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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박 대통령, 대국민 약속 뒤집고 버티기 할 건가

중앙일보 2016.11.16 19:59 종합 34면 지면보기
박근혜 대통령이 검찰의 대면조사 요구에 당분간 응하지 않을 것이란 뜻을 밝히면서 국정 농단 사건의 수사가 차질을 빚게 됐다. 검찰은 19일께 최순실씨와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 등을 함께 기소하면서 박 대통령의 법리적 공범관계를 밝힐 계획이었다. 검찰 공소장을 통해 드러난 박 대통령의 잠재적 혐의는 향후 국회의 탄핵 발의 및 의결은 물론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에도 결정적 자료가 될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15일 자신의 변호인을 통해 대면조사에 부정적 입장을 표명하면서 검찰은 불완전한 상태로 최씨 등을 기소할 수밖에 없게 됐다. 검찰은 18일을 ‘마지노선’으로 제시하며 조사에 응해 달라고 거듭 요구했지만 실현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공범관계 입증하는 자료 진술 잇달아
검, 수사서 드러난 혐의 공개 검토해야
'부산 엘시티 철저 수사' 지시 뜬금없어

검찰 내부에선 “검찰은 물론 특검 수사도 받겠다던 박 대통령이 갑자기 이렇게 나올 줄 몰랐다” “최씨의 국정 농단 사건에서 완성해야 할 마지막 퍼즐이 빠진 것이나 다름없다”는 반응이 나왔다. 박 대통령이 사건의 심각성을 모르고 마냥 버티기만 할 경우 검찰 조사에서 드러난 박 대통령의 혐의 부분을 국민에게 공개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이번 수사가 꼬이게 된 것은 검찰이 자초한 측면도 있다. 언론 보도로 사건이 불거지자 지난달 초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에 배당하는 등 늑장 수사를 하고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한 뒤에도 대통령 조사에는 소극적 태도로 일관했다. 그러다 100만 명의 시민이 참석한 촛불시위 바로 다음 날인 13일 갑자기 “대면조사가 필요하다”며 15, 16일 중 날짜를 택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현직 대통령을 상대로 한 조사를 안일하게 생각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그러나 가장 큰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불과 며칠 전 국민에게 한 약속을 뒤집고 법적 책임을 피하려는 듯한 모습은 국정 최고책임자로서의 자세가 아니다. 선의로 미르와 K스포츠재단을 설립했다는 박 대통령의 말과 달리 본인이 직접 불법적인 모금을 강요하고 지시했다는 정황이 담긴 증거가 계속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안 전 수석의 업무일지와 정 전 비서관의 휴대전화에 담긴 자료들을 박 대통령의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중요한 증거로 판단하고 있다. 최씨가 2020년 도쿄 올림픽 승마 지원 명목으로 받은 삼성 돈 35억원을 독일의 호텔과 주택 구입비로 사용한 사실은 국민의 억장을 무너지게 한다. 이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검찰 조사 요구에는 응하지 않은 채 “부산의 엘시티 비리 사건을 신속하고 철저히 수사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단하라”고 법무부 장관에게 지시한 것은 뜬금없고 느닷없다. 만약 박 대통령이 정·관계 인사들의 비리 연루설이 돌고 있는 엘시티 사건을 통해 정치적 위기에서 벗어나 보려는 심산이라면 국민의 수준을 얕잡아 봤거나 뭔가 크게 착각한 것이다.

검찰은 박 대통령에 대한 조사가 시급하고 반드시 필요하다면 박 대통령에게 떠보기를 할 게 아니라 당당하게 소환을 통보해야 할 것이다. 박 대통령도 더 이상 버티지 말고 수사에 전적으로 협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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