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천석의 내 마음속 몬스터] 노력할수록 더 엇나가는 아이, 나도 이제 지치는데 …

중앙일보 2016.11.16 00:01 강남통신 10면 지면보기
서천석의 ‘내 마음속 몬스터’를 시작합니다. 분노, 질투, 외로움, 조바심 … . 나를 스스로 괴롭히며 상처를 주는 내 마음속 몬스터들입니다. ‘서천석의 내 마음속 몬스터’를 통해 내 안의 몬스터를 발견하고 이해하며 화해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봅니다.

부모에게 받은 만큼 아이에게 주려했지만
오히려 아이와의 관계는 점점 더 나빠져
상처도 성장의 경험, 아이를 기다려줘야
상처 없이 자란 엄마, 상처받는 아이
“다 저 녀석 때문이에요.”
혜민씨는 아이를 노려보며 이야기했다. 아이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런 말은 이미 몇 번이나 들었을 것이다.

“저 녀석만 제대로 했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거예요. 한두 번은 어리니까 그럴 수도 있지 했어요. 그런데 그냥 뭐든 자기 멋대로예요. 학교도 가고 싶으면 가고 가기 싫으면 안 가요. 죄책감도 없어요.”

혜민씨의 삶은 비교적 잘 흘러왔다. 안정적인 가정에서 태어나 괜찮은 성취를 이루며 성장했다. 이름을 대면 고개를 끄덕일만한 대학을 나왔고 직장 생활도 했으며, 꿀리지 않을만한 배경의 남자와 결혼을 하고 꾸준히 집값이 오르는 동네에 자기 집을 갖고 살고 있다.

부모님은 많은 노력을 했다. 어릴 때부터 혜민씨는 주변의 주목을 받는 아이였다. 어머니는 혜민씨의 복장에 늘 신경을 썼다. 깨끗한 피부에 호감을 주는 얼굴인데다 깔끔하고 세련된 옷차림이 더해지니 혜민씨 주변엔 늘 아이들이 있었다. 어머니는 학교에 자주 오셨고 일부러 초등학교 근처로 이사를 간 덕에 자주 친구들이 집에 놀러왔다. 아이들은 통학 버스를 일부러 보내고 혜민씨 집에서 늦게까지 놀다가 갔는데 어머니가 특별히 사준 커다란 인형 집과 열 개도 넘는 마론 인형들은 최고의 인기였다. 혜민씨 집에 놀러가는 것은 아이들 사이에서 일종의 특혜였기에 혜민씨는 노력하지 않아도 늘 주변에 친구들이 있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공부가 점점 힘들어졌다. 약간의 좌절감을 맛보았지만 어머니는 나름의 길을 찾아주었다. 처음에는 국악기를, 다음에는 의상 디자인을, 마지막으론 운동을 시켰다. 운동은 어릴 때부터 하던 것이라 힘들지 않았다. 공부는 조금 힘들었지만 늘 몇 분의 선생님이 도와주셨다. 숙제도 봐주고, 시험 문제도 뽑아주고, 그래도 그것을 따라한 것은 혜민씨의 노력이었다. 여기에 대해 혜민씨는 자부심이 있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데.

혜민씨의 어린 시절이 꼭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자주 꾸던 꿈이 있었다. 학교에 갔는데 아이들이 나를 바라보지 않고 모두 돌아앉아 있다. 말을 걸어 봐도, 심지어는 팔을 잡고 흔들어도 아이들은 혜민씨를 보지 않았다. 속이 메스꺼워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면 꿈에서 깼다. 불안이었다. 아이들이 나를 봐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혜민씨는 그것이 불안했고 종종 엄마에게 물었다. 애들이 나를 안 좋아하면 어떡하지? 엄마는 그럴 일은 없다고 했다. 너는 세상에서 가장 예쁜 아이라고.

혜민씨는 상처를 입을까봐 두려웠지만 상처를 입게 될 일은 없었다. 그럴만한 일이 벌어지면 부모님이 나서서 해결해주셨다. 부모님은 정말 최고였고, 고마운 분들이다. 친구들은 자기가 필요할 때만 나를 찾곤 하지만 부모님은 그렇지 않다. 지금도 자주 해주신 그 위로가 생각이 난다. “널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친구에겐 관심 갖지 마. 엄마가 이렇게 널 소중하게 생각하는데, 그런 너를 함부로 대하는 친구라니. 엄마는 네가 그런 애들을 만나는 것도 싫어.” 혜민씨는 친구에 대해 기대가 크지 않았다. 그러니 실망도 하지 않았다. 솔직하다는 핑계를 대며 함부로 하는 친구라면 가까이 하지 않았다. 내 속을 잘 드러내지도 않았다. 친구라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언제나 내 편을 들어줘야 한다. 그런 친구라면 나 역시 믿고 기꺼이 내 것을 내줄 수 있다.

타인의 시선에서 행복 찾으면 안돼
아이를 낳기 전까지만 해도 혜민씨의 삶은 무리가 없었다. 그런데 아이는 답이 없었다. 아이는 너무나 많은 것을 혜민씨에게 요구했다. 어느 누구에게도 해보지 않은 호의를 베풀었는데 아이는 만족하지 않았다. 아이와 혜민씨 사이에 거리는 없었고 아이를 볼 때마다 무능감을 느꼈다. ‘나는 괜찮은 여자다. 뭐든 잘 해왔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는 것은 너무 어렵다.’
 
『상뻬의 어린 시절』 따뜻한 화풍과 재치 있는 유머로 일상을 경쾌하게 그려내는 삽화가 장 자끄 상뻬. 그가 자신의 유년기를 회상하며 들려주는 인터뷰집이다. 그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꼬마들은 한없이 사랑스럽지만, 정작 그의 어린 시절은 외롭고 고단했다. 스스로 성장하며 자기 치유의 방법을 익혔던 상뻬의 순수함을 만나볼 기회다. 미메시스, 2만2000원.

『상뻬의 어린 시절』
따뜻한 화풍과 재치 있는 유머로 일상을 경쾌하게 그려내는 삽화가 장 자끄 상뻬. 그가 자신의 유년기를 회상하며 들려주는 인터뷰집이다. 그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꼬마들은 한없이 사랑스럽지만, 정작 그의 어린 시절은 외롭고 고단했다. 스스로 성장하며 자기 치유의 방법을 익혔던 상뻬의 순수함을 만나볼 기회다. 미메시스, 2만2000원.

혜민씨는 자주 도망갔고 그럴수록 아이는 더 혜민씨를 힘들게 했다. 육아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면 아마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혜민씨는 파트타임 일을 하며 그 시기를 넘겼다. 그런데 문제는 학교생활이었다. 아이는 학교생활을 잘 하지 못했다. 친구들 사이에서 쭈뼛거리고, 공부도 잘 하지 못했다. 선생님을 붙여서 도와줬지만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아이는 점점 엇나갔고 그럴 때면 혜민씨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게다가 공짜로 도와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아이를 뒤처지지 않게 하려고 혜민씨는 나서서 도와주면서 동시에 그 값을 치르게 하려고 아이를 혼냈다. 그런데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갔다.

혜민씨는 좌절한 적이 없다. 지금 처음 좌절을 맞이하고 있다. 아이는 답이 안 보이고, 남편은 아이를 그렇게 만들어서 창피해 죽겠다며 혜민씨를 비난한다. 남편도 실패해 본 적 없는 사람이다. 혜민씨는 자기에게 왜 이런 시련이 닥치는지 모르겠다며, 세상에서 제일 괴로운 사람이 자신일 거라고 이야기한다. 정말 그럴까? 누구의 괴로움이 더 큰지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할 테니 그의 아픔에도 나는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더 마음 아픈 쪽은 지금 저기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의 아이다. 아이는 사랑을 받지 못했다. 도움은 받았지만 사랑은 경험해 보지 않은 아이다. 혜민씨에게는 아이조차 자기를 빛내줘야 하는 존재다. 혜민씨에게 중요한 것은 남에게 비춰진 모습이다. 그의 행복은 오직 타인이 자기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온다. 남이 자신을 대단한 존재로 여겨줄 때만이 행복을 느끼기에 그 시선을 수집하러 다니는 것이 그의 삶이다. 관계 속에서 좌절을 경험한 적도 없고, 좌절 속에서 관계를 경험한 적도 없기에 그의 행복의 원천은 관계에 있지 않다. 힘든 시간을 넘어선 성취에 있지도 않다. 그저 호의적인 시선의 개수에 있다. 아이가 호의적인 시선을 얻어오지 못할 때 혜민씨는 아이와 함께 하는 것이 괴롭다.

왜 혜민씨의 부모는 혜민씨가 좌절하고, 그 좌절 속에서 무언가를 느끼도록 기다려주지 못했을까? 다양한 감정과 관계를 경험하도록 돕지 못했을까? 아이를 사랑했기에 아이가 상처 입는 것이 괴로웠을 것이다. 그것도 사랑은 사랑이다. 하지만 아이가 살면서 경험해야 하는 아픔을 부모가 견디지 못한다면 그 사랑은 아이에 대한 사랑일까? 아니면 연약한 부모 자신에 대한 사랑일까?
 
서천석은
1969년생. ‘아이와 부모의 마음을 잘 다독여주는 의사’로 유명하다. 서울대 의대와 대학원을 졸업한 후 ‘마음의 병의 뿌리는 어린 시절에 있다’는 걸 깨닫고 소아청소년정신과 의사가 됐다. 『그림책으로 읽는 아이들 마음』 『우리 아이 괜찮아요』 등 육아 분야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서울신경정신과 원장이자 행복한아이연구소 소장이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