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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영화보다는 40대 두 아빠의 즐거운 여정으로 봐줬으면”

중앙일보 2016.11.11 01:08 종합 23면 지면보기
제주 사려니숲 속의 이동우(왼쪽)·임재신씨. 영화 ‘시소’는 둘의 제주 여행기를 담았다. [사진 대명문화공장]

제주 사려니숲 속의 이동우(왼쪽)·임재신씨. 영화 ‘시소’는 둘의 제주 여행기를 담았다. [사진 대명문화공장]

다큐 영화 ‘시소’ 포스터.

다큐 영화 ‘시소’ 포스터.

“마음이 설레면서도 관객들에게 제 모습이 어떻게 보일지 걱정도 돼요.”

다큐 영화 ‘시소’ 주인공 임재신씨
난치성 근육병 탓 혼자 못 움직여
앞 못보는 이동우씨와 제주 누벼
“예쁜 딸 뺨 다시 만져보는 게 소원”

9일 충남 천안의 자택에서 만난 임재신(45)씨는 주연을 맡은 영화 ‘시소(See-Saw)’의 개봉을 하루 앞두고 심경이 복잡했다. 임씨는 난치성 근육병의 일종인 진행성 근이양증을 20년 넘게 앓아온 탓에 혼자선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그가 출연한 ‘시소’는 망막색소변성증으로 10여 년 전 시력을 잃은 개그맨 겸 가수 이동우(46)씨와 앞만 볼 수 있는 임씨가 서로 눈과 발이 돼주면서 함께 제주도 여행을 하는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두 사람의 인연은 2010년 임씨가 자신의 눈을 기증하고 싶다며 이씨 측에 연락하면서 시작됐다. “TV에서 시력을 잃은 동우 형이 딸과 노는 모습을 보는데, 오래전 어린 딸과 놀아주던 제 모습이 떠올랐어요. 내 남은 5%를 주면 형의 100%를 채워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전화를 했죠.”

하지만 망막을 이식해도 이씨의 시력이 회복될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 일을 계기로 둘은 친구가 됐다. 이런 사연을 들은 다큐멘터리 PD 출신 고희영 감독이 둘의 제주도 여행기를 영화로 만들자고 제안했고, 2013년 10월 제주도 여행 이후부터 3년간의 제작기간을 거쳐 영화가 완성됐다.
임재신씨가 제주도 여행 중에 이동우씨로부터 선물 받은 눈동자 목걸이를 목에 걸고 있다. [사진 김성태 기자]

임재신씨가 제주도 여행 중에 이동우씨로부터 선물 받은 눈동자 목걸이를 목에 걸고 있다. [사진 김성태 기자]

영화 속에서 둘은 열흘 동안 산굼부리의 억새밭, 사려니숲 등 제주도 구석구석을 다닌다. 임씨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첫 스킨스쿠버 도전을 꼽았다. “몸이 굳어서 잠수복을 입는 것조차 힘들었어요. 고민 끝에 온몸에 랩을 꽁꽁 두른 뒤에 잠수복을 입고 휠체어에 앉은 채로 바다에 들어갔죠. 정작 바닷속을 보니 나오고 싶지 않아서 산소가 떨어질 때까지 30분 넘게 있었어요.”

난관도 많았다. 임씨는 “길가에 턱이 너무 많고, 비포장 길도 많아서 이동 자체가 쉽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장애인 얘기라기보다는 딸을 둔 평범한 40대 두 아빠의 즐거운 여정으로 봐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동우씨가 직접 선택한 영화 제목 ‘시소’는 시력을 잃고 비로소 마음의 눈으로 보게 된 새로운 세상을 뜻한다고 한다.

임씨는 지역 장애인단체인 한빛회 공동대표를 4년째 맡고 있는 장애인 인권 운동가이기도 하다. “극장에 가면 보통 맨 앞자리 양끝에 장애인석을 두기 때문에 저처럼 고개를 못 움직이는 사람들은 애당초 관람이 불가능하죠. 하지만 사람들은 ‘이 정도면 예전보다 많이 좋아진 것 아니냐’는 말을 쉽게 해요. 그 벽을 깨기가 참 어렵네요.”

다시 움직일 수 있다면 가장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묻자 그는 “딸에게 ‘예쁘다’는 말 대신 뺨을 만지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다”고 했다. 임씨는 올해 초부터 성인이 된 딸을 독립시키고 활동보조인의 도움을 받아 생활하고 있다. 그는 “우리 이야기가 특별해서 영화로 만들어지는 게 이번이 마지막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글=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사진=김성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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