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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절박한 심정으로 흔들고 또 흔들고

중앙일보 2016.11.18 01:00 경제 7면 지면보기
<32강전 2국> ●·이세돌 9단 ○·랴오싱원 5단

12보(127~140)=우하 방면 27이 놓이는 순간, 우변 백△는 고사목이 됐다. 작지 않지만 소생할 수 없는 돌을 움직이는 프로는 없다. 포기라는 결정이 내려지면 빠르게 ‘활용’으로 대체된다. 백△는, 28의 침투와 이후의 타개 및 수습에 어떻게든 활용이 될 것이다. 28을 본 이세돌의 두 눈이 섬광 같은 빛을 뿌린다. 29의 단호한 의지. 그냥 위에서 누르고 넘겨주어도 충분한 형세인데 타협하지 않겠다고 한다.

뛰어든 랴오싱원의 심정은 절박하다. 침입한 특공대가 별다른 성과도 없이 모두 잡히기라도 하면 우하 일대 흑의 영토는 백이 감당할 수 없는 크기로 불어날 것이다. 30, 32로 이리저리 붙이는 현란한 흔들기도 그런 절박함의 발로다. “아이고, 머리가 지끈거립니다. 최대한 복잡하게 두고 있어요. 랴오싱원 선수도 흔들기가 세네요.” 38이 놓일 때 인터넷으로 해설 중이던 이영구 9단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39는 부드러운 대응. 이런 침착함은 이세돌이 형세를 낙관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박빙의 형세라면 ‘참고도’ 흑1부터 5까지, 일망타진하겠다는 살의(殺意)를 드러내지 않았을까. 칼끝처럼 날카로운 이세돌의 기풍에는 오히려 이 그림이 어울리는데 랴오싱원은 오직 이 길뿐이라는 듯 40으로 붙여간다.

손종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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