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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선생님을 "엄마" "아빠" 부르니···학교폭력 줄고 성적 올라

중앙일보 2016.11.03 01:10 종합 2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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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리 활동으로 요리를 하는 ‘된다가족’이 새우튀김과 오징어부추전을 만들고 있다.

“아빠, 오후에 있을 동아리 활동에 쓸 재료 사러 함께 가요. 새우튀김이랑 오징어부추전 만들 거예요.”

경북인터넷고 ‘가족맺기’의 기적
학업포기자 많았던 불량학교
취업률 75% 우수 고교로 바뀌어

교사 1명에 딸·아들 8명씩 묶어
칭찬 아끼지 않고 고민 귀 기울여

반발하던 학생들 한 달도 안돼 변화
교사·학생 믿음에 저절로 인성교육

지난달 21일 경북 봉화군의 경북인터넷고 1층 교무실을 찾은 1학년 우민규군이 이 학교 이무영 교감에게 조르듯 말했다. ‘아빠’라는 호칭이 어색하지 않은 듯 이 교감은 태연하게 “알았다. 아들” 하고 답했다. 이 교감은 ‘아들’ 우군과 함께 교무실을 나서 차로 10분 이상 걸리는 마트에 함께 갔다.

두 사람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이지만, 이 학교에선 부자지간이다. 경북인터넷고가 2005년부터 ‘학교가 가정이다’를 목표로 시행 중인 ‘가족 만들기’ 프로그램 덕분이다. 현재 이 학교 교직원 16명은 각각 학생 8~10명과 함께 ‘기똥찬가족’ ‘청출어람가족’ ‘톱니바퀴가족’ 등을 구성하고 있다. 이 교감네 가족인 ‘된다가족’ 가훈은 ‘가자’다. ‘가장’인 이 교감은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의지를 담았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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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인터넷고는 동아리 활동도 가족 단위로 한다. 바리스타 체험을 하는 ‘기똥찬가족’이 핸드드립커피 제조법을 배우고 있다. 기똥찬가족의 가장 박선남 교무행정사(왼쪽 셋째)는 “8명의 아들·딸과 함께 학교 생활을 하니 하루하루가 즐겁다”고 말했다. [봉화=프리랜서 공정식]

경북인터넷고는 전교생이 143명뿐인 소규모 학교다. 논밭에 둘러싸인 농어촌 학교로 학부모도 대개 농업에 종사한다. 봉화군의 4개 고교 중 특성화고는 경북인터넷고를 포함해 두 곳. 대개 일반고에 진학할 성적이 안 되거나 가정 형편이 어려워 일찍 생계를 책임져야 할 학생들이 진학한다. 전체 학생의 절반에 이르는 71명이 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계층·영세농어민 자녀로 정부의 교육비 지원을 받고 있다.

이 학교는 10여 년 전만 해도 ‘불량학교’로 알려졌다. 등교시간을 제대로 지키는 학생은 거의 없었고, 수업에 제대로 귀 기울이는 학생은 한 반에 3~4명뿐이었다. 상당수 학생이 교사를 외면한 채 엎드려 자거나 몰래 게임을 했다. 교사가 “지각하지 말라” “일어나라”고 훈계하면 몇몇 학생은 “선생님이 뭔데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하느냐”고 쏘아붙이기도 했다. 이 교감은 “당시엔 학교를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고 회상했다.

교사들은 사랑과 관심의 결핍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판단했다. 어른에 대한 불신과 경계심을 걷어내고, 보통 아이들보다 낮은 자신감과 자존감을 끌어올리려면 교사가 학생에게 애정을 쏟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2005년 가족 만들기를 시작한 이유다. 도교육청의 ‘1교사 1학생 자매결연 프로그램’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이 교감은 한 가족이 돼 학생을 보살피자는 결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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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윤진석군은 동아리에서 서각을 배우며 목공예 조각가라는 꿈을 찾았다.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건 아니다. 기가 센 학생들은 “왜 선생님을 엄마, 아빠라고 불러야 하느냐”고 항의했다. 몇몇 교사는 “아이들이 쉽게 변할 리 없다. 일만 늘어나는 거 아니냐”고 불만을 제기했다. 하지만 이두홍 교장과 이 교감은 “가족 맺기만이 학교가 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설득했다.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교사들은 자녀의 생일이 되면 케이크를 사다 교실에서 파티를 열었고, 가족끼리 시내에 나가 외식을 했다. 가장 효과적이었던 건 따뜻한 말 한마디였다.

기똥찬가족의 가장인 박선남 교무행정사는 가족 맺기 이후 교내에서 자녀가 된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우리 딸 오늘따라 더 예쁘네” “아들, 체육수업 열심히 해”와 같은 칭찬·격려를 아낌없이 건넸다. 이를 위해 가정환경·형제관계를 파악했고, 그들의 고민에 귀를 기울였다. 담배를 피우는 학생에게도 “당장 끊어”라고 윽박지르는 대신 “우리 아들, 조금만 줄이자”고 제안했다.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못 받고 자란 아이들은 새로 만난 엄마·아빠에게 마음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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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가족’이 음악실에서 오케스트라 연습을 하고 있다.

가족 맺기는 호칭만 바꿔 부르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가족 맺기, 마음 열기, 생활습관 교정, 꿈 찾기, 학습지도, 칭찬하기, 문화체험동행, 함께 사는 세상 익히기, 세상 내보내기의 9단계 프로그램으로 돼 있다. 핵심은 인성교육이다.

이 학교에선 격주 금요일마다 ‘가족회의’가 열린다. ‘가장’들은 학생들과 항상 눈높이를 맞추려고 노력한다. 인사나 수업 태도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는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친구가 인사를 안 하고 갈 때, 발표할 때 친구들이 엎드려 있을 때의 기분을 묻고 학생 스스로 납득하게끔 유도한다.

요즘 학교 분위기는 10여 년 전과는 정반대다. 전교생 중 지각하는 학생은 하루 두세 명에 그친다. 수업 중에 엎드려 자는 학생은 아예 사라졌다. 학생들 스스로 ‘엄마·아빠의 사랑에 보답하자’는 캠페인을 통해 지각을 안 하고, 수업에 적극 참여하기 시작했다.

교사들은 가족이 된 학생의 시험 준비도 맡았다. 교사에게 마음을 연 아이들은 ‘공부하라’는 잔소리도 싫어하지 않는다. 시험 기간에 교과서를 편 적이 없는 3학년 김은영양은 김신동 교사와 가족이 되면서 회계에 흥미를 갖게 됐다. 이젠 반에서 1~2등을 다투는 우등생이 됐다. 김양은 “아빠가 시험 때마다 계획표를 써 오라고 해서 공부를 안 할 수가 없었다. 시험 기간에 새벽까지 교과서를 파고들었다”고 말했다.

학교는 학생의 자원봉사도 장려했다. 중학교 다닐 때엔 조퇴를 ‘밥 먹듯’ 했던 3학년 금학준군은 고1 때 노인회관 청소 봉사를 경험한 이후 달라졌다. 노인들로부터 “학생 덕분에 우리가 깨끗하게 지낼 수 있어 고맙다”는 감사의 말을 들은 게 전환점이다. 금군은 “태어나 처음으로 내가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학교 방송반을 통해 카메라맨이라는 꿈이 생긴 뒤에는 학업에도 힘썼고, 중학교 때 130명 중 117등에 그쳤던 성적은 고등학교 올라와 50명 중 20등으로 뛰었다.

가족 맺기는 왕따·학교폭력도 줄였다. 이 교감은 “예전에는 고1 때 학생들끼리 주먹다툼을 하거나 덩치가 큰 학생이 몸이 약한 아이를 괴롭히는 일이 잦았는데, 가족 맺기를 시작한 후 이런 일이 없어졌다 ”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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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인터넷고는 지난해부터 삼성꿈장학재단의 후원으로 가족 특색사업을 시작했다. 인성·학업 교육과 함께 진로라는 ‘세 번째 토끼’를 잡기 위해서다. 기똥찬가족은 교내에서 솔 카페라는 이름의 커피전문점을 운영하고, 벽화가족은 학교 운동장에 벽화를 그린다. 쪽빛가족은 봉사활동과 방송을 맡 는다.

학생의 변화는 취업률 상승으로도 이어졌다. 2012학년도 47.2%였던 졸업생의 취업률은 지난해 75%로 올랐다. 경북 지역의 특성화고(상업계열) 20개교 중 가장 높았다. 이 교감은 “교사와 학생 사이의 믿음이 쌓이니 자연스럽게 인성교육이 이뤄지고, 학생의 실력까지 키웠다. 인성이 실력이라는 증거”라고 말했다.

봉화=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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