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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view &] 광화문 시위에서 한국 경제 희망을 읽다

중앙일보 2016.11.14 01:00 경제 8면 지면보기
김준현 산업데스크

김준현
산업데스크

12일 저녁 광화문에 모인 이들은 얼핏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 같았다. 단상에 오른 이의 한마디 한마디에 열광했다. 개성 있는 복장과 피켓으로 자신을 표현한 이들도 많았다. 100만 시위대가 몰렸지만 그 어디에도 폭력은 없었다. 얼굴엔 미소가 흘렀다. 그러나 그들을 광화문으로 끌어낸 건 분노였다.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함부로 써버린 대통령에게, 그 권력을 등에 업고 사리사욕을 채운 이리떼에게, 기회의 균등이란 민주주의의 기초부터 지켜지지 않는 이 나라에 사람들은 분노했다. 해도 해도 너무 하고, 정상적인 이치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매스컴을 가득 메운다.

한 달 전 ‘박 대통령, 정몽구·이재용과 독대하라’란 글을 썼다. 경제가 하도 어려우니 대통령이 직접 기업인들을 만나 허심탄회하게 이런저런 얘기하다 보면 뭔가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다. 이게 얼마나 바보 같은 제안이었는지를 확인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대통령이 기업 총수들을 개별적으로 만난 게 알려졌다. 1년도 전에 총수들을 만난 대통령에게 ‘독대하라’고 다그쳤으니.

대통령은 지난해 7월 24일과 25일 이틀에 걸쳐 7개 대기업 총수들과 독대했다. 정몽구 회장, 이재용 부회장도 명단에 포함됐다. 대통령은 총수들과 마주 앉아 무슨 얘길 나눈 걸까. 중국의 추격을 따돌릴 비책은 없는지, 우리 경제의 미래 먹거리를 위해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얘기했을까. 그렇지만은 않은가 보다. 검찰이 대통령을 만난 총수들을 조사했다. 대통령도 직접 조사하기로 했다. 나의 바람과 달리 대화의 내용이 수상하기 짝이 없다는 게 증명된 것이다. 정말 대통령은 이 나라의 현실과 미래를 얘기하며 힘을 모으자고 한 것이 아니라 미르·K스포츠 재단을 들먹이며 돈을 구걸한 것인가.

지금 한국 경제 상황은 여느 때보다 나쁘다. 우리나라 간판기업치고 잘 나간다고 손뼉 쳐줄만한 기업이 거의 없다. 그나마 한국의 자부심으로 여겨졌던 삼성전자·현대자동차마저 흔들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훅 불면 넘어질 것 같은 게 지금 우리나라 기업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는 전경련을 통해 53개 기업에서 돈을 뜯었다. ‘정부가 내라는데 버틸 기업이 어딨냐’는 항변은 ‘뭔가 바라는 게 있으니 거액을 낸 게 아니냐’는 반박에 묻힌다. 이럴 때 어떤 기업이 투자하고 일자리 만들어내고 싶겠나.

벤처와 한류 관련산업이 치명상을 입게 된 것도 우리 경제의 큰 손실이다. 이번 정부가 내세운 창조경제와 문화융성 사업에도 최순실 일당이 개입했다는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나나고 있다. 당장 국회와 관련 부처는 이들 사업의 내년 예산을 대폭 삭감할 태세다. 꼭 이뤄내야 하는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이 주인을 잘못 만나 쓰레기통에 들어가야 할 신세가 된 것이다.

폭정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대통령을 많은 이들이 여전히 존경하는 이유는 국민을 먹고 살게 해줬다는 이유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마저 외면했다. 어떤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고, 창조경제처럼 우리에게 절실한 단어마저 얼룩져 못쓰게 만들었다. 대통령이 경제만 잘 다뤘더라도 광화문에 모인 100만 시위대가 이렇게 분노했을까.

절망의 끝에 희망이 있기 마련이다. 희망의 단초는 광화문에도 있다. 젊은세대는 ‘헬조선’이라며 기성세대를 비난하고, 기성세대는 수저 타령만 한다며 젊은이들의 불성실을 탓하지만 광화문에선 모두 하나가 됐다. 대통령은 여전히 70년대를 살고, 정치인들도 전근대적 파당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성숙한 시위를 통해 우리의 시민의식은 몰라보게 성장한 것을 증명했다. 직위와 권력을 믿고 까불면 언젠가는 죗가를 치를 것이라는 교훈도 진실임을 이번 사태가 증명한 것 아닌가. 또 있다. 우리는 시간을 벌었다. 이 모든 부정과 음모가 덮혀졌더라면? 우리는 아까운 시간을 5년 더 흘러보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에겐 희망이 있다.

김 준 현
산업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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