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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공무원의 영혼

중앙일보 2016.11.16 01:00 종합 30면 지면보기
조민근 경제부 차장

조민근
경제부 차장

“정말 왜 그랬을까요….”

최근 사석에서 만난 한 경제부처 간부는 참담한 표정이었다.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의 퇴진을 종용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였다. 그는 공개된 통화 녹취의 목소리를 듣고서도 “내가 알던 그 양반이 맞나 싶었다”고 했다.

조 전 수석은 정통 경제관료다. 또래 엘리트의 상징인 ‘KS(경기고·서울대)’ 출신에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에서 경제정책국장·차관보 등 핵심 보직을 거쳤다. 뛰어난 기획력에 일 처리도 꼼꼼해 그를 아끼는 상관들이 많았고, 후배들이 뽑는 ‘가장 닮고 싶은 상사’에도 선정되기도 했다. 그런 그가 민간기업의 오너에게 뚜렷한 이유도 없이 물러나라는 요구를 전달하고, 이를 “경제수석으로서 해야 할 도리를 하는 것”이라고 강변했다. 정말 ‘VIP(대통령)의 뜻’이었다면 공무원으로서 느끼는 중압감은 컸을 것이다. 그렇다해도 씁쓸함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사실 최순실 사태 초기만 해도 관료사회에선 “우리는 사조직에 희생된 피해자”라는 인식이 강했다. 이른바 부역자로 ‘청와대 문고리’들과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등 비(非)관료 출신, 즉 ‘어공(어쩌다 공무원)’들이 지목되면서다. 최씨 측근들에게 부처 전체가 유린당한 문화체육관광부를 보는 시각도 미묘했다. 동정의 목소리가 컸지만 한편으론 ‘그렇게 당하면서도 아무 소리 못해 관료의 자존심을 망가뜨렸느냐’며 원망하는 뉘앙스도 묻어 나왔다. “그 부처는 행정고시 출신들이 적어서…”라는 식의 거리 두기 시도도 있었다.

하지만 ‘늘공’(늘상 공무원)의 대표선수까지 국정 문란의 한낱 도구로 쓰인 정황이 드러났으니 더 이상 해명은 어려워졌다. 때맞춰 ‘이상했던 인사, 정책’이 회자되고, 흉흉한 ‘살생부’가 입에서 입으로 옮겨진다. 정부세종청사도 본격적인 개점휴업에 돌입했다. 안갯속 정국은 수습되더라도 공직사회에 밀어닥칠 후폭풍이 그리 간단치 않을 것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걱정되는 건 리더십이란 동력이 끊긴 상황에서 관료집단까지 흔들리면 ‘냉장고 속 국정’은 상하는 수준을 넘어 썩어 문드러질 수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다. 대부분은 국민을 위해 살겠다는 영혼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아마도 동요하는 관료사회를 다독이고 싶었을 것이다.

‘영혼 없는 관료’는 독일의 사회과학자 막스 베버가 한 얘기다. 일견 부정적인 평가로 보이지만 개별적 인격이 아닌 제도적 합리성과 전문성으로 움직이는 근대적 관료제의 특질을 적확하게 지적했다. 그러니 거창한 영혼까지 갈 필요도 없다. 베버가 설파한 현실적인 직업윤리부터 되새겨 주기를 간곡히 바라고, 요구한다. 관료사회에 난 깊은 상처를 치유하는 일 역시 여기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어차피 ‘영혼’이니 ‘기운’이니 하는 말들은 앞으로 상당기간 금기어가 될 테니 말이다.

조 민 근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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