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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키친·푸드트럭…골목 분위기 호텔

중앙일보 2016.11.11 00:02 Week& 6면 지면보기
| 특급호텔, 문턱 낮추기 바람
 
그랜드 하얏트 호텔의 철판요리점 ‘테판’의 오픈키친과 바(bar) 좌석.

그랜드 하얏트 호텔의 철판요리점 ‘테판’의 오픈키친과 바(bar) 좌석.


스트리트 패션이 하이엔드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주듯, 길거리 식음 트렌드가 호텔을 이끄는 시대가 온 걸까. 오픈키친·루프톱·수제맥주전문점 등 최근 몇 년 새 서울 가로수길·경리단길을 휩쓸었던 푸드 키워드가 특급호텔 안으로 파고들고 있다. 복층 천정에 탁 트인 일식당(포시즌스 ‘키오쿠’), 푸드 트럭 가든파티(JW메리어트 동대문스퀘어) 등 변화의 폭도 다양하다. 거리 에너지를 흡수하고 변신을 모색하는 특급호텔들의 면면을 들여다봤다.

 
JW메리어트 동대문의 야외가든 행사 ‘와인 앤 버스커’에 등장한 푸드 트럭과 한입 요리들.

JW메리어트 동대문의 야외가든 행사 ‘와인 앤 버스커’에 등장한 푸드 트럭과 한입 요리들.



 
그랜드 하얏트 호텔의 대표메뉴인 토마토와 훈제판체타에 바질·잣을 곁들인 요리.

그랜드 하얏트 호텔의 대표메뉴인 토마토와 훈제판체타에 바질·잣을 곁들인 요리.

지난달 1일 그랜드 하얏트 서울은 지하 1층 식음 공간을 전면 개편하면서 ‘파리스 그릴’ 등 2개 레스토랑이 있던 공간에 ‘스테이크 하우스’ 등 4개의 레스토랑·바(bar)를 선보였다. 각각 30석 안팎의 소규모로 운영되며 모두 오픈 키친을 갖췄다. 어느 골목 식당가를 연상케 하는 이 공간 전체에 실제 지번을 따서 ‘322 소월로(素月路)’라는 이름도 붙였다. “규모와 격식을 갖춘 레스토랑 대신 골목 안 편안한 분위기의 친근한 레스토랑을 추구했다”고 그랜드 하얏트 아시아·태평양 식음 운영전략 부사장 안드레아 스탈더는 설명했다. 이에 따라 접객 서비스도 한결 친밀한 형태로 바뀌었다. 24석의 바 테이블을 갖춘 철판요리점 ‘테판’엔 셰프 3~4명이 각자 고객 3~4명을 전담하면서 고객 기호를 반영해 요리를 내준다. 이자카야 ‘텐카이’도 이번 개편 때 바 테이블(12석)을 추가하고 꼬치요리 등 보다 캐주얼한 메뉴를 대거 선보였다.

그간 호텔은 문턱을 높임으로써 차별화를 해왔다. 대형 연회석 혹은 품격 있는 다이닝룸에서 우아한 식사를 하는 경험이 우선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선 문턱을 낮추다 못해 시중의 레스토랑·바 트렌드를 적극 모방하는 분위기다.
 
다이닝레스토랑에 바 좌석을 도입한 파크하얏트의 ‘코너스톤’.

다이닝레스토랑에 바 좌석을 도입한 파크하얏트의 ‘코너스톤’.


삼성역 파크하얏트 서울의 이탈리안 식당 ‘코너스톤’의 경우 지난 2월 리노베이션을 하면서 레스토랑 한가운데 오픈 키친을 배치했다. 총 671㎡(약 200평) 공간의 4분의1을 차지하는 규모로 138개 좌석 어디서나 셰프들의 움직임을 볼 수 있다. 레스토랑 홀과 주방의 경계를 허무는 오픈키친은 시중의 레스토랑에서 먼저 인기를 끌었다. TV 출연으로 인지도를 쌓은 최현석 셰프가 운영했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엘본 더 테이블’(서울 강남구 신사동)이 대표적이다. 나아가 음식을 즉석에서 먹으며 셰프와 소통할 수 있는 바 테이블을 시작한 것도 ‘스와니예’(서래마을) 등 오너 셰프 레스토랑에선 이미 오래다. 반면 격식 있는 식사가 주가 되는 특급 호텔 레스토랑에선 흔치 않았다. 하지만 홀로 미식을 즐기는 고객이 늘어나고, ‘쿡방’(요리하는 방송)에 익숙한 2030 젊은 층 사이에서 요리 과정을 퍼포먼스로 즐기는 게 트렌드가 되면서 호텔에서도 점차 오픈 키친의 비중이 늘고 있다.

호텔이 거리 트렌드를 따라하는 것은 거리가 ‘핫’해졌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호텔이 고소득층 고객을 기반으로 해외 트렌드를 발 빠르게 도입해 왔지만 이젠 사정이 바뀌었다. 수년 전부터 해외 유학 등을 통해 실력을 다진 오너 셰프·바텐더들이 속속 개성 있는 레스토랑·술집을 거리에 열고 있다. 이들은 경쟁을 통해 도태되거나 더 ‘핫’하게 바뀐다. 반면 몸집은 몸집대로 크고 브랜드 정체성도 따져야 하는 호텔은 변화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사이 호텔 안과 밖의 격차가 사라져버렸다. 예전 같으면 호텔 안에서 한 잔 했을 숙박객들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상황이다. 그랜드 하얏트가 ‘322 소월로’를 소개하면서 “이제 우리 경쟁상대는 경리단길”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포시즌스 호텔 지하의 간판 없는 바 ‘찰스H’의 내부.

포시즌스 호텔 지하의 간판 없는 바 ‘찰스H’의 내부.


이런 분위기는 신생 호텔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10월 광화문에 문 연 포시즌스 호텔 지하엔 ‘스피키지(speakeasy)’ 바 ‘찰스H’가 영업 중이다. ‘스피키지’란 1920년대 미국 금주령 시절 은밀하게 밀주를 마시던 뒷골목 술집 분위기를 뜻하는 말이다. 고풍스러운 뉴욕 맨해튼 바 느낌으로 인테리어를 하되 입구와 간판을 숨기듯 배치하는 게 특징이다. 찰스H 역시 포시즌스 로비에 별도 안내표시가 없어 아는 사람만 찾아갈 수 있다.

포시즌스의 윤소윤 홍보팀장은 “오픈 전 식음전문 컨설팅업체에 의뢰해 조사해보니 광화문에서 근무하는 고소득 직장인 대부분이 퇴근 후 이태원·한남동으로 빠지는 것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들의 동선을 광화문에 잡아두기 위해 이태원·한남동 일대의 트렌드를 조사했고, 결과적으로 스피키지 바 찰스H가 탄생했다. 헤드 바텐더인 크리스토퍼 라우더는 “주로 해외 유학을 한 30~40대들이 그들만의 아지트를 찾는 기분으로 들른다”고 전했다.

특급 호텔의 변신은 바꿔 말하면 이들이 그만큼 절박해졌다는 뜻이다. 실제로 서울 시내 특1·2급 호텔은 2011년 이래 26개가 늘었다. 특히 지난해엔 신라스테이가 광화문·마포·서대문 등 3곳에 문을 여는 등 총 9개나 들어섰다. 모두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숙박 위주 서비스를 하는 2급 호텔들이다(2015년 말 기준 관광숙박업 호텔별 등록현황). 숙박 경쟁이 치열해지다보니 식음에서 차별화를 꾀하지 않을 수 없다.
 
맥주 양조시설과 탁구대를 갖춘 라마다서울의 펍 ‘카퍼룸’.

맥주 양조시설과 탁구대를 갖춘 라마다서울의 펍 ‘카퍼룸’.


차별화에선 ‘격’을 따지기보다 캐릭터가 우선이다.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라마다서울 호텔은 지난 5월 클럽이 있던 약 200평 규모의 지하층을 리모델링하면서 수제맥주 펍 ‘카퍼룸’을 선보였다. ‘뉴욕 스타일의 스포티한 펍’을 표방하는 카퍼룸은 호텔 술집이라 하기엔 투박하고 빈티지한 분위기다. 노출 콘크리트 천정에다 벽면은 브루클린의 담벼락을 흉내 내듯 벽돌로 장식했다. 다트 게임기, 포켓볼 장비에다 스포츠경기 중계용 TV도 설치했다. 카퍼룸의 이푸름 매니저는 “탭 생맥주 8종을 포함해 총 16종의 세계맥주를 갖추고 있으며 향후 펍 내부자체 양조시설을 통해 맥주를 직접 만들어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담동 스시집에서 스카우트한 그랜드 하얏트 스시바 ‘카우리’의 정수용 셰프.

청담동 스시집에서 스카우트한 그랜드 하얏트 스시바 ‘카우리’의 정수용 셰프.

외부 인력을 스카우트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랜드 하얏트는 신규 오픈한 스시바 ‘카우리’의 헤드 셰프로 청담동 ‘스시모토’의 정수용 셰프를 발탁했다. 호텔 일식당에서 수련 받은 셰프들이 독립해서 스시집을 차려온 관례를 역행한 파격 조치다. ‘카우리’ 측은 “정 셰프의 요리를 좋아하던 단골들이 오히려 ‘카우리’로 찾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322 소월로’를 총괄하는 박현석 매니저 역시 청담동 디올 매장의 카페에서 스카우트해왔다.

거리의 트렌드와 융합한 호텔은 그 자체가 주변 분위기를 끌어가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광화문에선 포시즌스의 찰스H 바가 젊은 층의 바 문화를 선도하면서 최근 1년 새 ‘서울 텐더’ ‘돈 패닉(Don’t Panic)’ ‘코블러’ ‘바 빅 블루’ 등이 잇따라 문을 열었다. JW메리어트 동대문스퀘어 서울은 봄·가을 서울 패션위크 기간에 야외 가든에서 ‘와인 앤 버스커’라는 행사를 연다. 입장료 2만원에 뮤직 밴드의 라이브와 와인 시음을 즐길 수 있는 이 행사는 호텔의 문턱을 낮추고 거리의 활력을 호텔 안으로 끌어들인다. 최규완 경희대 호텔관광대 교수는 “문턱을 낮춰 받아들인 고객이 호텔에서 보다 세련된 경험을 하고, 이를 통해 소비트렌드가 고급화되면 다시 호텔 소비층이 넓어지는 식의 순환”이라고 설명했다.

글=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사진=각 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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