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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대통령이 뭐길래?

중앙일보 2016.11.16 18:55 종합 34면 지면보기
이정재 논설위원

이정재 논설위원

나라가 멈춰서고 있다. 여기 세 개의 장면이 있다.

한 사람이 나라 망쳐서도
망치게 놔둬서도 안 된다

첫 번째는 정부, 기획재정부다. A국장은 요즘 “그냥 하던 일만 한다”고 했다. 사실은 “아무 일 안 한다”의 다른 표현이다. 그도 그럴 만하다. 우선 부처 장관이 사실상 둘이다. 현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과 임종룡 내정자. 누구 말을 듣고 따라야 하나. 거기에 따라 내 자리가 갈린다. 나랏일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내년 경제정책 방향이 아직 갈피도 못 찾고 있는 이유다.

어디 A국장뿐이랴. 그 밑의 B과장, C사무관도 마찬가지다. 보름 전 임종룡이 부총리로 내정되자마자 기재부엔 하마평이 돌았다. L차관·Y국장, 구체적인 이름까지 나왔다. 그러니 국장은 새 차관, 과장은 새 국장, 사무관은 새 과장 줄을 찾느라 분주하다. 여기에 최순실과 연루된 고위직이 줄줄이 옷을 벗을 것이란 소문도 돌고 있다. 더 끔찍한 건 이런 인사 불확실성이 언제 걷힐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때까지 기재부 공무원들은 그냥 하던 일만 할 것이다.

두 번째는 기업, 30대 재벌이 바빠졌다. 여야가 최순실 특검과 국정조사에 합의하면서다. 그룹 임원들은 묵은 인명록을 꺼내들고 있다. 각계 동향 파악을 위해서다. 어디 대통령뿐이랴. 기업 수사도 장기화할 것이다. 최소한 두 차례, 길면 내년 말까지 총수들이 또 ‘곤욕’을 치러야 한다. 오랜 검찰 수사 후 한숨 돌렸던 롯데도 대관·대언론·대정계 레이더를 풀가동하고 있다. CJ·SK도 마찬가지다. 삼성은 미래전략실이 총출동했다. 갤럭시노트7 사태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한다. 연말 인사와 조직 개편, 구조조정 같은 현안은 다 뒷전이다. 언제 끝날지, 어떤 불똥이 튈지 알 수 없다. 그때까지 기업들은 총수와 그룹의 신변 지키기에만 몰두할 것이다.

세 번째는 가계, 정년 퇴직 후 작은 가게를 차린 친구 A는 요즘 뉴스 보기가 무섭다고 한다. 하루 종일 기승전최순실이요, 닥치고 박근혜다. 최씨·박씨 집안의 족보를 뿌리까지 캘 기세다. 어디까지 진실인지 알 수도 없다. 캐도 캐도 끝이 없다. 정치판이며 나라 꼴은 그야말로 ‘X판’이다. 수치스럽고 화가 난다. “대한민국에 2주일 넘어가는 이슈는 없다”고 믿었던 A다. 하지만 박근혜·최순실은 무저갱 같다. 한 달이 넘었지만 끝이 안 보인다. 주말엔 아무래도 일손을 놓고 또 광장에 정의를 세우러 가야 할 것 같다.

다시 세 개의 장면이 더 있다. 나라가 멀쩡해도 쉽게 극복 못할 일들이다. 첫 번째는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이다. 트럼플레이션(트럼프+인플레이션) 우려에 세계 금리가 급등하고 신흥국 통화 가치는 곤두박질 중이다. ‘트럼프발 발작’이다. 우리 시장도 강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원-달러 환율은 1170원까지 치솟았고 10년물 국채 금리는 연 2%를 넘었다. 국가 부도 위험지표(CDS 프리미엄)는 5일 새 20%나 높아졌다. 외국인들은 한국에서 돈을 빼고 있다.

두 번째는 아베 신조의 일본이다. 17일 아베는 미국으로 건너가 트럼프를 만난다. 해외 지도자 중 처음이다. 아베는 전심전력, 일본의 국익을 위해 트럼프를 다독일 것이다. 일본이 트럼프의 타깃에서 벗어나면 다음은 한국이 되기 쉽다. 세 번째는 시진핑의 중국이다. 시진핑은 트럼프와 맞짱 뜰 각오다. 환구시보는 “트럼프가 중국산에 45% 관세를 물리면 중국은 보잉을 에어버스로 바꿀 것”이라며 “자동차·아이폰의 중국 판매도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재앙에도 블록버스터급이 있다면 우리에겐 미·중 분쟁이 바로 그것일 것이다.

그런데도 정치는 답이 없다. 대통령은 검찰 수사를 미루고 퇴진을 거부했다. 청와대에 앉아 대통령이란 갑옷을 입고 버틸 기세다. 장기전·진지전 채비다. ‘뻘짓’ 야당에도 기대할 게 없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어떻게 만들고 지켜온 대한민국인가. 감히 대통령 한 사람이 망칠 수도 없고, 망치게 놔둬서도 안 된다. 그런데 무슨 방법이 있나. 이럴 때 떠오르는 게 1980년대 군가 한 소절뿐이라는 게 참담할 뿐이다. “너와 내가 아니면 누가 지키랴.”


이정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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