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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칼럼] 국회는 왜 책임을 국민에 떠넘기나

중앙일보 2016.11.07 16:52
이국영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국영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87년 체제 성립 이후 최대 위기에 빠졌다. 현대 자유민주주의란 무엇인가. 통치가 수직적·수평적 통제에서 벗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법치국가 원리가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민주주의를 의미한다.

부통령 없는 한국선 거국정부 쉽지 않아
야당이 총리 맡고 모든 정당 참여해야 가능
이게 좌절되면 국회는 탄핵 대응할 수밖에
야당, 그 절차 없이 하야시위 하면 기회주의


자유민주주의는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가 조건인 선거민주주의만으로 축소되지 않고, 법치국가 원리가 기본적 요소로 포함돼 있다. 여기엔 개인의 기본권 보장과 국가기관들 간의 관계에서 권력을 통제하는 권력분립, 즉 수평적 통제영역이 핵심이다. 따라서 민주주의라면 민주주의적 지배의 수직적 차원, 즉 수직적 권력통제, 보편적 선거권, 정치적 참여권이 보장돼야 한다. 또한 행정부·입법부·사법부 사이엔 독립성을 전제로 각각 다른 권부의 권력 남용·오용을 감독하는 수평적 통제가 유효하게 작동해야 한다.

지금의 정치위기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심지어 청소년까지) 대통령 하야 촉구 시위에 참여할 정도로 심각하다. 대통령의 통치에 대한 수직적 권력통제가 선거가 아닌 저항의 차원으로 확대된 것이다. 물론 통치에 대한 통제방식은 수직적 차원만이 아니라 수평적 차원에서도 가능하다. 그런데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이후 수평적 통제영역은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가.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조차 국정붕괴로 규정할 정도로 국정의 난맥상을 드러낸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입법부의 통제는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가. 한 마디로 말해 혼돈상태다.

현재 국회의 대통령에 대한 통제방식은 ‘거국중립내각’의 관철이다. 거국중립내각이란 정치학 문헌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애매한 표현이다. 그보다는 거국내각이 정확한 용어다. 거국내각에서 ‘중립’이란 군더더기에 불과하다. 거국내각이란 원래 ‘national unity government’의 번역어다. 의회를 구성하는 모든 정당 또는 주요 정당(all parties or all major parties)의 연립정부를 의미한다. 대연정을 넘어선 전정당의 연정인 것이다. 일본에서는 ‘unity’를 ‘일치’라고 번역하여 ‘거국일치내각’이라고 한다. 그러나 ‘일치’엔 독재정치의 이미지가 담겨 있기 때문에 ‘협력’이나 ‘화합’으로 번역하여 ‘거국협력내각’이 적절하다.

원래 거국내각은 의원내각제에서 구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거국내각과 거국정부는 동의어로 사용된다. 의원내각제인 영국에서는 거국내각은 양차대전과 대공황과 같은 국가적 위기 상황에 구성되었다. 대통령제에서는 대통령 그 자체가 좁은 의미의 정부다. 그런 구조에서 행정부의 일부인 내각이 자립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제인 미국에서는 남북전쟁 시기에 공화당의 링컨 대통령이 재선되면서 부통령을 민주당의 앤드류 존슨으로 지명, 거국정부를 구성했다. 한국의 경우 한국전쟁 중에도 거국정부를 구성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 상황에서 거국정부가 구성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안보위기, 경제위기와 이 두 위기를 타개해야 할 정치의 위기라는 3중적 위기에 처해 있다. 거국정부가 구성돼야 할 당위성은 충분하다. 의원내각제가 아닌 한국은 링컨 정부의 사례를 참고할 수밖에 없지만, 한국엔 부통령 제도가 없다. 따라서 부통령을 대신할 수 있는 신임 총리가 야당 소속이어야 하고, 내각에 모든 정당이 참여해야 한국형 거국정부 또는 거국협력내각을 구성할 수 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김병준 총리 후보자의 인준을 추진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일방적인 신임 총리 지명은 야당 탓도 있다. 야권이 먼저 제안한 거국중립내각을 여권이 수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유야 어떻든 야당이 거부해 버렸기 때문이다. 현 총리 후보자가 거국내각을 운운할 위치도 아니다. 그는 과거 노무현 정부에 속했다고 하나, 지금은 야당에 속하지도 않을뿐 아니라 범야권에 포함되는 인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영수회담의 쟁점인 총리 인준 또는 철회 문제는 쌍방의 실책을 인식하여 원점으로 되돌리는 게 낫다. 야당의 실책은 여당이 수용한 거국내각을 거부한 것이고, 청와대의 착오는 거국내각의 구성에 어울리지도 않고, 구성할 수도 없는 인물을 총리로 지명한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거국협력내각의 총리는 반드시 국회가 추천하는 야당 소속이어야 하고, 총리가 구성하는 내각에는 모든 정당이 참여해야 한다. 민주당은 대통령의 2선 후퇴와 총리 지명 철회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야 시위에 동참한다지만, 이는 국회의 책무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다.

국회의 대통령에 대한 통제 방식인 거국내각의 관철이 결국 좌절되더라도 국회는 마지막 통제 수단인 탄핵 절차를 밟을 수 있다. 사전적 의미를 보면 탄핵이란 '일반적 절차에 따른 파면이 곤란하거나 검찰기관에 의한 소추가 사실상 어려운 대통령·국무위원·법관 등 고위 공무원을 국회에서 소추하여 해임하거나 처벌하는 행위 혹은 제도'다. 일부 언론에서는 야당이 탄핵소추를 진지하게 거론하지 못하는 이유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사태 이후 불어닥친 역풍을 두려워한 탓이라고 본다. 이러한 상황 판단은 시대착오적이다. 당시 야당이 제시한 탄핵 요건과 현재 탄핵 요건은 비교대상이 안된다. 새누리당의 전 대표도 헌법수호자인 대통령이 헌법을 훼손했다고 하지 않았나.

또한 야당 의석이 탄핵안 통과에 부족하기 때문이라고도 하지만, 새누리당의 균열은 이미 시작됐다. 탄핵 발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여당 의원의 전부는 아니라도 상당수는 탄핵안을 반대할 수 없을 것이다. 가장 최근의 여론조사에선 박 대통령 지지층이 재결집하는 조짐을 보이지만, 국민의 하야 요구를 압도할 수는 없다. 국회의 탄핵 소추 발의는 대통령의 하야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고, 국민의 부담과 희생을 줄일 수 있다.

야당이 탄핵이라는 대통령에 대한 마지막 통제수단을 정략적 이해관계 때문에 활용하거나, 또는 반대로 사용하지 않은 채, 하야 시위에 동참한다면 기회주의적이라는 평가를 면하기 어렵다. 다시 말하지만 입법부의 행정부에 대한 모든 통제수단이 무효화된 뒤에 하야 시위에 참여해도 늦지 않다.

이국영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본 칼럼은 외부필진에 의해 작성된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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