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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 ‘아이스 클리프’ 앞에 섰다

중앙일보 2016.11.07 01:00 경제 1면 지면보기
경제 전문가들에게 들어본 ‘최순실 사태’ 건너기
“이번 사태로 내년 창조경제 예산이 대폭 삭감된다고도 합니다. 국내외 경기가 어려운데 이제 막 피어난 스타트업들이 제대로 겨울을 날지 걱정이에요.”

보호무역, 수출 디커플링, 한계기업 증가 등 악재
“기업 준조세 줄이고 경제 부총리 힘 실어줘야
창업 생태계 확대, 노동개혁 흔들림 없이 추진”

경기도 판교 스타트업캠퍼스의 김종갑 운영위원장은 요즘 매일 속이 타들어 간다. 그간 조심스레 키워 온 창업 생태계가 흔들릴 조짐을 보이고 있어서다. 하반기 들어 40개에 달하는 외국계 스타트업(창업 초기 기업)이 판교에 둥지를 틀고, 이게 국내 스타트업 붐과 어우러지면서 창업 생태계의 열기를 더하고 있다. 올 1~8월까지 벤처 창업 수도 1100개를 넘어서면서 2000년 벤처 호황 시절의 지표와 맞먹을 정도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였다. 최근 들어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들이 창조경제 분야에도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곳 창업 생태계의 분위기도 급속히 가라앉고 있다.

실제로 스타트업이 헤쳐 나가야 할 내년 산업경기는 엄동설한의 빙벽 앞에 서 있다. 설상가상 ‘최순실 사태’ 속에서, 혹한을 헤쳐 나가야 할 한국 경제의 컨트롤타워는 마비 지경에 이르렀다.

현대경제연구원은 6일 2017년 경제의 키워드로 ‘산업 빙벽(ICE CLIFF)’을 제시했다. 내년 산업경기의 8대 특징을 나타내는 각 핵심 용어의 첫 영문자를 조합한 것이면서, 동시에 내년 한국 경제의 환경이 험난할 것임을 보여주는 표현이다. 내년 8대 산업경기의 주요 특징은 ▶국제 교역(International trade) 회복과 보호무역주의 대두 ▶산업경쟁력(Competitiveness) 강화를 위한 논의 확대 ▶수출산업(Export industry) 간 경기 디커플링 등이다. <그래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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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운데 국제 교역 회복과 4차 산업혁명의 가속은 그나마 희망적 요인이다. 우리가 잘만 하면 과실을 먹을 수도 있다. 반면 미국과 중국을 필두로 한 보호무역주의 확산, 한국 기업의 산업경쟁력 취약, 중국 시장에 의존하고 있는 수출산업 등은 한국 경제에 부정적 요인들이다. 어떻게 이 난국을 타개해야 할까.

본지는 국내 주요 경제 전문가에게 혼돈 속 한국 경제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이들은 지금의 위기를 1997년 ‘IMF 외환위기’보다 더 심각하다고 진단했다. 이 때문에 국가 최고 통치권자까지 연루된 불법 사태의 시비를 엄중히 가리는 일과는 별개로, 온 국민이 합심해 국가 경제의 위기에 냉철하게 맞서야 할 때라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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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형(62)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은 “분노의 힘을 성장의 에너지로 돌려야 할 때”라며 “시비는 가려야 하겠지만, 기업이 지금 4차 산업혁명의 쓰나미에 올라타지 않으면 휩쓸려 가 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민화(63)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도 창업 생태계와 같은 창조경제는 바람직하며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부 잘못된 사람들 때문에 전체를 망치는 ‘부분의 오류’에 빠져서는 안 된다”며 “4차 산업혁명의 혁신은 작고 개방돼 있는 벤처를 통해 이뤄진다”고 말했다.

석학들은 다가오는 ‘빙벽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경제를 정치에서 분리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의 분석처럼 주요 산업의 구조조정이 확산될 전망이고, 또 신기술·신분야들이 아직 구체화되는 단계에 이르지 못한 현실에서 경제 컨트롤타워의 리더십이 절실하다는 주문이다.

권태신(67) 한국경제연구원장은 “97년 외환위기 당시처럼 경제부총리에게 예산과 법안 등에 전폭적 권한을 줘야 한다”며 “그때 부총리는 여야 지도자들을 찾아다니며 경제위기 극복 정책에 대해 설득하고 합의를 받아냈다”고 강조했다.

기업 손목을 비틀어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금을 내게 한 것도 기업, 나아가 경제의 경쟁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바, 이에 대한 엄격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광두(69) 국가미래연구원장은 “이번을 계기로 기금 모금과 같은 준조세를 크게 줄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원장은 “정부가 법률에 근간을 두지 않고 민간의 일에 개입하게 되면, 정치가 흘러들고 권력자와의 친소 관계에 따라 사업이 흔들린다”며 “국가 정책 차원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법을 만들고 세금을 거둬야 한다”고 말했다.

강인수(55) 현대경제연구원장은 정책의 일관성을 주문했다. 지금까지 추진돼 온 산업 구조조정이나 노동개혁 등은 정파적 입장을 떠나서 방향을 잃지 말고 계속돼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노동의 유연성을 확보하려면 사회 안전망도 같이 확충해 나가야 성공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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