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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 레터] 어느 '지위 고하'

중앙일보 2016.11.16 17:57
청와대가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나 퇴진은 없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국민이 부여한 대통령직을 함부로 던질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런 소신 앞에서 촛불 집회의 하야 여론이나 정치권의 퇴진 요구는 먹혀들지 않습니다. 엊그제까지 힘을 얻던 ‘질서 있는 퇴진’은 비현실적인 옵션이 됐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길은 법적 절차, 즉 탄핵입니다. 물론 이에 대해선 국정공백이 커지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등의 이유로 반대론도 만만찮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법을 무시한 방법을 택할 수는 없습니다. 거국내각처럼 구호차원의 옵션은 이제 유효기간이 끝난 듯합니다.

정치인들에겐 탄핵 알레르기가 있습니다. 여야 모두 노무현 탄핵 때의 역풍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대통령 지지율이 땅바닥이지만 막상 탄핵에 들어가면 보수층의 결집으로 바람의 방향이 바뀌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들입니다. 청와대가 하야나 퇴진을 부인한 데 대해 역풍 유도 작전이라는 의심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결과적으로 청와대의 유도 탄핵이 진행될지도 모릅니다. 법 절차에 따른 것이긴 하지만 모양새가 좀 어색하게 됐습니다. 국회가 마치 등 떠밀려 정치적 금단의 영역인 탄핵에 휘말려 들어가는 듯 비치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탄핵 논의를 시작했다면, 2선 후퇴니 거국내각이니 하며 시간낭비를 덜 했을 텐데 말입니다. 직구로 승부할 일을 자잘한 변화구를 던지다 자초한 셈입니다.

박 대통령이 오늘 부산 LCT 사건에 대해 신속하고 정확한 수사를 하라고 법무부 장관에게 지시했습니다. 조사 대상인 박 대통령 본인은 조사 받기를 미루면서 다른 사건의 수사를 빨리 하라고 지시한 데 대해 여론 반응은 부정적입니다. 버티기의 일환이다, 뒤집기 작전이다, 검찰에 대한 경고다, 해석이 분분합니다. 야권에선 저의가 의심된다는 반응이 나옵니다. 박 대통령은 “연루자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단하라”고 했다 합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수사하는 이영렬 특별수사본부장도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실체적 진실 규명에 힘을 다하겠다”고 했습니다. 어느 ‘지위 고하’가 먼저 심판받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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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청이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고교 졸업을 취소할 태세입니다. 출석일수가 부족해 졸업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무슨 대회에 나간다는 이유로 학교에 안 나왔는데, 조사해 보니 근거가 부족하다고 합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특혜가 주어진 것입니다. 이를 방조하거나 묵인한 학교나 교육당국의 책임 문제가 새롭게 떠오릅니다. 힘 있을 때는 설설 기더니 이제 와서 마구 파헤친다는 오해를 피하려면 사후에라도 엄정한 법적 처리가 불가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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