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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그 시절이 좋았다” 말하는 남자의 내면에 있는 것

중앙일보 2016.11.05 00:01 종합 2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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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
소설가

개인이 경험하는 트라우마는 즉시 치유되지 않으면 마음에 맺힌다. 개인은 살아남기 위해 그것을 힘껏 억압하거나 수용할 만한 모습으로 미화시켜 간직한다. 억압이든 미화든 내면 트라우마는 생의 에너지를 끌어당기며 성장과 발달을 방해한다. 현실이 불만족스러울 때마다 트라우마의 시기로 퇴행한다. 정신분석학은 그런 마음 작용을 ‘고착’이라 일컫는다.

“고착은 만족을 얻는 방식, 대상과 관계 맺는 방식, 위험에 반응하는 방식에서 원초적 양식이 계속 유지되는 것을 말한다. 즉 자아 기능이 발달 초기 단계에 집착적으로 고정되어 있는 것을 뜻한다.” 고착은 퇴행과 발달 정지를 낳는다. 퇴행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쉽게 발생하고, 발달 정지는 진보된 정신 수준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이때 개인은 자기와 대상을 충분히 구분하지 못하고, 동일시와 투사를 과도하게 사용할 수 있다. 초자아 발달 정지로 인해 도덕성이 부적절하게 형성될 수 있다.” 고착은 개인의 삶을 위기로 몰아간다. 미숙한 현실감각과 왜곡된 인지작용이 판단 오류를 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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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 사회 한 편에는 과거의 시간에 고착된 세대가 존재한다. 가난·통제·소외의 시기였다는 객관적 지표와는 달리 그들은 ‘그때 그 시절’을 이상화된 모습으로 간직해 왔다. 사회적 위기나 경제적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그 시절로 돌아가자고 외쳤다. 이번 정권은 그들의 퇴행 소망이 현실에 구현된 ‘고착 증상’처럼 보이기도 했다. 개인의 회복은 내면의 고착을 알아차리고 떠나 보내는 작업에서 시작된다. 사회도 마찬가지여서 요즈음 우리 사회는 충격과 함께 내면의 고착을 통찰해내는 중으로 보인다. 콘크리트 지지층의 붕괴는 그 시기에 고착되어 있던 심리 역동에서 에너지가 풀려나고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지금은 성숙한 회복작업, 건강한 애도작업이 필요해 보인다. 그때 그 시절과, 그 시절 인물들을 떠나보낼 때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자신의 증상들을 부끄러워하거나, 고착과 관련된 대상을 공격하지 않는다. 과거의 자신을 그대로 인정하기, 떠나보내는 대상을 슬퍼하기, 새로운 시각으로 현실 인식하기, 모든 경험과 정서를 내면에 통합하기 등의 작업이 필요하다. 개인이 변화와 성장을 경험하는 시간은 외부에서 보면 혼돈과 위기의 순간처럼 보인다. 사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혼돈과 위기에 처한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중요한 변화와 회복의 시간을 지난다는 뜻이다.

김형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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