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를 흔든 시 한 줄] 윤철규 한국미술정보개발원 대표

중앙일보 2016.11.09 00:44 종합 28면 지면보기
윤철규 한국미술정보개발원 대표

윤철규
한국미술정보개발원 대표

일부러 무리 지어 시끄럽게 떠들어대지만
갑자기 놀라 흩어지며 적막만 남겼네
(特地作團喧殺我 忽然驚散寂無聲)
- 양만리(1124~1206), ‘겨울 참새(寒雀)’ 중에서

겨울날 깜짝 놀라 흩어진 참새들
800여 년 뒤 재회한 감흥이란…


옛 그림을 이해하는 데 걸림돌이 하나 있다. 한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한시다. 그림 속 글귀 대부분은 한시 시구인 때문이다. 한시는 간단치 않은데 두 번씩이나 조우해 나름 친해진 게 있다. 일본 유학시절 『풍월무진(風月無盡)』을 접했다. 한시 연구 권위인 마에노 나오아키(前野直彬) 교수가 교원잡지에 연재했던 글을 묶은 것이다. 시대 환경, 시인의 처지를 버무려 가급적 편안하게 소개한 책이다.

내친 김에 번역하면서 금나라 애국시인 양만리의 ‘겨울 참새’를 만났다. 겨울날 참새들이 뜰에서 가지로 ‘포르르’ 하고 떼로 몰려다니는 것을 상큼하게 읊은 시다. 조선 후기에는 시를 그림으로 그리는 일이 대유행을 했다. 그 대표선수가 김홍도다. 얼마 전 시의도(詩意圖) 책을 내면서 그도 ‘갑자기 놀라 흩어진다’는 이 구절로 그림을 그렸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요즘 아파트 작은 공터에서 놀란 척 화들짝 날아가는 참새 떼는 조금은 남달라 보인다.

윤철규 한국미술정보개발원 대표

 
겨울참새(寒雀)
-양만리
百千寒雀下空庭(백천한작하공정)
小集梅梢話晩晴(소집매초화만청)
特地作團喧殺我(특지작단훤살아)
忽然驚散寂無聲(홀연경산적무성)

떼 지은 겨울 참새 빈 뜰에 내려와
매화가지 끝에 모여 저녁 날씨 좋다 재잘거리네
일부러 무리 지어 시끄럽게 떠들어대지만
갑자기 놀라 흩어지며 적막만 남겼네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