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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누가 김병준을 바보로 만들었나

중앙일보 2016.11.09 00:34 종합 30면 지면보기
최민우 문화부 차장

최민우
문화부 차장

세월호특별법 문제로 정국이 뜨겁던 2014년 8월, 세간의 관심은 과연 박근혜 대통령이 유가족을 만날지 여부였다. 여론은 팽팽했지만 “유민 아빠의 손이라도 잡아주는 게 최고 통치자의 역할 아닌가”라는 인간적 호소가 더 먹혀드는 형국이었다. 혹 해법이 있을까 싶어 당시 김병준 국민대 교수에게 의견을 물었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이었던 이력을 봤을 때 당연히 “만나서 위로해야 한다”는 답변을 예상했다. 아니었다. “어설프게 만나봤자 소용없다”고 했다. “대통령은 교황이 아니다. 마음을 달래주는 게 아니라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그게 마땅치 않다면 여론에 등 떠밀려 만나는 건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킨다”는 이유였다. 그럴듯한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진짜 친노 맞아?’ 싶었다.

그 후에도 민감한 정치적 사건이 터질 때면 ‘교수 김병준’에게 전화를 걸어 기사를 쓰기 위한 이른바 ‘전문가 멘트’를 받곤 했다. 그의 답변은 늘 현실적이었고 설득력도 있었다. 숱한 정치 전문가 중 단연 돋보였다. 행정학이라는 이론적 틀을 갖고 있는 데다 청와대에서 국정을 경험했다는 실전력이 뭉쳤기 때문인 듯싶었다.

진보 성향인 터라 그는 기본적으로 반(反)박근혜였다. 그래도 노무현 대통령을 5년 내내 보필했던 이유인지 대통령직(職)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다. “문제가 터질 때마다 청와대로 화살을 돌리고, 뒤로 숨은 채 곶감만 챙기는 여의도가 더 문제”라며 국회 개혁을 늘 외쳤다. 국정교과서에 대해선 “시대착오”라고 강하게 비판했지만 “교과서가 좌편향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도 억지”라며 진보진영도 매섭게 질책했다. 이만한 균형감각을 갖춘 인사가 정치권에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그래서 지난 2일 김 교수가 총리로 내정됐다는 소식을 듣곤 벼랑으로 몰린 박 대통령의 용인술에 무릎을 치고 말았다. 야권 성향의 총리를 내세워 국면을 수습하면서 본인은 서서히 2선으로 후퇴하지 않을까 싶었다. 정치인 박근혜를 몰라도 한참 모르는, 순진한 바람이었다. 4일 2차 사과에서 박 대통령은 김병준의 ‘김’자도 꺼내지 않았다. 그제야 “김병준은 사석(捨石)에 불과하다”란 말이 돌았다. 그리고 8일 박 대통령은 “국회에서 추천해 달라”며 총리 지명을 철회했다. 당분간 정치권은 차기 총리로 누가 좋을지, 권한은 어디까지 해야 할지를 놓고 또 공방을 벌일 게다. 대통령 하야론도 잠시 수면 아래 묻힐지 모른다. 인간 김병준을 엿새간 먹잇감으로 내놓은 덕이다.

김병준의 눈물은 과연 쇼였을까. 누군가는 권력욕에 눈이 멀어 적진에 투항해 자초한 결과라고 냉소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김 교수가 정치 무대에 등장하고 버려지는 과정을 보고 있노라니 문득 검찰로 끌려간 측근들이 왜 “대통령이 지시했다”란 얘기를 흘리는지도 조금은 짐작이 갔다. 결국 남는 건 사람이라는 걸 ‘그분’은 진정 모를까.

최민우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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