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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로 따 먹어야 제맛, 나무 꼭대기 씨 없는 홍시

중앙일보 2016.11.04 00:07 Week& 4면 지면보기
| 이달의 맛 여행 <11월> 청도 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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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도는 감 익는 마을이다. 가을이 깊어지면 산자락마다 동네 어귀마다 감나무에 빨간 감이 주렁주렁 달린다. 가족 여행객이 장대로 감을 따고 있다.


가을에 색을 입는 건 단풍만이 아니다. 빨갛게 익은 감도 가을이 깊어가는 요즘에만 볼 수 있는 계절의 색이다. 삽상한 가을바람이 불면 감나무 열매로 붉게 물드는 고장이 있다. 국내 최대 떫은 감 생산지 경북 청도다. 청도의 가을은 감이 있어 정겹다. 농부는 장대를 휘둘러 나무 꼭대기의 감을 툭툭 따내고, 아낙은 수확한 감을 매만지느라 온종일 분주하다. 감 익는 계절, 청도에 들면 감나무 어우러진 소담스러운 시골 풍경이 옛 그림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감 익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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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반시를 맛보고 있는 아이들.


감은 크게 두 종류로 구분한다. 단감과 떫은 감이다. 단감은 텁텁한 맛이 적어 아삭아삭한 과육을 그대로 즐긴다. 떫은 감은 이름대로 떨떠름한 맛이 강해 숙성 후 먹는다.

따뜻한 기후를 좋아하는 감은 경북 지방에 특히 흔하다. 우리나라 떫은 감 생산량은 한해 25t에 이르는데 이중 절반이 경북에서 난다. 경북에는 상주·의성 등 감으로 이름난 고장이 많지만 전국에서 떫은 감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지역은 청도다. 지난해 국내 떫은 감의 약 20%(5만t)가 청도에서 재배됐다. 현재 청도에서는 5100여 농가가 2100㏊의 감 밭을 경작하고 있다. 청도농업기술센터 양태식(44) 주무관은 “청도의 지형 조건이 감 농사에 최적의 환경”이라고 소개했다.

“청도군 동쪽에 운문산(1188m), 서쪽에 비슬산(1084m), 남쪽에 화악산(932m), 그리고 북쪽에 선의산(759m)이 버티고 있습니다. 완벽한 분지 지형이지요. 그래서 일교차가 큽니다. 단맛이 강한 감으로 익을 수 있는 조건입니다.”

청도 감은 ‘씨 없는 감’으로 유명하다. 암꽃만 맺는 암감나무만 자라는 것이 청도 감에 씨가 생기지 않는 이유란다. 청도군은 수감나무가 발견되면 베어 버리기도 한다. 양 주무관은 청도의 분지 지형이 씨 없는 감을 만드는 데도 영향을 준다고 덧붙였다.

“청도천을 품은 청도는 아침마다 물안개가 낍니다. 산줄기에 막혀 있어서 물안개가 잘 걷히지 않습니다. 물안개는 벌의 수분 활동을 방해합니다. 수정이 어렵다 보니 감에 씨가 생기지 않는 것이지요.”

올해 청도 감 농사는 예년보다 못하다. 지난 여름이 유난히 뜨거웠던 탓이다. 지난달 말 청도군 매전면에서 20만㎡에 이르는 감 밭을 경작하는 전민규(34)씨를 만났다.

“평년보다 사나흘 수확이 빠르네요. 수확량은 지난해의 80%에 못 미치는 것 같아요.”

전씨가 혹독한 여름을 견딘 열매라며 자랑스럽게 감을 보여줬다. 보통 10월 말에서 11월 중순까지 수확하는데, 수확기에 맞춰 밭을 찾아오는 여행객은 감을 직접 딸 수 있다. 눈높이에 달린 감은 쉽게 땄지만 정수리 위에 달린 감은 대나무 장대를 들어야 했다. 장대가 생각보다 무거워 손이 떨렸다. 직접 딴 감을 맛봤다. 한 알 한 알 농부의 손으로 어루만진 맛이었다.


 
떫은 감을 즐기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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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질을 벗겨 반들반들 윤이 나는 감 알맹이.


청도에서 생산하는 감은 납작한 접시를 닮은 감이라 해서 접시 반(盤) 자를 붙여 ‘반시(盤枾)’로 불린다. 둥그스름한 ‘둥시’, 봉긋한 생김새의 ‘대봉’보다 수분 함량이 높다. 물기가 많기 때문에 곶감용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대신 반시는 일주일 정도 숙성시켜 홍시로 먹거나 살짝 말려 건시로 먹는다.

감 가공작업에 한창인 청도군 각남면 강호근(52)씨의 농장을 방문했다. 인부 예닐곱 명이 감 말리기에 한창이었다. 기계에 감을 넣고 돌리니 껍질만 벗긴 알맹이가 나왔다. 반들반들한 감이 먹음직스러워 보여 한입 베어 물었다가 낭패를 봤다. 입안에서 떨떠름한 기운이 가시질 않았다.

“반시는 떫은 감이어서 생으로 먹을 수 없어요. 반드시 탈삽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감 숙성 과정을 ‘탈삽’이라고 하는데, 떫은 맛을 없애는 게 아니라 단맛을 키워 떨떠름함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떫은 감은 자연 상태로 한두 달 놔두면 저절로 단맛이 농축돼 떨떠름함이 준다. 하지만 자연 숙성한 감은 절반 이상 수분이 빠져나가 먹을 것이 별로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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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말랭이. 말랑말랑한 젤리 같은 식감이다.


수분이 꽉 차있으면서도 다디단 감을 만들려면 감을 빠르게 발효시켜야 한다. 우리 조상은 발효를 촉진하기 위해 감을 볏짚이나 숯에 올려뒀다. 청도 농가에서는 감에 에틸렌가스를 쬔다. 나무에서 갓 딴 감은 당도가 17브릭스 정도에 불과하지만 탈삽한 감의 당도는 35~40브릭스까지 치솟는다.

청도 반시의 70%는 홍시로 출하되지만 나머지 30%는 건시로 시장에 판매된다. 건시는 1주일 정도 건조기에 감을 넣고 수분 함량을 70~80% 정도로 낮춘 다음 시장에 나온다. 동그란 감 모양이 유지되면 ‘반건시’가 되고, 감을 4등분해 말리면 ‘감말랭이’가 된다. 감말랭이는 냉동고에 넣으면 1년을 보관할 수 있다. 강씨는 “청도 어르신은 손주가 온다면 처마 밑에 곶감을 매달지 않고 감말랭이를 말린다”며 곶감보다 달지 않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고 일러줬다. 지난해 딴 감으로 만든 감말랭이를 맛봤다. 말랑말랑한 젤리를 씹는 것 같은 식감이 났다.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뜨뜻한 아랫목에 누워 감말랭이의 달콤함에 빠져들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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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와인터널에서 시음할 수 있는 감와인.

 
여행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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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청에서 청도군청까지 자동차로 4시간 소요된다. 청도군 매전면 청산농원(054-371-5610)에서 감 수확 체험을 할 수 있다. 1상자(3㎏) 1만원. 전화로 예약해야 한다. 와인터널도 들러볼 만하다. 해마다 감와인 100만 병을 생산해 옛 기차터널에 보관하는 저장고로 감와인을 시음할 수 있다. 스위트와인 1잔 3000원. 지역 특산물 온라인 장터 농마드(nongmard.com)로 청도 반시를 주문할 수 있다. 감 1상자(16개) 1만8000원. 감말랭이 1㎏ 1만8500원. 02-2108-3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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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양보라 기자 bora@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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