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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곳

중앙일보 2016.11.07 00:20 종합 3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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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태정
내셔널 부데스크

얼마 전 서울 신당동 박정희 가옥에 갔었다. 중구청이 230억원을 들여 가옥 인근을 역사문화공원으로 꾸민다는데 어떤지 궁금했다. 공사가 진행되는 건 없었다. 중구청 측은 ‘현재 보상금 지급 단계로 역사문화공원 완공은 2018년 하반기께’라고 했다. 신당동 집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7사단장이던 1958년 5월부터 61년 8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공관으로 옮길 때까지 살던 곳이다. 1930년대 지어진 단층 목조건물인데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살던 당시 모습으로 복원돼 있다.

안방 옆 작은방에는 어린 시절의 근혜·근령이 함께 피아노를 치는 사진, 어린 지만이 카우보이 복장을 한 사진이 걸려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집에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그땐 나중에 대통령이 돼 “홀로 살면서 챙겨야 할 여러 개인사를 도와줄 사람조차 마땅치 않아 오래 인연을 갖고 있었던 최순실씨로부터 도움을 받게 되었다… 가족 간의 교류마저 끊고 외롭게 지내왔다”며 대국민 사과를 할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대통령은 외로운 자리다. 김영삼 대통령은 “청와대가 감옥이더라. 밤이 되면 쓸쓸하다 못해 고독하다”고 말했다. 미국의 27대 대통령 월리엄 H 태프트는 백악관을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곳’(the loneliest place in the world)이라고 했다. 미 정치학자 로버트 길버트는 저서 『모털 프레지던시(The Mortal Presidency)』에서 대통령직을 제 수명을 다 살지 못하게 하는 살인적인 자리로 설명했다.

외로울 수밖에 없는 자리에서 힘이 되는 건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파트너의 존재다. 여성 지도자는 더욱 그렇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1925~2013) 총리 뒤에는 남편 데니스 대처(1915~2003)가 있었다. 메릴 스트리프 주연의 영화 ‘철의 여인’(The Iron Lady)에서 말년의 대처는 남편을 그리워하며 세상을 떠난 남편과 대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현 영국 총리 테리사 메이는 남편 필립이 “바위처럼 나를 든든하게 지켜줬다”고 했다.

호주의 첫 여성 총리였던 줄리아 길라드(재임 2010~2013)에겐 팀 매티슨이란 남자 친구가 있었다. 그는 ‘파트너’ 자격으로 각종 공식행사에도 참석했다. 2011년 11월 하와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는 퍼스트 레이디 모임에 청일점으로 참석한 사진이 세계적 화제였다.

2012년 대선에서 박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아마도 박 후보가 고독한 자리를 잘 견뎌내며 나라 발전에 힘쓸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다. 지금 그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전국 곳곳에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줄을 잇는다. 박 대통령은 외로움을 더 굳건히 견뎠어야 했다. 대통령이기 때문에. 외로움을 견뎌야 하는 건 대통령 몫이 가장 크지만, 길라드의 매티슨 같은 파트너는 꿈도 못 꾸는 사회 분위기, 외로운 대통령이 최순실씨에게 의지하도록 한 참모들에게도 책임이 있을 것이다.

염태정 내셔널 부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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