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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조 배우는 탈북 어린이 “춤 잘 추는 아이돌 될래요”

중앙일보 2016.11.09 00:53 종합 24면 지면보기
은퇴 리듬체조 선수가 가르치는 체조 교실에서 신나게 동작을 따라하고 있는 탈북 아이들. [사진 박소영 기자]

은퇴 리듬체조 선수가 가르치는 체조 교실에서 신나게 동작을 따라하고 있는 탈북 아이들. [사진 박소영 기자]

“체조를 열심히 하면 춤 잘 추는 아이돌 가수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체육회, 10개 단체 은퇴 선수 연계
소외층 대상 재능 나눔 교실 열어
쭈뼛대던 아이들 활력·웃음 되찾아

지난 7일 서울 서초구 두리하나 국제학교에서 만난 정여름(9·가명)양은 허리를 뒤로 젖히며 이렇게 말했다. 탈북 어린이인 정양은 요즘 TV에 나오는 화려한 아이돌 가수에 흠뻑 빠졌다고 했다. 아이돌의 유연한 댄스 동작을 혼자서 따라해봤지만 한계를 느꼈던 정양에게 지난달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학교에 은퇴 선수와 함께하는 체조 교실이 열린다는 뉴스였다.

대한체육회는 2014년부터 은퇴 선수들과 소외계층 아동을 연결시켜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들의 체육 활동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대한체육회 생활체육지원부 김연수 차장은 “경력이 단절된 선수들에게는 멘토로서의 삶을,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는 체육 복지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된 사업”이라고 말했다.

올해는 농구·축구·배구·복싱·체조 등 10개 은퇴 단체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은퇴한 체조 선수들이 주축이 돼 만들어진 월드체조운동개발원은 요즘 탈북 아동·청소년 수업에 집중하고 있다. 리듬체조 선수 출신인 최정현 강사는 “탈북 아이들은 부푼 꿈을 안고 한국에 오지만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다. 스포츠는 아이들이 활력을 되찾는데 큰 도움이 된다”며 “체조는 어디서나 누구라도 쉽게 배울 수 있는 운동이다. 특히 둘 이상이 함께 하는 커뮤니케이션 체조는 소통과 공감을 통해 인간관계를 개선하는 효과가 크다”고 했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35명의 아이들은 첫 수업 때는 눈치를 보고 경계했지만 한 달 동안 체조 수업을 하면서 눈에 띄게 밝아졌다. 체조 수업은 체육관 시설이 없어 예배당에서 의자를 밀고 진행한다. 좁은 공간이지만 신나는 팝 음악이 나오자 아이들은 몸을 들썩이기 시작했다. 두 명이 짝지어 서로 밀고 당기는 짝체조를 할 때는 웃음꽃이 활짝 폈다. 앉아서 다리를 양 옆으로 쭉 찢을 때는 괴성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김봄비(10·가명)양은 “체육 시간마다 남자애들이 좋아하는 축구를 많이 해서 지루했다. 그렇지만 체조 수업은 정말 재미있다”며 좋아했다.

유명한 은퇴 선수를 초청해 아이들이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돕는 시간도 마련됐다. 북한 리듬체조 선수 출신인 이경희 국가대표 상비군 감독은 한국에 와서 리듬체조 지도자로 정착하기까지의 이야기를 어린이들에게 들려줬다. 김양은 “힘든 상황에서도 리듬체조 선수로 성공하기 위해 노력한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찡했다”고 했다. 다른 탈북 아이들 강습소에서는 2012년 런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양학선(24·수원시청)이 방문해 어려운 가정환경을 딛고 성공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최 강사는 “탈북 아이들도 똑같은 한국인이다. 체조 수업을 통해 아이들의 정서가 안정되고 자존감을 높여 사회에서 제 몫을 다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란다”며 “재능이 있는 아이들은 전문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라고 했다.

글, 사진=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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