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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차·고 이어 정유라 곧 자진 귀국, 보이지 않는 힘이 돕나

중앙일보 2016.11.11 02:29 종합 12면 지면보기
최순실(60·구속)씨의 국정 농단 사건에선 이전의 대형 권력형 비리 사건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장면이 연출됐다. 검찰의 수사 착수 직전 해외로 도피했던 현 정부 ‘비선 실세’ 최씨는 물론 그의 최측근으로 활동한 차은택(47·CF 감독), 고영태(40·더블루K 이사)씨가 어찌된 일인지 줄줄이 자진 귀국해 검찰 조사에 응했다. 과거 역대 정부 게이트 수사에서 해외로 도피했던 주요 인물들이 짧게는 2년, 길게는 13년 동안 장기 도피 생활을 한 것과 다르다.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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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 등 야권은 10일 “3인방 모두 현지에서 변호인을 선정한 후 미리 입을 맞춘 정황이 있다”며 “사정기관 내부 ‘최순실-우병우(49·전 민정수석) 사단이 움직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기획 입국설’을 제기했다.
이들 가운데 고씨는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이 불거지자 지난 9월 초·중순 출국했다. 태국 방콕에서 은신해 오다가 약 50일 만인 지난달 27일 귀국한 뒤 검찰에 자진 출두했다. 고씨의 오랜 지인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고씨에게 ‘왜 들어왔느냐’고 물어보니 ‘나라에서 죽일 수도 있겠다는 느낌에 무서워서 들어왔다’고 답하더라”고 전했다.

야당 “3인방 현지서 입 맞춘 정황
사정기관 핵심 요직에 포진한
최순실·우병우 라인 동원 가능성”
과거 대형 게이트 관련 인물들
길게는 13년 도피하는 것과 달라

(※ 고영태씨의 출국 시점에 대해 한국체육대 동기인 노승일 K스포츠재단 부장은 언론을 통해 "JTBC가 2016년 10월 19일 고씨가 '회장(최순실)이 제일 좋아하는 건 연설문 고치는 일'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한 직후 최씨로부터 '얘가 사고를 쳤다. 한국에 있으면 죽는다. 외국으로 내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이튿날인 10월 20일 고씨를 만나 인천공항까지 태워준 후 홍콩을 경유해 태국으로 출국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국민일보 2017년 2월13일 자 3면)

최씨는 수사 착수 한 달 전인 지난 9월 3일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출국했다가 JTBC가 지난달 그의 태블릿PC를 입수해 대통령 연설문 등의 기밀 자료가 들어 있다고 보도하자 같은 달 26일 현지에서 언론 인터뷰를 통해 “태블릿PC를 사용할 줄 모른다. 내 것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당시 “몸이 안 좋아 귀국하기 어렵다”고 했던 최씨는 나흘 후 자진 귀국해 검찰에 체포됐다. 이후 최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먼저 연설문과 정책문서 등을 봐 달라고 부탁했다”고 말을 바꿨다. 박 대통령이 대국민사과에서 “순수한 마음에서 한 일”이라고 연설문 수정을 시인한 것과 일치하는 진술이다.

39일간 중국에 도피해 있다가 지난 8일 귀국한 차씨는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조금 안다”고 시인한 반면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모른다”고 말했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이날 본지와의 통화에서 “비선 실세 3인방의 자진 귀국과 검찰 수사 대처 방안을 지휘하는 여권 실세가 있는 것으로 안다”며 “국가정보원과 검찰·경찰 등 사정기관 핵심 요직에 포진한 ‘최순실-우병우 라인’이 청와대에 직보하며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제보가 많다”고 말했다. 우상호 원내대표도 “독일ㆍ중국 등 현지에서 서로 연락하며 변호인까지 다 준비한 것은 국내ㆍ외에서 조력자가 움직였다는 근거”라고 말했다. 야권에선 국정원내부 '최-우 라인'으로 L씨와 C씨, B씨, P씨 등 구체적인 간부들의 이름도 거론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씨 딸 정유라(20)씨도 10일 변호인을 통해 “검찰이 요구할 경우 귀국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최씨 귀국 다음날인 지난달 31일 이화여대에 온라인 자퇴서를 제출한 사실도 확인됐다. 정씨 역시 누군가의 조언에 따라 움직이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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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부 때인 2002년 4월 ‘최규선 게이트’에 연루된 최성규 전 총경은 미국에서 23개월 동안 도피하다가 결국 2004년 3월 범죄인인도조약에 따라 송환됐다. 당시 최 전 총경은 김대중 전 대통령 3남 홍걸씨의 기업체 금품 수수 비리를 덮기 위해 최규선씨에게 해외 밀항을 종용한 혐의를 받았다. 2002년 대선 때 설훈 민주당 의원이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20만 달러 수수설을 허위 폭로하는 데 간여한 의혹을 받던 김현섭 전 민정비서관은 2003년 2월 미국으로 도피해 13년째 체류하고 있다.

정효식 기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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