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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트럼프 등장, 전망과 대처

중앙일보 2016.11.18 01:00 종합 29면 지면보기
위성락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객원교수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위성락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객원교수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트럼프의 당선은 그렇지 않아도 혼돈 속에 있던 우리에게 또 하나의 난제로 다가왔다. 유례없는 논란 끝에 당선된 그의 스타일과 정책은 과거 조지 W 부시 때보다 훨씬 큰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비상한 대처가 요구된다. 그런데 지금 나오는 것은 자주 보던 여론용 대응이다. 고위 대표단을 꾸려 출장을 보내고 있다. 접촉은 필요하나 인수 단계에서 이렇게 접근하면 제대로 논의가 안 될 수 있다. 미국에서 인수위는 우리 인수위와 달리 집권 준비에 집중한다. 현안에 대응하거나 외국 대표단 만나는 일에 신중하다.

트럼프 진영처럼 인물이 생소하고 구성이 미정이며 행보가 불가측한 상대에 대해서는 차라리 차분히 조직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낫지 싶다. 조용한 접촉을 통해 입장을 파악하고, 이것을 기초로 개략적인 전망을 그려 본 후 대응 방안을 정립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을 사이클처럼 돌리면서 보완하면 바른 대응을 도출할 수 있다.

우선 해야 할 일은 트럼프의 처지를 헤아리는 것이다. 그는 아웃사이더로서 상궤를 벗어나는 언행과 공약으로 극심한 분열을 야기하고 자당 지도부로부터도 배척받았으나 승리했다. 득표수에서도 뒤졌다. 경위가 이러니 앞길에 장애 요소가 엄존한다. 하나는 그의 치우친 정책을 계속 반대하는 클린턴 지지 세력이다. 둘째는 공화당 내 주류의 부정적 인식이다. 당 지도부로부터 견제가 예상된다. 마지막으로 미국을 움직이는 경제·사회·언론계 엘리트들의 반감이다.

이러한 정치 지형 속에서 트럼프는 편향된 공약을 추진해야 한다. 공약은 대부분 국내 문제이고 휘발성이 큰 의료보험, 이민, 감세, 환경, 인종 문제를 망라한다. 분란이 불가피할 것이다. 공약에서 후퇴하면 지지 기반에서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초기에는 국내 문제가 여타 문제를 압도할 것이다.
이런 사정은 대외 문제에 영향을 줄 것이다. 국내 분란 때문에 대외 정책 중 논란 여지가 큰 사안을 밀고 갈 여력이 없을 가능성이 있다. 또 그간 내놓은 거친 대외 정책들은 공화당 주류의 견제를 받을 것이고 여기에 관료의 조언이 가미될 것이므로 어느 정도 정제될 것이다.

이제 대외 정책 이슈에 대한 전망을 해보자. 우선 그간 야기됐던 동맹 공약에 대한 의구심을 불식시키는 노력이 예상된다. 이 부분에서는 공화당 주류의 조언이 반영될 것이다. 그러나 미국 국익을 우선하며 이를 위해 군사력을 강화하면서도 개입은 축소한다는 트럼프의 철학은 정책 전반에 투영될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민주·인권 등 미국적 가치를 적극 제기하지 않을 경우 권위주의 국가들과 마찰은 줄어들 수 있다. 경제 분야에서는 보호주의를 지향하면서 논란이 커질 것이다.

큰 틀이 이렇게 돌아가면 미·중 관계 환경은 나아질 것이다. 그러나 중국과는 무역, 환율, 지식재산권, 사이버 등 경제 이슈로 마찰이 심화될 수 있다. 최악인 미·러 관계도 개선 여지가 있다.

한반도에 미칠 영향을 보면 미국과 중·러 간 관계가 개선되면서 북핵 문제에 대한 공조 여건은 나아질 수 있다. 그러나 중국 책임은 계속 강조될 것이고, 강한 대북 압박과 함께 대화도 고려될 것이다. 한·미 관계에서는 방위 책임을 한국이 더 지라고 하면서 전시작전통제권 이양과 방위비 분담 증대를 제기할 소지가 있다. 주한미군이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에 대한 추가 논의도 배제할 수는 없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재론될 것이다.

이런 전망을 염두에 두고 우리의 대처 방향과 유의점을 제기하고 싶다.

첫째, 미국 내 정책 동향을 계속 파악해야 한다. 전례 없는 변화의 시기에는 면밀한 상황 인식과 냉철한 분석이 필수다. 이 과정에서 최적의 대응을 찾아야 한다. 경계해야 할 것은 아전인수식 보고와 분석이다. 언론용 대응이 정책을 대체하는 일도 경계해야 한다. 관료적 관성을 용인하기에는 상황이 엄중하다.

둘째, 트럼프의 정책과 중·러·북한의 반응을 보고 현실적이고 유연하게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그간의 동향을 보면 기존 노선을 고수하려는 기류가 느껴진다. 대북제재와 압박을 크게 강조하는 것이 한 예다. 이것은 국내 정파적 공방의 결과로 계속 경화된 것인데, 가변적 상황에는 유연한 대응이 필요하다.

셋째, 보호주의가 촉발되면 미·중 무역 마찰이 격화될 것이고 무역 의존도가 큰 한국에 큰 파장이 온다. 통상과 외교를 통합해 다룰 체제를 갖춰야 한다. ‘외교 따로 통상 따로’로는 어렵다.

넷째, 트럼프가 처한 미국 내 장애 요소를 염두에 두고 공화당·민주당·재계 등 다양한 세력을 대상으로 전방위 외교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 접근은 FTA나 무역, 안보 현안을 다룰 때 유용할 것이다.

트럼프의 등장은 동북아 안보·경제 구도에 영향을 줄 도전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국정은 표류하고 있다. 이 와중에서도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중심을 잡아 국익을 지키려는 노력이 정부 내에 있기를 기대한다.


위 성 락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객원교수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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