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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실세 1~2인자 빼고는 “성실히 조사 받겠다” 답변 공식 이어져

중앙일보 2016.11.16 07:19
지난달 31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하는 비선실세 최순실씨. [중앙포토]

검찰에 출두한 청와대 고위층들의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발언들이 네티즌들의 질타를 받고 있다. 16일 새벽 1시.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는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 10시간의 검찰 조사를 마치고 귀가하는 중이었다.

기자들이 다양한 질문을 했지만 김 전 수석은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했다“는 발언만 반복하다가 청사 앞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유유히 사라졌다. 김 전 수석은 ‘비선실세 2순위’로 꼽히며 광고대행사 지분 강탈시도 의혹을 받고 있는 차은택 CF감독(전 창조경제추진단장)의 외삼촌이다.

약 23시간 전인 지난 15일 새벽 1시 50분 쯤 나온 안봉근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 3시 경 나온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역시 답변은 비슷했다. 안 전 비서관은 ”검찰에 올라가서 성실화게 말씀 잘 드렸다“, 이 전 비서관은 ”오늘 검찰에서 물으시는대로 성실히 답변드렸다“는 답을 했다. MBN 보도에 따르면 ”국민에게 할 말이 없느냐”는 질문에는 두 사람은 입을 다물었다고 한다. 안 전 비서관은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청와대 출입 편의 의혹, 이 전 비서관은 최씨에게 대통령의 연설문을 유출하는데 가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안 전 비서관과 이 전 비서관은 전날인 14일 검찰청사에 출두하는 과정에서도 기자들과 만나 똑같은 답을 유지했다. 뉴시스에 따르면, 이 전 비서관은 ”문건 유출이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였느냐“, ”정호성 전 비서관이 문건을 최순실씨에게 건네는 것을 알고 있었느냐”는 질문에 맥락과 전혀 상관없는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 “궁금해 하는 것들을 검찰 조사에서 성실히 답하겠다”는 답변만을 반복했다. 안 전 비서관 역시 소환길에 “검찰에 올라가서 말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출두한 포스코 권오준 회장은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 “검찰 조사에 진실되게 대답하겠다” 등 2가지 레퍼토리를 들고 나왔다. 권 회장은 포스코그룹 계열 광고대행사인 포레카의 매각 과정에서 인수한 기업 대표에게 ”차은택 CF감독에게 지분을 넘기라”고 압박을 가한 혐의를 받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지난 4일 2번째 대국민 사과에서 “필요하다면 저 역시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고 특별검사 수사도 수용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하지만 12일 뒤인 지난 15일 오후 선임된 유영하 변호사는 “제시된 의혹이 엄청나다. (내일 조사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 사실상 조사 거부에 들어갔다. 검찰은 앞서 16일까지는 대면 조사를 한다는 입장이었고, 한 발 물러서 17일까지 대면 조사 일정을 미뤄주기까지 했었다. 검찰 수사 일정상 최순실씨의 기소는 구속기한 만료일(19일) 이전에 진행되어야 한다.

가족회사 정강의 공금 유용 혐의로 지난 6일 소환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불꽃 눈빛’으로 논란이 일었다. 질문을 한 여기자를 노려보는 눈빛이 마치 불꽃이 나올 것 같이 보였다는 의견이 나오면서다. 네티즌들 중에서는 우 전 수석의 이름을 빗대 “우병우가 아니라 우갑(甲)우”라는 말이 이어졌다. 소환 당시 우 전 수석은 “검찰에서 성실하게 답변하겠다”는 말을 반복하다가, “그만하겠다”는 말을 하고는 청사 안으로 들어갔다. 우 전 수석은 또한 검찰청사에서 수사 검사들을 상대로 팔짱을 끼고 여유있게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이 사진을 통해 포착돼 '황제 소환'이라는 단어가 회자되기도 했다.

그나마 색다른 말을 한 사람은 국정농단의 1~2인자로 불리는 최순실씨와 차은택 CF 감독이었다. 최씨는 지난달 31일 검찰에 출두했을 당시 300여명과 시민단체 회원들을 보고 당황했다. 최씨는 “죽을 죄를 지었다”, “국민여러분 용서해 달라” 등의 이야기를 했지만, 대부분의 질문에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차씨는 8일 중국 칭다오에서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했을 당시 게이트에서 만난 기자단의 쏟아지는 취재에 당황해 “안종범 전 수석과는 조금 아는 사이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뒤를 봐준 적 없다”, “박근혜 대통령과 공식석상에서 몇 번 봤다”, “드라마 촬영 때문에 (중국에) 갔다가, 이 일(비선실세 국정농단 스캔들)이 나서 마음이 복잡해서 혼자 있었다” 등의 답을 하다가, 입국장을 나서면서부터는 “검찰 수사에 사실대로 말씀드리겠다”는 말을 반복했었다.

한 네티즌은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검찰에서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다’는 말을 하는 XXX들에게는 미리 욕을 던진다”고 일갈했다. 다른 네티즌 역시 블로그에 “국민을 열받게 하는 한 마디다”고 일침했다.

청와대 출신의 한 인사는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말은 국민에 대한 죄송함이나, 답변 태도, 앞으로 검찰 조사에 대한 입장 등을 함축한 최적의 말이라 자주 쓰이는데, (최근 출두 경향을 보면) 타성에 젖어서 말하는 것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이현택 기자 mdf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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