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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새 대통령의 자질

중앙일보 2016.11.16 20:42 종합 35면 지면보기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우리는 삼중(三重) 물길이 일으키는 격랑(激浪)의 한가운데에 있다. 첫째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세계화 시대에 충돌함으로써 야기되는 거대한 소용돌이다. 둘째는 트럼프 시대가 시작됨으로써 미국이 만들어내는 격류다. 셋째는 박근혜 대통령이 일으킨 거센 탁류(濁流)다. 이 삼중 물길이 뒤섞이면 우리나라는 수습 불능의 총체적 난국에 빠질 수 있다. 이를 헤쳐갈 수 있는 새 지도자가 무엇보다 필요한 이유다.

대통령의 비선에 의한 부정부패
분야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 발생
정치 위기, 경제·국가 위기로 번져
트럼프 인선 끝날 내년 여름까지
사고력 갖추고 능력 있으면서
정직한 사람이 새 대통령 돼야


 새 대통령(혹은 내각제 개헌 시 총리)은 다음의 자질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 ‘세계화 시대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법을 가져야 한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사회의 가장 중요한 제도다. 그러나 세계화로 말미암아 이 두 제도의 조화로운 작동이 이전에 비해 훨씬 어려워졌다. 세계화된 경제를 국가 단위의 민주주의 제도로 조정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세계화는 전 세계 시장을 하나로 통합시키고 있다. 세계 시장에서 수요가 높은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소수에 불과하다면 그들의 소득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반면에 외국인으로 쉽게 대체할 수 있는 평범한 기술을 가진 사람들의 소득은 오르지 않고 일자리마저 위협받는다. 한 나라 안에서 소득불평등이 심해지는 것은 물론 부모의 소득이 자녀에게도 영향을 미쳐 계층이 대물림된다. 그 결과 소득재분배에 대한 유권자의 요구가 거세진다. 그러나 기업과 부자에 대한 세금을 올리면 세계화로 인해 이동성이 증가한 이들은 외국으로 본거지를 옮겨 버린다. 이것이 미국의 트럼프 당선과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의 뿌리다. 결국 제도 개혁과 공동체 의식 제고 이외에 답을 찾기 어려운 이 문제를 새 대통령이 올바로 해결해 나가지 못한다면 한국은 정치·경제적으로 표류할 것이다.
둘째, 트럼프 당선으로 말미암은 미국의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다. 트럼프 정부의 중요한 수출품은 혼돈과 불확실성일 것이다. 무엇보다 경제와 북한 문제를 둘러싼 충격파가 일 것이다. 그의 말대로 중국에 대해 관세 장벽을 높인다면 이는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미국 가계, 특히 그를 지지했던 저소득층의 실질 구매력을 감소시킬 것이다. 그는 또 돈을 싸게 빌릴 수 있도록 저금리 정책을 펴겠다고 말했지만 동시에 인프라 지출도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이 약속 때문에 시장 금리는 오히려 오르고 있다. 약속을 이행하지 못하는 대통령에 대해 미국 유권자가 실망하게 되면 그 정치적 압력이 한·미 FTA나 주한미군 방위비 협상, 환율조작국 지정 문제로 거세게 옮아 붙을 수 있다.

 북한 문제는 그 중요성만큼 우리가 철저히 준비해야 하는 분야다. 그렇지 않으면 햄버거만 같이 먹으면 문제가 풀릴 줄 아는 트럼프 때문에 비핵화의 진전 없이 몇 년이 흘러 갈 수 있다. 반대로 북한이 핵과 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계속한다면 미국은 군사 조치를 포함해 매우 강경한 정책을 펼 수도 있다. 우리 정부가 현실적이며 설득력 있는 대북정책을 마련해 트럼프 정부와 소통하지 못하면 북한 문제의 해결은 요원해질뿐더러 심각한 한·미 갈등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새 대통령은 제재와 압박, 관여와 교류, 북한의 비핵화와 정상 국가화의 순차를 어떻게 설정하고 어떤 정책을 펼지에 대해 정교한 구상을 갖고 있어야 한다.

 셋째, 정직함과 투명성이다. 대통령의 비선에 의한 부정부패는 분야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일어났다. 국민은 중요한 정책의 끝자락에서도 비선의 그림자를 느낀다. 국정 운영이 투명할 리 만무했다. 더욱이 대통령은 첫 번째 사과에서 한정된 기간 동안 연설문 수정만 부탁한 것처럼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했다. 그러나 검찰이 진실을 완전히 밝혀줄 것으로 믿는 국민은 얼마 되지 않는 듯하다. 가히 총체적 신뢰 위기다. 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민주적 절차를 투명하게 실행하는 정직한 사람이 대통령이 돼 신뢰를 쌓아야 한다.

 정직은 신뢰의 원천이며 신뢰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초다. 국민이 대통령을 믿지 못하면 대의 민주주의는 무너진다. 시장경제의 최대의 적도 불신이다. 신뢰가 없으면 거래도, 기업 하려거나 투자하려는 사람도 사라진다. 그러기에 불신의 경제적 비용은 막대하다. 현 대통령은 신뢰를 무너뜨림으로써 국민 한 사람당 적어도 수백만원의 보이지 않는 세금을 물렸다. 청년들의 잠재적인 일자리를 뺏었다. 청렴한 사회를 위해 김영란법이 정한 만원, 삼만원을 천원도 넘기지 않으려고 애쓰는 보통 국민의 가슴을 허망함으로 물들였다.

 이대로 가면 정치 위기가 대규모 경제 위기, 국가 위기로까지 번질 수도 있다. 트럼프 정부의 인선이 완료될 내년 여름까지 사고력을 갖추고 능력이 있으면서 정직한 사람이 새 대통령이 돼 대한민국호(號)의 키를 잡아야 한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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