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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선 공격 징후 보이면, 현장 판단 따라 무기사용

중앙일보 2016.11.09 01:43 종합 16면 지면보기
앞으로 불법 조업하는 중국 어선이 해경 단속에 맞서 폭력을 행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 함장 등 현장 지휘관이 스스로 판단해 함포·기관총 등 공용화기로 대응할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는 중국 어선으로부터 공격당한 뒤에야 해경이 무기를 사용할 수 있었다.

해경 대응 가이드라인 대폭 손질
기존엔 공격당한 뒤 사용 가능
소총은 대원, 함포는 함장에 결정권
경찰관 공무집행과정 무기 사용
해양경비법에 면책조항 신설 추진

국민안전처 해양경비안전본부는 이 같은 내용의 ‘무기 사용 매뉴얼’을 시행한다고 8일 발표했다. 2011년 11월 이청호 경사가 중국인 선장이 휘두른 흉기에 순직한 이후 적용해온 ‘총기 사용 가이드라인’을 대폭 손질했다. 정부는 지난달 해경 고속단정이 불법 조업 중국 어선에 들이받혀 침몰하자 폭력 저항하는 어선에 공용화기를 사용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이춘재 안전처 해경조정관은 “새 매뉴얼은 현장의 집행 권한을 명확히 했다”고 설명했다. 기존 가이드라인은 총기 사용을 허가했을 뿐 누가 판단할지 명확히 정하지 않았다. 새 매뉴얼은 무기 사용의 결정권을 단속 대원 개인(권총·소총 등 개인화기), 함장 등 현장 지휘관(함포·기관총·유탄발사기 등 공용화기)에 줘 위급 상황에 즉시 대응할 수 있게 했다. ‘선(先) 조치, 후(後) 보고’ 원칙, ‘경고 방송→경고 사격→실제 사격’ 순의 3단계 절차도 명시했다. 이 조정관은 “해경 함정이나 단속 경찰관이 급박한 위험 상황에 처했을 때는 경고 방송, 경고 사격은 생략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무기 사용 요건도 완화됐다. 종전 가이드라인은 ‘어선·선원이 선체·무기·흉기 등을 사용해 공격한 때’만 무기를 사용할 수 있었다. 반면 새 매뉴얼은 불법 조업 어선이 해경대원·선박을 공격하려 하는 단계에도 필요하다면 무기를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종전 가이드라인에선 파괴력이 큰 공용화기 사용은 ▶중국 어선에 승선한 경찰관의 안전 확보가 불가능하거나 ▶경찰에 피해를 준 어선·선원이 도주하는 상황으로 제한했다. 새 매뉴얼에선 공격받을 가능성이 큰 상황이라면 현장 지휘관의 판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 사격 대상은 ‘인명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신체·선체 부위’로 정했다.

안전처와 해경은 해양경비법 개정도 추진한다. 공무집행 과정에서 정당하게 무기를 사용한 경찰관의 책임을 묻지 않는 면책 조항을 법률에 반영할 계획이다. 현장의 무기 사용에 대한 부담을 덜겠다는 취지다.

이날 안전처는 외교부를 통해 중국 정부에 새 매뉴얼 내용을 통보했다. 해경 관계자는 “공용화기 사용 방침을 밝힌 이후 서해 북방한계선(NLL)의 불법 조업 중국 어선이 지난해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해경은 공용화기 사용 방침을 밝힌 뒤인 지난 1일 인천 해역에서 불법 조업 중인 중국 어선 2척을 나포하는 과정에서 M-60 기관총 700여 발을 발사했다.

해경 내부의 반응은 엇갈렸다. 한 해경 간부는 “‘무기를 사용해서 잘못되면 책임져야 한다’는 걱정에 망설이다가 위험한 상황이 된 적이 많다. 현장의 판단을 존중하고 정당한 발포라면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건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반면 일선 경비부서의 한 관계자는 “기존 가이드라인에도 면책 조항은 있었지만 중국 정부가 항의해오면 해경에 책임을 돌리는 분위기였다. 실제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정부와 지휘부가 어떻게 대응하는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천인성 기자, 인천=최모란 기자 guch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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