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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뇌 기능이 마비된 듯한 청와대

중앙일보 2016.11.16 01:00 종합 31면 지면보기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 초대 중앙인사위원장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
초대 중앙인사위원장

몸으로 치면 뇌에 해당하는 청와대가 뇌성마비 중병에 걸렸다. 혈류(血流) 같은 인사에 피떡이 껴서다. 청와대는 없는 호랑이를 만들어낸 3인(三人成虎) 때문에 폐허가 되었다. 거기에 ‘2인자 정치’까지 가세했다. 시스템에 버그가 낀 꼴이 된 정부는 꼼짝하지 못한다. 권력 좇기에 여념이 없는 향권충(向權蟲)이 곳곳에 날아들었다.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은 권력의 본질을 모르는 이들은 마구 걷다 미끄러져 넘어지다 못해 풍덩 했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마오쩌둥). 레드 카펫에서도 나온다(나폴레옹). 권력은 문(고리)에서 나온다는 것이 ‘청와대 게이트’의 진면목이다. 원래 워터게이트는 호텔과 몰(mall)의 이름이다. 권력은 수렵과 채집 시대부터 식량 저장고의 문고리를 잡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나왔다.

새 피를 주입하려고 도입한 개방형 인사제도가 농락당했다. 예술과 체육의 고유 가치는 내팽개치고 교환가치밖에 모르는 인간이 1급 자리에 앉았다. 문화융성 같은 프로젝트는 정부보다 유능하고 믿을 만한 민간 부문에 맡기는 것이 21세기 공유정부(共有政府)로 가는 길인데 사악한 2인자가 정부를 어두운 뒷길로 안내했다.

이승만 정부를 망친 사람을 2인자 이기붕이라고 흔히 칭하지만, 뒤에는 프란체스카 도너와 박마리아가 있었다(『제1공화국 경무대 비화』, 박용만). 이기붕은 병약했다. 두 사람은 우남을 대신해 주중 대사로 정항범(鄭恒範)을 앉히려고 했다. 외무장관 장택상은 1910년대 영국 에든버러대에서 같이 공부한 사이라 ‘깜’이 아니라는 것을 진즉 알고 있었다. 한사코 말리다가 장관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당시 장관들은 대통령과 맞설 정도로 기개가 있었다.

오늘날 정부의 고위직들은 숨을 죽이고 입을 다물고 눈을 감아 버린다. 이번 국정 농단에서 관료들은 무인간(無人間)이 되어버렸다. 큰 인물을 찾기 힘들다. 황교안 총리가 송영길 의원에게 혼쭐이 나는 것을 보면 안다. 유진룡 장관도 러시아 순방 대신 스스로 물러났었으면 좋을 뻔했다. 외국 순방길에 오른 장관을 해임하는 것으로는 박정희도 다르지 않았다. 해공(海公) 신익희는 장관을 국기(國器)라고 했다. 나라 그릇이 깨지고 비면 안 된다.
미국의 사회학자 피터 버거는 확신도 좋지만 자신을 늘 의심하라고 했다. 독일의 철학자 미하엘 슈미트 살로몬은 뇌에 독선 바이러스가 침입하지 않도록 의심하고 경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팀 리더십이 21세기 대세다. 스타 플레이어보다 팀이 뭉쳐야 이긴다. 오케스트라의 제2 바이올린 주자들은 빛은 덜 받지만 악단을 위해 봉사해 훌륭한 교향을 고조한다. 세상에는 훌륭한 2인자가 많다. 기업에는 크라이슬러의 로버트 러츠와 마이크로 소프트의 스티븐 발머를 대표로 친다.

정계에는 소아마비로 쓰러져 7년 투병 생활을 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을 지킨 루이스 하우라가 있다. 그는 주군을 무조건 떠받들지 않고 비판자 역할을 충실히 했다. 이 밖에도 대표적인 짝이 이성계와 정도전,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周恩來), 그리고 해리 트루먼과 조지 마셜 등이다. 주군을 망친 2인자를 우리나라에서만 봐도 이승만과 이기붕, 박정희와 차지철, 박근혜와 최순실이 있다. 최는 종군이 아니라 주군을 넘보며 곳곳에 촉수를 뻗고 천하를 농락했다. 21세기 국가가 봉건시대만 못하게 되었다.

대권을 장악하면 국회의원과 보좌관 차원을 휠씬 넘어 일순간에 안 하던 온갖 일을 해내야 한다. 큰 짐을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우니 옆에서 거들지 않으면 안 된다. 아인슈타인이 일찍이 경고한 말이 있다. 문제를 보는 눈들이 옛 사고, 습관, 방식 그대로라면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뇌를 소생시켜야 한다. 새 대통령은 청와대부터 손봐야 한다. 심리학과 인지 뇌과학의 도움으로 신경정치학에서 말하는 대로 해야 한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는 2004년 부시가 대통령에 당선될 때와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정책으로는 민주당 쪽이면서 공화당 후보를 선택한 것은 그쪽 후보가 유권자의 마음과 가슴을 파고들었기 때문이라던 드루 웨스턴의 분석이 상기된다.

새 대통령은 국정을 바른 정신과 마음과 가슴을 가진 팀에 맡겨 미국 백악관 인사팀처럼 청와대를 운영하면 된다. 사람을 의심해 범인으로만 보려는 검사의 눈으로는 좋은 국기(國器)를 고르지 못한다. 인사를 민정에서 떼내야 한다. 인사혁신처를 하수인으로 전락시키지도 말아야 한다. 임기가 보장된 장이 일하면 정부엔 맑은 피가 흐를 것이다.

높은 자리의 엘리트일수록 자부심과 자만에 빠져 자신들이 호모 데멘스(homo demens·우매한 인간)가 되는 줄 모른다. 개인이 아무리 우수해도 팀이 아둔하고 지성이 낮으면 모든 것이 무위로 돌아간다. 같은 그릇을 오래 쓰면 물이 샌다. 권력의 본질을 알고 고언을 서슴지 않는 믿을 만한 팀부터 짜는 것이 치유의 지름길이다.

김 광 웅
서울대 명예교수·초대 중앙인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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