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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이미경, 청와대 퇴진 압력받고 “내가 무슨 좌파냐” 토로

중앙일보 2016.11.07 02:30 종합 2면 지면보기

청와대로부터 퇴진 압력을 받은 이미경(58) CJ 부회장이 “내가 무슨 좌파냐. 왜 물러나야 하느냐”며 주변에 억울함을 토로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익명을 원한 전 CJ 임원 A씨는 6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이 부회장이 청와대로부터 물러나라는 이야기를 듣고 아주 괴로워했다”며 “바로 물러나진 않았지만 도저히 버틸 수 없다고 판단해 (미국으로) 떠난 걸로 안다”고 말했다. 지난 3일 MBN이 공개한 녹취에 따르면 2013년 말 조원동 당시 경제수석이 손경식 CJ 회장과의 통화에서 “VIP(대통령)의 뜻”이라며 이 부회장의 퇴진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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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회장은 청와대의 압력이 있은 지 10개월 후인 2014년 10월 유전병 치료를 이유로 미국으로 건너간 뒤 현재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다. 사실상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셈이다. 이에 대해 A씨는 “사업에 대한 열정이 누구보다 강했던 분이 건강이 안 좋아졌다고 갑자기 떠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정권이 끝날 때까지는 돌아올 수 없을 거라 생각하고 미국으로 떠난 걸로 안다”고 말했다.

CJ 전 임원 “이 부회장, 괴로워하다
버틸 수 없다 판단하고 미국 간 것”
좌파 영화 딱지 붙은 ‘광해’ 등 영향
이후엔 애국주의 강조 영화 잇따라
‘명량’ ‘국제시장’ ‘인천상륙…’ 대표적
‘창조경제 응원’ 광고도 같은 맥락

이 부회장은 미국으로 건너간 후에도 자신이 진두 지휘했던 사업에 큰 애착을 보였다. 2014년 12월 홍콩에서 열린 엠넷아시아뮤직어워드(MAMA) 행사장에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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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광해’(왼쪽)는 문재인 당시 대선후보(가운데)가 관람 후 눈물을 보였고, tvN ‘여의도 텔레토비’(오른쪽)는 박근혜 후보를 희화화했다는 평가였다. [뉴시스·tvN 캡처]

청와대가 이 부회장의 퇴진을 강권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케이블채널 tvN의 예능 프로그램 ‘SNL’ 등 CJ가 만든 콘텐트가 좌파 성향이란 일부의 지적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개봉한 영화 ‘광해’는 안철수·문재인 등 야권 후보들이 잇따라 관람했고, 특히 문 후보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각난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A씨는 “이 부회장이 2009년 ‘해운대’ 성공 이후 재난영화에 꽂혀 ‘마이웨이(2011)’ ‘타워(2012)’ ‘알투비(2012)’ 등 대작 영화를 만들었는데 다 성적이 안 좋았다”며 “‘이미경이 기획하면 망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던 차에 이 부회장이 의욕적으로 ‘내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걸 보여 준다고 시작한 작품이 ‘광해’였다”고 말했다.

A씨는 ‘광해’에 좌파 영화 딱지가 붙은 걸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정치적인 역경을 주제로 한 영화인 만큼 박근혜 대통령(당시 후보)이 꼭 봤으면 하는 바람에서 시사회 초청도 했다”며 “박 대통령 쪽에서 날짜를 잡아서 오기로 했다가 다른 일정이 생겨 취소해 오지 못했다”고 말했다.

‘광해’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은 CJ가 예전에 제작했던 영화로도 향했다. A씨는 “‘광해’에 좌파 영화라는 딱지가 붙자 광주민주화항쟁을 그린 ‘화려한 휴가(2007)’까지 문제 삼는 목소리가 나왔다”며 “이 부회장이 무슨 ‘386 좌파의 숙주’라는 이야기가 나온 배경”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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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개봉한 ‘명량’(2014년 7월), ‘국제시장’(2014년 12월), ‘인천상륙작전’(2016년 7월)은 CJ가 정권과 코드를 맞춘 3부작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A씨는 또 “이런저런 일이 겹치면서 CJ는 알아서 길 수밖에 없었다. 사내에서조차 속 보인다고 말이 많았지만 강행한 ‘창조경제를 응원합니다’란 광고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라고 털어놨다. 실제로 CJ가 만드는 영화에도 변화가 생겼다. 애국주의를 강조한 ‘명량(2014)’ ‘국제시장(2014)’ ‘인천상륙작전(2016)’ 등의 영화가 잇따라 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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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음악 등 CJ 문화사업 전반을 이끌었던 이 부회장이 물러나자 최순실(60)씨의 측근 차은택(47·CF 감독)씨가 CJ의 문화사업에 많이 관여하게 된다. CJ가 1조4000억원을 투자하는 ‘문화창조융합벨트’ 핵심인 K-컬처밸리 사업도 차씨가 기획한 것이다. 지난 2월 상암동 CJ E&M 사옥에 문을 연 문화창조융합센터는 차씨가 인테리어 하나하나까지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난해 음식을 주제로 5월부터 6개월간 열린 ‘2015 밀라노 엑스포’에서도 차씨가 일일이 개입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당시 계열사인 CJ푸드빌의 한식 브랜드 ‘비비고’는 정부가 운영한 한국관에 참여했다. A씨는 “차씨가 메뉴 선정부터 그릇·세팅까지 일일이 결정했고, 그의 말 한마디에 장·차관도 쩔쩔맨다는 이야기를 직원들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장주영 기자 jang.joo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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