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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트럼프 시대의 생존법

중앙일보 2016.11.11 00:38 종합 28면 지면보기
김영욱 한국금융연구원 상근자문위원

김영욱
한국금융연구원 상근자문위원

트럼프 당선 소식을 접하고 19년 전 오늘이 떠올랐다면 지나친 얘기일까. 하루하루 불안에 떨며 국가부도를 기다리던 그때 말이다. 어쩌다 이 꼴이 됐는지 분통을 터뜨리던 당시의 모습도. 트럼프 쇼크는 이렇게 우리에게 다가왔다.

환율조작국, 한·미 FTA 등 풀어야 할 난제 산더미
경제위기 미리 예방하는 ‘생존의 정치’가 절실해


왜 쇼크일까. 대략 세 가지다. 단기적으론 금융시장에 미치는 충격이다. 환율 급등과 주가 급락이다. 다음은 세계교역 위축과 수출 부진 등 실물경제 쇼크다. 마지막은 장기적 충격이다. 반세계화·보호무역주의 심화 등 기존 세계경제 질서의 재편이다.

금융시장 충격으로 가장 우려되는 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가능성이다. 트럼프는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고 공언했다.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해 협상테이블로 끌어내겠다”고 했다. “일본도 환율을 조작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중국과 일본은 우리처럼 환율 관찰대상국이다. 그 외 독일·대만·스위스 등이 있다. 양국 모두 대미 무역흑자가 200억 달러를 넘고, 경상수지 흑자가 자국 국내총생산(GDP)의 3%를 상회한다(그림1).
자료:미국 재무부·한국은행·KDI

자료:미국 재무부·한국은행·KDI

만일 중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그 자체만으로도 원화는 충격을 받는다. 중국의 반발과 무역전쟁 우려 때문이다. 더 걱정되는 건 우리나라가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가능성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진작부터 이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던 터다. 현실화되면 원화 급락이다. 여기에 미국의 금리 인상이 추가되면? 참으로 만일의 가정이지만 19년 전의 위기에 버금가는 상황이 닥칠 수도 있다.

실물경제와 관련해 가장 걱정되는 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재협상이다. 트럼프는 “미국 경제를 저해한 ‘깨진 약속’”이라고 비판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더 비난했지만. 어떻든 한·미 FTA도 전면 재검토하고, 필요할 경우 재협상하겠다고 했다. 이렇게 되면 수출이 큰 타격을 받는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전면 재협상 시 5년간의 수출 손실이 269억 달러다. 2013년을 정점으로 3년 연속 감소하고 있는 우리 수출이 더욱 타격을 받는다는 얘기다(그림2 ).
자료:미국 재무부·한국은행·KDI

자료:미국 재무부·한국은행·KDI

수출 부진은 다른 경로를 통해서도 온다. 트럼프는 틈만 나면 중국을 비난했다. “무역에서 중국에 강간당하고 있고, 우리는 중국의 돼지 저금통으로 전락했다”고 한다. 미국인 1000만 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주 타깃은 이처럼 중국이지만, 그래서 중국이 미국 시장에서 밀려나면? 다음 타깃은 우리 아닐까. 보호무역으로 인한 세계교역의 위축과 세계경제의 성장 둔화도 우리 수출에 타격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보호무역으로 세계경제 성장률이 2%포인트 더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마지막으로 염려스러운 건 세계경제 질서의 재편이다. 자유무역의 후퇴와 반세계화의 등장이다. 트럼프 당선자는 “자유무역과 세계화는 우리를 죽이고 있다”고 했다. 그의 주지지층은 저임금·저학력의 백인 노동자층이다. 기존 질서와 기득권층에 대한 분노가 당선 배경이었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양극화가 완화될 때까지 반세계화는 지속되지 싶다. 우리나라에 미치는 충격도 상당할 것이다. 자유무역과 세계화의 가장 큰 수혜자가 우리였기 때문이다.
[일러스트=김회룡]

[일러스트=김회룡]

자, 이제 결론이다. 트럼프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해야 할 일은 산더미다. 당장 외국인 투자가들이 자금을 유출해 환율 급등과 주가 폭락으로 이어졌던 19년 전의 악몽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최근 미국 월가와 외신들이 원화 약세를 자주 언급하는 게 불안하다. 적어도 이들이 우리 경제상황에 대해 오판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미국과의 협상 채널도 적극 가동하고 활성화해야 한다. 이게 정부가 지금 해야 할 첫 번째 과제다.

더불어 환율조작국 지정 같은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손을 써야 한다. 다각도의 논리 개발도 필요하다. 예컨대 대미 상품 교역 수지는 늘지만 서비스 교역 수지 적자는 지난해 100억 달러가 넘었다는 것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미국이 의도하는 원화 강세는 일어나지 않고 오히려 원화 값이 더 떨어진다는 점도 잘 설명해야 한다. 하지만 이 일을 어쩌랴? 모두가 참여해 백방으로 뛰어도 모자랄 판에 이 정도의 일조차 할 정부가 없으니. 심지어 경제부총리도 사실상 두 명이나 되니.

사정이 이러하다면 기댈 곳은 정치권밖에 없다. 사상 초유의 국가 거버넌스 위기 속에서도 경제와 통상 시스템은 제대로 돌아간다는 믿음을 정치권이 줘야 한다. 국민의 생존에 필요한 정치는 하겠다는 결심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원포인트 청문회를 해서라도 경제부총리를 뽑아야 한다. 최소한 경제만이라도 컨트롤타워가 있어야 하겠기에. 대미 통상외교를 전담할 특명 대사 선임도 적극 고려하길 바란다. 환율조작국 지정이나 한·미 FTA 재협상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국과의 대화와 협상을 맡을 사람이 절실하다. 오죽하면 트럼프 당선자와 발 빠르게 접촉하는 아베 총리의 일본이 부러울까. 일본은 정상외교로 굵직한 것을 해결하는데 우리는 밑에서 삽질조차 할 사람이 없으니.

김영욱 한국금융연구원 상근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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