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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드라마로 배웠네-시즌2] 풍파를 피하려면, 휴대폰을 사수하라

중앙일보 2016.11.04 00:01
‘함부로 예약해버렸습니다.
이번주 토요일 오후 3시 힐스호텔.
기다리겠습니다.
보고싶습니다.’


의도한 건 아닌데 보고야 말았다. 최근 방송을 시작한 JTBC 금토드라마 ‘이번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의 주인공 도현우(이선균). 어느날 살림도 육아도, 사회생활도 완벽한 아내 수연(송지효)의 휴대전화에 도착한 의심스런 문자를 발견한다. 다툼이 있었던 것도, 아내를 화나게 할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나한테 왜? 평온하던 일상은 박살이 나고, 문자 하나때문에 우주 최강의 찌질남, 의심남으로 변모하고 마는 주인공. 회식자리에 간 아내의 뒤를 좇고, 흥신소에 아내의 뒷조사를 의뢰한다. 답답한 맘을 이길 길 없어 온라인게시판에 사연을 올려 도움을 요청한다. 그의 머리를 가득 채운 단 하나의 질문은 이것. '둘이 잤을까 안 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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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기운에 이끌려 그녀의 휴대폰을 집어들었네

사랑하는 이의 휴대전화. 이것은 금단의 열매다. 풍파를 겪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손대지 말아야 할 헬게이트다. 주변만 둘러봐도 안다. 요즘 수없이 많은 사랑의 파탄이 휴대전화에서 시작된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만 이들은 말한다. "제가 원래 남의 휴대폰 보고 그런 사람이 아닌데, 그날따라 왠지 봐야할 것 같은 느낌이…." '우주의 기운' 설이다. 여성들이 신봉하는 '여자의 촉'설에도 주목하자. "요즘 뭔가 수상하다는 '촉'이 왔거든요. 그래서 남친이 화장실 간 사이에…." 비슷한 종류로 '쎄한 느낌'설도 있겠다. "잠깐 쓰레기 버리고 들어왔는데, 남편이 휴대폰을 보며 웃고 있다 황급히 닫는 거에요. 순간 '쎄한 느낌'이 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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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 그런데 패턴을 모르겠어

왜 쎄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그렇게 훔쳐 본 연인의 휴대폰에선 크고 작은 물증이 쏟아진다. "옵빠 요즘 가을 탄다." 썸의 흔적, "요즘 남친이랑 권태기야." 어장관리의 흔적, "자니?" 구여친 접촉 흔적, "요즘 피둥피둥 살쪄서 꼴보기 싫어." 친구들과의 내 뒷담화 흔적, "토요일 10시 콜!" 나 몰래 클럽에 드나든 흔적까지. 문자와 톡이 깨끗하다면 사진첩과 연락처, 검색어 검사로 넘어갈 차례. 회사 직원과 다정하게 팔짱을 낀 사진은 왜 안 지운 것이냐. 연락처엔 왜 이렇게 '오빠'들이 많지? 네이버에 '소개팅 어플'은 왜 그리 여러번 검색한 거냐고! 어쩐지, 전화기를 보고 싶더라니! 굳건했던 믿음은 산산조각이 나고, 영혼은 너덜너덜해지기 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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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를 묻혀봐도 모르겠네

휴대폰 때문에 망한 연애라…, 아아 기억난다. 나 역시 원래 그런 사람은 아닌데, 그날 따라 카페 테이블 위에 놓인 그의 휴대폰이 자꾸 눈에 밟혔다. 패턴이 걸려 있었지만, 단순한 녀석, 'Z'였다. 그리하여 우주의 기운에 순응하여 문을 연 그곳에 지옥이 기다리고 있었다. 문제가 된 톡의 내용은 두 개, 여사친들과의 대화였다. "언제 술 먹자"(여사진) "둘이 먹는 건 좀 그런데. 여친이 싫어해"(남친) "뭐야, 왜 그러고 살아? 여친 질투가 장난 아닌듯?"(여사친) "ㅠㅠ나 힘들어."(남친) 이것들이, 지금 누굴 신나게 씹고 있는거냐. 또 하나의 톡은 이거였다. "오빠~ 뭐해요?" "응 집인데." "지금 근천데 잠깐 나올 수 있음?" 대화는 거기서 끝. 만난 걸까, 거절한 걸까. 그렇게 전쟁은 시작됐고, 진실은 저 너머에 있고, 나중엔 왜 때문에 싸우는 지도 모른 채 싸우고 또 싸우다 우리는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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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보는 이 속옷은 누굴 위한 걸까

그리하여 수많은 연애지침서는 충고한다. 다른 건 몰라도 휴대전화만은 프라이버시의 영역으로 남겨두라고. 촉이 촉촉 경고를 보내건, 쎄한 느낌이 쎄쎄 몰아치건 참아야 한다고. 여는 순간 풍파가 몰아칠 것이므로. 상대가 진짜 바람을 피우고 있다면,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지 않더라도 더 확실한 증거가 곧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그러니 서로의의 사적인 영역을 인정하고, 사소한 유혹일랑 알아서 정리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무엇보다 휴대전화 검열도 마약같아서 한번 보면, 두번 보고싶고, 자꾸만 보고싶어질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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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난다

하지만 인간은 호기심의 동물 아니던가. 본능은 자꾸 의지를 앞선다. 그리하여 10년 넘게 화목한 가정생활과 발랄한 이성관계를 동시에 사수했다는 A선배는 연애때마다 휴대전화로 갈등하는 어린양(나)에게 충고했다. "결국 들킨 사람 잘못이야. 상대가 쓸데 없는 의심을 할 여지를 만들지 말아야 해. 연인과 있을 땐 벨소리는 무음이 기본이요, 모든 알림 기능은 꺼 두는 게 좋아. 잠금 패턴은 무조건 세 번 이상 꺽는 걸로. 통화목록은 바로바로 지우고, 무엇보다 귀가하기(혹은 연인을 만나기) 전, 딱 3분 시간을 내 메시지와 톡 내용을 '재구성' 하는 걸 습관화하게. 습관이 되면 술 취해도 자동으로 할 수 있게 됨." 암요암요. 많이 배우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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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화가 난다

'이번주 아내가 바람은 핍니다' 속 남편의 고군분투는 아마도 훈훈하게 마무리될 것이다.(일본판 원작의 결말을 알지만 스포일러는 참기로 하자) 하지만 드라마는 드라마일뿐, 현실의 연애는 다르다. 가능하면 서로의 휴대폰을 멀리 하려 노력하돼, 만일을 대비해 자나깨나 휴대폰을 조심하자. 드라마 속 이선균의 이 대사처럼. ‘방심, 그건 우리 가장 가까이에 있는 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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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엾은 내 사랑 휴대폰에 갇혔네

의심받을 일을 하지 않으면 그만 아니냐고? 난 당당하다고? 음, 그 옛날 선인들도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털어서 썸 하나 안 나오는 사람 없다'고.

난 지문인식임 기자 nocheating@joongang.co.K*r
 
'연애를 OO으로 배웠네' 는?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들이 다양한 문화콘텐트에 연애 경험담을 엮어 연재하는 잡글입니다. 잡글이라 함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기자 이름과 e메일 주소는 글 내용에 맞춰 허구로 만든 것이며 익명으로 연재합니다. 연애 좀비가 사랑꾼이 되는 그날까지 매주 금요일 업데이트합니다. 많은 의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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