구는 1만 년 동안 겪은 것보다 더 큰 피해를 볼 것이라고 한다.

세계경제포럼(WEF)의 2015년 글로벌 리스크 리포트도 시사적이다. 경제·환경·지정학·사회·기술의 리스크 분석에서 기후변화 적응 실패, 극단적 기후현상 등을 최대 위협으로 평가했다. 이들 5개 부문 리스크 사이의 연계성에서도 기후변화 적응 실패를 최고로 꼽았다. 올해 보고서도 향후 10년간 최대 리스크로 기후변화를 꼽았다.

2030년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시급한 현안으로 놓고 국정 기조와 추진 전략을 세우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정치는 선거 단위로 작동한다. 감축 수단 등 변수도 불확실성이 크다. 기후변화란 주제 자체가 어느 나라, 어느 개인이 접근하기에는 너무 벅찬 문명사적 거대담론이다. 그러니 전폭적 참여를 통한 지속적인 실천이 쉽지 않다. 따라서 체계적·통합적 접근의 거버넌스 체제가 더 중요하다. 지수 개발과 계량적인 시스템 등 법적·제도적·기술적 실행 기반도 구축돼야 한다. 무엇보다 이들 작업을 총괄하는 정치적 리더십과 민관 파트너십이 요체다. 그런데 나라 안팎에서 정치가 어이없게 흔들리고 있다.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한국과총 차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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