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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충전소] 파리협정 깨겠다는 트럼프, 지구 온난화도 거래?

중앙일보 2016.11.16 01:31 종합 20면 지면보기
지난 9일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열리던 제22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2) 회의장이 술렁거렸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뉴스가 전해졌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유세기간 “기후변화는 날조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선되면 COP22가 세부 사항을 논의 중인 파리기후협정(이하 파리협정)을 취소하겠다고 공언했다. 이 때문에 파리협정이 시작부터 험로를 걷게 될 것이라는 걱정, 기후 재앙을 막기 위한 인류의 마지막 기회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회의장을 뒤덮었다. 세계 7위 온실가스 배출국인 한국도 앞으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처지가 됐다.
지난해 11월 파리협정 논의를 위해 만난 오바마 대통령( 왼쪽) 과 시진핑 국가주 석(오른쪽). 하지만 탈퇴를 공언한 트럼프가 당선돼 협정이 위기를 맞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해 11월 파리협정 논의를 위해 만난 오바마 대통령( 왼쪽) 과 시진핑 국가주 석(오른쪽). 하지만 탈퇴를 공언한 트럼프가 당선돼 협정이 위기를 맞고 있다. [중앙포토]

COP22가 개막할 때만 해도 세계 197개국에서 온 대표단은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파리협정은 개막 직전인 지난 4일 발효됐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함께 참여하는 ‘신(新)기후체제’가 정식 출범한 것이다. 지구의 기온 상승을 2도 아래로 억제할 수 있는 중요한 토대를 확보했다고 여겨졌다.

신기후체제 발효하자마자 위기
트럼프 “기후변화는 날조된 것”
오바마·시진핑이 합의한 감축안
대선 유세하며 협정 취소 공언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기후변화협약은 1992년 채택됐다. 당초 협약은 2000년까지 선진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90년 수준으로 줄이기로 했다. 하지만 목표 달성이 실패할 조짐을 보이자 97년 교토의정서가 채택됐다. 2008~2012년 사이 선진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90년 대비 5.2% 감축하자는 내용이다. 하지만 2001년 미국이 탈퇴했고 일본·캐나다·러시아 등도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면서 실패했다.
파리협정은 2007년 시작된 ‘포스트(post) 교토’ 논의의 결실이다. 기후변화 재앙을 피하려면 선진국뿐 아니라 개도국의 참여가 절실하다는 데 국제사회가 공감대를 이뤘다. 또 세계 1, 2위의 온실가스 배출국인 중국과 미국이 협조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중국과 미국은 지난 9월 파리협정을 비준했다. 현재는 109개국이 비준했다.

하지만 트럼프의 당선으로 파리협정은 위기를 맞게 됐다. 미국 버락 오바마 정부와 국제사회가 서둘러 파리협정을 발효시킨 것도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을 염두에 둔 움직임이었지만 정권 교체가 현실로 나타나자 세계 각국이 당황하고 있다.

트럼프가 취임한다고 해서 미국이 파리협정을 당장 탈퇴할 수는 없다. 협정은 이미 발효된 상태로, 규정상 최소 3년 동안은 협정에서 탈퇴할 수 없다. 3년 뒤 탈퇴 의사를 밝힐 수 있으나 실제 탈퇴까지는 1년의 공지기간이 더 필요하다. 총 4년이 필요한 것이다. 미국이 아예 기후변화협약에서 탈퇴하는 방법도 있으나 이 역시 1년의 공지기간이 필요하다. 트럼프가 취임 후 행정명령을 통해 파리협정 서명을 무효화하는 방법도 있긴 하다. 지난 9월 오바마 대통령은 의회의 비준을 거치지 않고 대통령령을 통해 협정을 비준했다.
미국의 협조가 없다면 파리협정은 적지 않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미국은 온실가스를 2025년까지 2005년 배출량 대비 26~28%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트럼프 정부가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면 ‘2도 상승 억제’라는 목표를 이루기 어려워진다. 더 큰 문제는 자금이다. 오바마 정부는 매년 8억 달러(약 9330억원)를 저개발국가의 기후변화 적응에 지원키로 약속했다. 개도국 중엔 이 같은 자금 지원 가능성을 믿고 협정에 동의한 나라가 많다. 미국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신기후체제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게다가 미국이 협정에서 탈퇴하면 중국 역시 감축에 소극적인 태도로 돌아설 수도 있다.

물론 트럼프 정부가 실제로 협정 탈퇴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COP22에 참석하고 있는 정서용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는 “트럼프로서는 국가 통합을 위해 기후변화 대응에 적극적인 사람들도 함께 끌고 가야 할 필요가 있다”며 “미 연방정부가 극단적 선택을 하더라도 주정부가 대응하는 것까지 바꿀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의 당선에도 불구하고 협정의 전체적인 틀은 유지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많은 나라가 이미 비준했고,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다른 대안을 찾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 때문이다. 국제 환경단체들은 “트럼프의 당선은 분명 재앙이지만 기후변화 대응 노력의 끝은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18일까지 이어지는 COP22에서는 파리협정의 세부 사항이 논의되고 있다. 국가별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보고·점검체계, 개도국에 지원할 선진국의 재원 마련 방안, 새로운 국제 탄소배출권 거래시장 설계 방안 등을 다룬다. 미국 대선 결과와는 무관하게 준비작업은 계속되고 있다.

파리협정이 가져올 신기후체제에 대해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소장은 “기후변화 대응을 부담으로 여기기보다 재생에너지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경제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각국이 기회를 공정하게 나눠 갖는 것으로 보는 쪽으로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4차 산업혁명과 함께 시작될 신기후체제는 신재생에너지가 기반이 되는 시대로, 세계총생산(GWP)의 2%에 이르는 연 1800조원의 새 시장이 열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국이 이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경제에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만큼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가 시급하다. 한국은 지난 3일 국회에서 파리협정을 비준했고, 비준서를 유엔에 기탁했다. 정식 회원국이 되려면 기탁 후 한 달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이미 마라케시에서 열리는 각종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국내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가 국회 비준만을 서둘다 보니 온실가스 감축 목표의 타당성, 세부 감축 로드맵은 충분히 검토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정부는 지난해 유엔에 ‘2030년까지 배출전망치(BAU) 대비 37%를 줄인다’는 감축 목표를 제출했다. ‘2020년까지 BAU 대비 30%를 줄이겠다’고 밝혔던 2009년의 감축 목표보다 후퇴한 모양새다.

정부는 연말까지 구체적인 감축 로드맵을 내놓겠다고 밝혔지만 아직까지 건물·산업·수송·발전 등 부문별로 어느 정도의 감축량을 할당할지에 대한 기본안도 공개하지 않은 상태다. 또 ‘감축 목표 37% 중 25.7%는 국내에서, 나머지 11.3%는 해외에서 감축하겠다’고 정했을 뿐 해외 감축을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지, 배출권 구입에 따른 비용을 정부·기업 중 누가 부담해야 할지에 대한 논의도 시급한 상황이다.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파리협정이 발효된 만큼 경제체질 변화와 에너지정책 변화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한 상황인데 정부가 그런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2014년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이 98년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감소세로 돌아선 것으로 잠정 집계된 상태다. 따라서 장기적인 감축 목표를 재설정해야 할 필요도 있다. 파리협정은 5년마다 각국의 감축 이행 상황을 평가하고 감축 목표를 재조정하도록 했다. 온실가스 배출량의 감소로 한국은 국제사회로부터 감축 목표를 강화하라는 요구를 받을 수도 있다.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을 준비하고 있는 국무조정실 임석규 녹색성장지원단 부단장은 “올해 마련한 1차 로드맵을 토대로 8차 전력 수급계획(2017년 마련)을 반영하는 등 매년 수정하고, 2019년 유엔에 감축 목표를 제출하기 전에 실행 로드맵을 최종 확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근 5년이 인류 역사상 가장 더웠던 기간”
온실가스가 꾸준히 증가하면서 지구의 기온도 상승하고 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지난달 24일 대표적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의 연평균 농도가 1958년 관측 시작 이래 처음으로 400ppm을 넘었다고 발표했다. WMO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매년 2.1ppm씩 증가했다.

WMO는 지난 8일 “최근 5년이 인류 역사상 가장 더웠던 기간이었다”고도 밝혔다. 앞서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지난해 10월 이후 올 9월까지 11개월째 월별 역대 최고 기온 경신을 이어 가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기상 관측 이래 역대 최고 기온이었던 지난해의 기록이 올해 다시 한번 경신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보다 1.25도 이상 오를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지구 평균 기온이 산업혁명 전보다 2도 이상 상승하면 가뭄·홍수 등 심각한 기후 재앙이 닥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경고다. 기온 상승을 2도로 억제하기 위해서는 2050년까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0년보다 40~70% 감축해야 한다고 유엔 기후변화정부간위원회(IPCC) 등은 지적했다.

‘기후행동추적(Climate Action Tracker)’이라는 단체는 지난해 말 파리기후회의를 앞두고 “각국이 제출한 감축 목표가 제대로 이행되더라도 2100년까지 지구 기온이 2도를 넘을 가능성은 90% 이상”이라고 밝혔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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