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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현장 클릭] “영어 말하기 수업 겁 안 나요” … 토종 발음도 자신만만

중앙일보 2016.11.16 00:01 Week& 3면 지면보기
압구정고 맞춤형 영어교실
11일 서울 압구정고 2학년 4반의 영어 수업 . 학생들은 각자 맡은 부분을 공부한 후 서로에게 설명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한다.

11일 서울 압구정고 2학년 4반의 영어 수업 . 학생들은 각자 맡은 부분을 공부한 후 서로에게 설명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한다.

부모 세대와 달리 요즘 중·고교엔 말하기·듣기를 강조하는 영어 실습 수업이 늘고 있습니다. 문법·독해 위주의 ‘영어 편식’을 극복하기 위해서죠. 하지만 모든 학교에 정착됐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일반고에선 소수의 우수 학생과 교사 간의 수업이 되기 십상이죠. 하지만 서울 압구정고 2학년의 영어 수업은 다릅니다. 환경오염, 독도 문제, 성차별처럼 쉽지 않은 주제에도 많은 학생들이 참여합니다. 어떤 비결이 있을까요.

영어로 역사 소개, UCC 제작 등 융합수업
성적따라 다른 과제로 수준별 학습
학생들 “우리가 주인공, 틀려도 재밌어”


‘토종 발음’도 괜찮아! 일단 말부터
지난 11일 오후 2시, 서울 압구정고의 영어교실에 2학년 4반 학생들이 모였다. 수업이 시작되자 조별 발표가 시작됐다. 2학기초부터 모둠별로 준비해온 프로젝트의 개요와 진행 상황을 소개했다. 대부분 영어로 진행된 이날 수업에서 정윤교(17)양은 모둠을 대표해 그간의 활동을 발표했다. 이면지 사용의 중요성을 홍보하기 위해 정양과 친구들은 직접 이면지로 노트 40권을 만들어 급우에게 줬다. 정양은 또렷한 발음과 간결한 문장으로 활동을 소개했고, 다른 조 학생의 질문에 자신감 있게 답했다.

수업 뒤 정양은 “처음엔 외국에 살아본 적이 없고, ‘토종 발음’도 부끄러워서 입도 열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습이 거듭되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정양은 “이젠 틀려도 영어로 말하는 게 재미있다. 학원보다 학교에서 훨씬 더 많이 배우고 있다”고 자랑했다.

압구정고는 일주일 5시간인 영어 수업을 둘로 나눴다. 3시간은 문법·독해를 중심으로 교과서를 공부한다. 나머지 2시간은 말하기·쓰기 등의 실습 수업이다.

실습 수업의 주인공은 학생이다. 이날 실습 수업을 진행한 장은경 교사는 입버릇처럼 학생들에게 “오바마 대통령도 (문법은) 틀릴 수 있다”고 강조한다. 문법·발음에 연연하지 말고 일단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것에 집중하라는 주문이다.

실습 수업은 교사가 설명하는 시간보다 학생이 묻고 답하는 시간이 길다. 발표를 위해 학생들은 스스로 공부한다. 독도의 역사를 조사해 발표한 백유진(17)양은 “발표를 준비하면서 자연스레 ‘territory’(영토)와 ‘land’(땅)의 차이를 배웠다.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영어를 배워 즐겁다”고 말했다.

스마트폰 퀴즈쇼, 동영상으로 흥미를
교사들은 학생들의 참여를 이끌기 위해 다양한 ‘장치’를 마련했다. 매번 수업 막바지엔 ‘스마트폰 퀴즈쇼’가 기다린다. 교실 앞 스크린에 문제가 뜨면 모둠별로 스마트폰을 통해 답을 입력한다. 정답 여부, 어느 모둠이 맞혔는 지가 스크린에 뜬다. 백양은 “똑같은 문제풀이인데 모르는 걸 친구에게 물어봐도 되고 게임 같아 재밌다. 나만 틀리면 긴장감이 생겨 열심히 하게 된다”고 말했다.

동영상도 자주 활용된다. 장 교사는 지난해 수업에선 외국인 친구와 찍은 동영상을 보여줬다. 영상 속 외국인은 불고기와 상추가 놓인 식탁 앞에서 “How?(어떻게)”를 연발한다. 학생들은 영상을 보면서 단계별로 한국의 식사 예절을 설명하는 역할을 맡는다. 올해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자매결연 학교에 한국여행을 안내하는 UCC를 제작해 보냈다.

장 교사는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떠오를 때마다 수첩에 정리한다. 그는 “‘교과서는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학생이 많아 교과서로만 수업을 진행하면 흥미를 주기 어렵다. 학생들에게 즐거움을 주면서도 어휘, 다양한 지식을 함께 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업도 과제도 학생의 의견·수준 반영
압구정고의 영어 실습은 반마다 내용과 방식이 다르다. 장 교사는 “반마다 학생 간 실력 차이가 적지 않고, 선호하는 수업 방식도 다르다. 학생들의 의견을 받아 반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4반 수업은 다른 반에 비해 교사 설명이 상세한 편이다.

한 반 학생들이 함께 듣는 수업이지만, 과제는 실력에 따라 나눠 낸다. 예를 들어 영어에 능숙한 학생에겐 수업에서 배운 어휘와 유사한 어휘·어구를 찾아 영작하라는 과제를 낸다. 다른 학생들에겐 수업에서 새로 배운 어휘의 뜻과 철자를 충실히 익히도록 한다.

학생 참여도를 높이기 위해선 수업과 평가의 연계도 중요하다. 이 학교 2학년 영어교사들은 매달 수업 계획을 공유한다. 특히 일반 수업어과 실습 수업이 잘 연계되고 있는 지 점검한다. 또한 실습에서 진행한 프로젝트와 심화학습이 학생부에 충실히 기록될 수 있게 노력한다. 장 교사는 “내신·수능 대비도 충실히 하면서, 가급적 많은 학생들에게 학생부에 기록할 수 있는 경험을 주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백민경 기자 baek.min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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