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터뷰] “가온 없었다면 미쉐린도 없었다”

중앙일보 2016.11.16 00:01 강남통신 6면 지면보기
| 미쉐린 3스타 ‘가온’ 운영하는 조태권 회장
 
조태권 회장은 ‘2017 미쉐린 가이드 서울’ 에서 한식당 ‘가온’과 ‘비채나’로 각각 별 3개와 1개를 받으며 한식 세계화를 위한 그간의 노력을 인정받았다. 그는 “가온이 없었다면 미쉐린 가이드 도입은 요원했을 것”이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김경록 기자

조태권 회장은 ‘2017 미쉐린 가이드 서울’ 에서 한식당 ‘가온’과 ‘비채나’로 각각 별 3개와 1개를 받으며 한식 세계화를 위한 그간의 노력을 인정받았다. 그는 “가온이 없었다면 미쉐린 가이드 도입은 요원했을 것”이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김경록 기자


500억 원. 조태권(68) 광주요 회장이 한식세계화를 위해 쏟아부었다고 소문난 비용이다. 정확한 액수를 묻자 조 회장은 “그보다는 더 많을 것”이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1988년 창업주인 부친에게 광주요를 물려받은 그는 2003년 청담동에 한식당 가온을 열고 고급 소주 화요를 내놓는 등 한식문화기업의 틀을 만들었다. 그러는 동안 ‘무모하다’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녔다. 그러나 이달초 발표된 ‘2017 미쉐린(미슐랭) 가이드 서울 편’하나로 그의 노력과 투자가 결코 틀리지 않았다는 게 확인됐다. 그의 식당이 무려 별 4개(가온 3개, 비채나 1개)를 받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미쉐린 가이드의 진정한 승자는 조 회장”이라는 평이 나올 정도다. 별 3개를 받은 가온은 내년 1월 중순까지 예약이 마감됐고, 매일 아침마다 수십통의 문의 전화를 받느라 직원 2명이 대기중이다.


한식 위해 18년의 시간 쏟고, 500억 넘게 투자
일찌감치 셰프 유학 보내고 오픈키친 도입
미국서 ‘1인당 370만원’ 한식 만찬도 선봬


“내가 한식 세계화의 틀 마련했다고 자부”
지난 정부보다 못한 현 정부의 한식 사업
미쉐린으로 돌파구 찾아, 이제 세계와 경쟁을


 


-미쉐린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던데.
“가락동 사무실에서 회의 하다 연락 받았다. 듣는 순간 부모님 생각이 났다.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도자기로 시작해 지금까지 오면서 굴곡도 많았다. 그 결실이 이렇게 나왔다고 생각하니 부모님 생각이 날 수밖에. 그동안 옆에서 지켜봐 준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온 일을 이뤘다’며 축하 문자와 전화를 줬다. 분명 기쁘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별 셋 받은 영광의 얼굴들. 김병진 가온 셰프와 마이클 앨리스 미쉐린 가이드 인터내셔널 디렉터,김성일 신라호텔 한식당 라연 셰프(왼쪽부터).

별 셋 받은 영광의 얼굴들. 김병진 가온 셰프와 마이클 앨리스 미쉐린 가이드 인터내셔널 디렉터,김성일 신라호텔 한식당 라연 셰프(왼쪽부터).


-가온이 별 3개를 받을 거라 예상했나.
“솔직히 자신은 있었다. 요즘 한식이 인기인데 내가 한식의 틀을 마련했다고 자부한다. 2003년 가온을 열어 코스 요리를 선보이고 셰프를 해외로 보내 공부시켰다. 국내 한식당 최초로 오픈 키친도 선보였다. 1997년부터 성북동 자택에 지인을 초대해 한식을 주제로 만찬을 열며 꾸준히 노력했다. 그렇게 보낸 시간이 18년이다. 그렇게 축적됐기에 다른 식당보다 월등히 낫다고 생각한다. 또 세계 여러 도시의 미쉐린 레스토랑을 가봐도 우리만한 곳이 없었다. 별 3개를 예상했지만 뚜껑을 열기 전까지는 알 수 없었다.”


-2008년 문을 닫았다가 2014년 도산대로에 다시 가온을 열었다. 이곳으로 옮긴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호림아트센터 때문이다. 이곳은 우리나라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분청 작품이 가장 많은 곳이다. M층에 식당을 낸다고 했을 때 아트센터에서 흔쾌히 허락했다. 이번에 3스타를 받은 걸 알고 가장 기뻐한 사람 중 하나도 윤재륜 관장님이다. 앞으로 가온에 온 외국인에겐 무료로 미술관 전시를 관람할 수 있게 하기로 했다. 이렇게 하면 세계에 호림아트센터를 알릴 수 있는 기회도 된다.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별 3개를 유지해야 한다는 부담이 클 것 같다.
“아니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부담이라면 그저 세계와 경쟁해야 하는 부담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다. 내년에 만약 별을 못받는다면 그만큼 더 노력하면 된다. 그게 발전할 수 있는 동력이다. 28년동안 난 내 모든 걸 걸었다. 그동안 내가 실패하면 어떡하나 그런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항상 앞으로 나가야 한다.”


-이번 미쉐린 가이드에 유독 모던한식 레스토랑이 많더라.
“한식을 굳이 전통과 모던으로 구분해야할 이유가 있나. 한식이라는 틀 안에서 종류가 다양해지는 것이다. 모던이라는 말 자체가 필요없다. 이 세상에 퓨전 아닌 음식이 어디있나. 한식이 세계인 입맛을 맞추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미쉐린 가이드 발간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동안 외국의 유명 셰프들이 한국에 꽤 다녀갔지만 달라진 게 뭔가. 한식이 세계로 나가야한다. 나갈 수 있는 품격을 씌워준 게 바로 미쉐린이다. 간장게장이 별 1개를 받았다고 놀라는데 그건 모르는 소리다. 음식은 길들여지는 거다. 일본 스시를 처음부터 외국인들이 좋아했나. 날생선을 먹는 야만인이라고 욕했다. 그러나 최고급 식문화로 틀을 갖춰 선보이자 외국에서 통했다. 우리 간장게장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우리끼리 게장이 맛있고 최고라고 해도 세계에선 모른다. 이젠 다르다. 간장게장이 미쉐린을 받았으니 먹어보고 싶어하는 외국인이 많아질 거다. 또 앞으로는 미쉐린 품격에 맞는 그릇을 사용하면서 품격에 어울리는 공간으로 만들어지지 않겠나. 그럼 다음에 별 2개, 3개도 받을 수 있다. 이번 미쉐린 가이드가 세계에 맞는 기준을 보여줬으니 이제 공부하고 경쟁해서 발전하면 된다.”
 
그릇과 음식의 조화를 중요하게 여기는 가온 메뉴들. 가온 대표 메뉴 ‘성게알골동반반상’ [사진 가온]

그릇과 음식의 조화를 중요하게 여기는 가온 메뉴들. 가온 대표 메뉴 ‘성게알골동반반상’ [사진 가온]


-일각에선 시기상조라고 비판한다.
“(식)문화에 시기상조가 어디 있나. 무식한 소리다. 먼저 누군가 시작하면 누구는 따라가는 거다. 2014년 가온을 다시 열 때 나는 미쉐린 가이드가 곧 들어올 거라고 공언했다. 한식 시장을 연 게 가온이다. 만약 가온이 없었다면 미쉐린 가이드 도입은 요원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시장도 없는데 어떻게 들어올 수 있었겠나. 한식의 틀을 만든 게 나다. 아무도 인정하려 하지 않겠지만.”


-가업인 도자기에서 음식문화로 확장한 이유가 뭔가.
처음에 가업을 물려받았을 땐 ‘도자기 쯤이야’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도자기가 식문화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시각이 달라졌다. 당시만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조차 전부 외국 도자기를 쓰더라. 그래서 세계에서 도자기로 유명한 프랑스·일본 등을 가보니까 공통적으로 음식, 그리고 음식과 어울리는 술이 유명하더라. 음식은 결국 그 가치에 맞는 도자기에 담겨야 완성되고, 그런 음식을 제대로 즐기려면 어울리는 술문화도 있어야 한다. 그 모든 걸 즐길 수 있는 곳이 바로 식당이다. 그런 면에서 식당은 밥 한끼 때우는 곳이 아니라 그 자체가 작은 복합문화공간이다.”
 
그릇과 음식의 조화를 중요하게 여기는 가온 메뉴들. 가온 대표 메뉴‘장어구이’ [사진 가온]

그릇과 음식의 조화를 중요하게 여기는 가온 메뉴들. 가온 대표 메뉴‘장어구이’ [사진 가온]


-지금까지 오는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2007년 미국 나파 밸리에서 연 한식 만찬이 화제가 되며 가온도 유명세를 탔다. 그런데 가온이 있던 건물이 부동산 문제에 휘말렸다. 투자자들이 건물이 지어진 땅을 구입해 내게 80억에 사거나 매달 5000만원을 내라는 터무니 없는 조건을 제시했다. 한식 수준이 올라간다는 생각에 설랠 때였지만 그런 일이 있으니 ‘신이 잠시 일을 접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한식 세계화의 근간이 되었던 가온을 접으며 캐주얼한 분위기의 한식당 녹녹과 주점 낙낙 등 다른 식당도 모두 접었다. 중국 베이징 가온도 접었다. 남들은 실패라고 했지만 난 실패라고 한 반도 생각하지 않았다. 실패가 아니라 잠시 중단한 거였다. 문화는 축적되는 거다. 문화를 두고 실패라고 하는 건 몰라도 한참 모르는 소리다.”


-한식전도사라라 불릴만큼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2007년 나파밸리의 최고급 한식 만찬이 한식 세계화라는 화두를 제대로 던졌다. 이때부터 자타공인 한식 세계화 전도사로 통했다. 나파밸리는 미국의 최고급 와인과 고급 식문화가 응집된 곳 아닌가. 그곳에서 한식의 가치를 확인하고 싶었다. 최고 와이너리 대표를 비롯해 미국 식문화를 선도하는 지역 유지 60여 명을 초대해 1인당 370만원짜리 최고급 한식을 제공하는 만찬을 열었다. 반응이 상당히 좋아 한식의 가능성도 확인할 수 있었다.”


-성북동 집에서도 꾸준히 한식 만찬을 열었다.
“1997년 시작했다. 2003년 가온을 열면서 잠시 중단했던 걸 2012년 다시 시작했다. 정계·관계·재계·문화계 인사들을 10명씩 초대했으니 그 수가 600여 명에 이른다. 내로라하는 저명인사를 초대해 최고급 한식을 선보였는데 까다로운 이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것을 보고 고급 한식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한식을 알리는 기회도 됐다.”
 
2007년 미국 나파밸리 한식 만찬에서 선보여 화제가 된 ‘랍스터 떡볶이’[사진 가온]

2007년 미국 나파밸리 한식 만찬에서 선보여 화제가 된 ‘랍스터 떡볶이’ [사진 가온]


-그토록 한식세계화에 매달린 이유가 뭔가.
“나라가 안하니까 내가 한 것이다. 세계에 한 달에 한 번 일식 먹는 사람을 20억 명으로 본다.그들이 1년 먹는 걸로 환산하면 240억인분, 한 끼 20달러로만 쳐도 1년에 무려 4800억 달러다. 4800억 달러는 우리나라 돈으로 530조원 정도다. 우리나라 올해 예산안의 총지출(378조원)보다 많은 액수다. 왜 우린 아무도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앞으로 한식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됐으니 미국은 보호무역을 할거고 우리 스스로 강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살 길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중 하나가 한식이다. 음식은 단순히 먹는 게 아니라 산업의 근간이다. 다행히 미쉐린 덕분에 엄청난 돌파구가 생겼다.”


-MB정부에선 한식세계화 사업을 적극적으로 펼쳤으나 실패했다.
“MB정부의 한식 세계화 사업은 코미디였다. 영부인 사업이었다. 나한테도 참여 제안이 와서 회의를 몇번 들어가봤는데 주도하는 사람들이 문화라는 거 자체를 모르더라. 한식 세계화에 나라가 끼면 안된다. 예산을 따려고 물을 흐리는 사람이 나오고 그걸 감사하겠다면서 이렇게 하면 안되고 저렇게 하면 안된다고 하는 식으로 간섭만 하게 된다. 과시 행정이다.”
 
게살·생선·소고기김치산적의 ‘삼색전’[사진 가온]

게살·생선·소고기김치산적의 ‘삼색전’ [사진 가온]


-그렇다면 현 정부의 한식세계화 사업은 어떻게 평가하나.
“지난 정부보다 더 못한다. 문화융성위원회라는 걸 만들었는데 문화융성이 뭔지도 모르더라. 전부 한 사람이 맡아 돈되는 것만 가져오니 전체를 못본다. 지도자의 잘못도 있다. 요즘의 국가 지도자는 경영자가 돼야 한다. 경영자란 다 알아야 하는 사람이다. 그런 면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너무 천진난만했다. 배우려고도 하지 않고 포장된 것만 보고 다 된줄 알았으니 말이다.”


-정부의 바람직한 역할은 뭘까.
“정부는 그저 규제를 풀어주고 잘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해주면 된다. 또 국민들에게 식문화의 중요성을 교육시키고 경제적 효과에 대해 알려줘야 한다. 음식이 문화산업이 될 수 있다는 걸 알려줘야 한다는 얘기다. 국내 식자재 연구도 정부 몫이다. 우리 농촌에서 나오는 좋은 식자재를 식당과 연결해주고 이를 사용하면 식당에 장려금을 주면서 농촌과 식당이 함께 살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게 공공성이다.”


-앞으로 계획은.
“식재료의 중요성을 알기에 지금도 좋은 재료를 찾아다닌다. 앞으로 인원을 늘려 더 체계적으로 할 계획이다. 한식 대중화에도 속도를 더 낼 계획이다. 식재료를 냉동해 사용함으로써 비용을 낮추고 술은 병 대신 잔술로도 판매할 생각을 하고 있다. 13년을 함께 한 김병진(가온) 셰프에겐 한식 세계화 관련 큰 역할을 맡길 생각이다. 가온이 미쉐린 셰프 배출의 산실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