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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격 인터뷰] 김영희 묻고 제인 하먼 우드로윌슨센터 소장 답하다 “비핵화는 북·미 대화의 전제조건이 아니라 최종 목표”

중앙일보 2016.11.03 00:46 종합 30면 지면보기

막바지 레이스에 돌입한 미 대선판이 요동치고 있다. 미 연방수사국(FBI)이 당초 불기소 결정을 내렸던 민주당 대선후보 힐러리 클린턴의 ‘e메일 스캔들’ 재수사에 착수하면서다. 패색이 짙던 트럼프는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이상의 충격”을 장담하며 클린턴과의 지지율 격차를 좁혀가다 1일 발표된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클린턴을 46% 대 45%로 1%포인트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예측 불가한 미 대선을 앞두고 미국의 대표적인 외교·안보 싱크탱크인 우드로윌슨센터의 제인 하먼(71) 소장이 한국을 찾았다. 빌 클린턴 및 오바마 행정부에서 외교·안보 분야를 자문해 온 그를 김영희 대기자가 1일 만났다. 미 대선 전망부터 클린턴 당선 시 외교정책, 북핵 문제를 풀 해법 등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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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4대 싱크탱크 중 하나인 우드로윌슨센터의 제인 하먼 소장은 서로 상대 탓만 하는 정치의 피해자는 곧 국민이라며 특히 외교 앞에선 정쟁도 멈추는 게 과거의 룰이었다고 개탄한다. [사진 조문규 기자]

김영희=지난달 28일 FBI 제임스 코미 국장이 의회에 재수사를 하겠다는 서한을 보내면서 클린턴 ‘e메일 게이트’의 꺼져가던 불씨를 살렸습니다. 이에 기세등등해진 트럼프는 ‘범죄 행위’라고 거론하며 유권자들에게 클린턴을 뽑지 말라고 독려하고 있습니다. 새 국면을 맞은 e메일 게이트가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탄생을 저지할까요.
제인 하먼= 요기 베라(미 메이저리그의 전설적 포수)의 말을 인용하자면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닙니다. 이번 대선도 그렇죠. 여론조사가 엎치락뒤치락하지만 클린턴이 아직은 앞서가고 있습니다. 코미 국장이 한 행동이나 일을 처리한 방식은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가 이미 지저분한 선거판을 더 지저분하게 한 것은 확실한데, 이 때문에 클린턴이 얼마나 타격을 입을지 혹은 트럼프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김=‘11월의 이변(November Surprise·대선일인 11월 8일 예상외의 결과가 나오는 것)’ 가능성은 없습니까.
하먼=아무것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번 주에도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습니다.
김=미 역사상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와스프’(WASP·미국 사회의 가장 영향력 있는 계층에 속하는 앵글로색슨계 백인 신교도)가 아닌 첫 가톨릭 대통령이었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었습니다. 클린턴이 당선된다면 첫 여성 대통령이 되는데, 사회문화적 의미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먼=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역사적 사건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한국을 비롯해 세계 다른 나라에선 벌써 그런 일이 생겼는데 말이죠.
김=미국에선 왜 지금까지 여성 대통령이 나오지 않았을까요.
하먼=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죠. 우선 여성 후보에게는 투표하지 않는 남성 유권자들이 있고, 여성 유권자들 중에도 여성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가 1992년 처음 하원의원이 됐을 때 이런 어려움을 생생히 느꼈습니다. 당시 캘리포니아에서만 두 명의 여성 연방 상원의원이 탄생하고, 하원에선 여성 의원 수가 두 배로 늘어 ‘여성의 해’라고 했습니다.
김=이번 대선 과정은 역사상 가장 지저분하고 품위 없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현대 민주주의의 발상지인 미국의 정치가 왜 이 지경까지 된 겁니까.
하먼=제가 태어난 이후부터 따진다면 그렇게 이야기할 만합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3차 토론회 현장에 있었는데, 마치 돈을 걸고 하는 권투 시합 같았습니다. 불행하게도 미국의 정치는 서로 상대방 탓만 하는 블레임 게임(blame game)이 돼버렸습니다. 비난만 하고 문제를 풀기 위해 협력하진 않아요. 특히 외교정책에서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건 국익을 저해합니다. 예전엔 정쟁도 외교 앞에선 멈추고 협력하는 게 일종의 룰이었습니다.
김=사기꾼이라고까지 불리는 트럼프가 40% 정도의 국민 지지를 얻고 있는데, 이런 폭발적 성공은 미국인들의 도덕적 실패를 보여주는 것 아닙니까.
하먼=그 40%의 국민은 현 정부를 지지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부는 정부에 대한 항의성으로 트럼프를 지지하는 것이죠. 트럼프에게 투표한다기보다는 주류 엘리트들에게 투표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슬프게도, 이번 대선은 무엇이 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식으로 진행됐어요.
김=트럼프 현상(Trumpism)이 미국 민주주의와 정치에 파괴적인, 그리고 오래 지속될 상처로 남을 걱정은 없습니까.
하먼=파괴적이라는 표현은 좀 과하다고 생각합니다. 트럼프 현상의 상당 부분은 포퓰리즘입니다. 전 세계적인 현상이죠. 이는 자동화로 인해 일자리가 줄어들고, 소외감을 느끼는 이들이 늘어나는 현 상황과 관계가 있습니다. 주류 정치인들이 이런 걸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죠.
김=클린턴이 당선된다면, 트럼프와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탈락한 버니 샌더스의 지지자들을 포용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대부분 가난한 백인층이거나 분노에 찬 젊은이들인데요.
하먼=해야 할 일이 아주 많죠. 창의적으로 새로운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낼 가장 똑똑한 사람들을 찾아야 할 겁니다. 미국 인프라 구조 재건이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공항·도로·철도 등을 정비하는 것은 고용을 창출할 뿐 아니라 섬세한 디자인과 고도화한 기술도 필요로 할 거예요.
김=클린턴은 왜 이렇게 미움을 받습니까. 왜 신뢰를 받지 못하죠.
하먼=일부는 시기고, 고위직에 오른 여성에 대한 반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e메일 스캔들이나 클린턴 재단을 둘러싼 논란도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김=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클린턴이 국내 문제에 발이 묶이거나 국내적으로 지지가 부족해서 미국의 패권에 대한 중국·러시아의 도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분석했습니다. 세계적으로 미국의 역할이 줄어들 것이라고요.
하먼 = 그가 당선된다는 가정 아래 이야기한다면, 그에겐 중국과 러시아를 다룰 충분한 능력이 있습니다. 클린턴이 당선되면 우선 공화당과 샌더스 지지자들에게 다가가는 게 중요합니다. 클린턴은 상원의원이었을 적에 공화당 의원들로부터도 높은 평가를 받곤 했어요. 일단 대선이 끝나고 그가 백악관과 의회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면, 오바마 대통령은 얻지 못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김=정책이나 스타일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클린턴의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하먼=외교정책에서 좀 차이가 있습니다. 클린턴을 매파라고도 하는데, 그게 타당한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문제 해결을 위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라면 보다 기꺼이 미국의 군사력을 사용하거나 그렇게 하겠다고 위협하는 쪽입니다. 오바마 대통령보다 강경한 견해를 갖고 있죠.
김=클린턴의 외교정책은 조지 H W 부시-빌 클린턴-조지 W 부시-버락 오바마 행정부에 비해 더 고립주의적이고 보호주의적인 성격을 띨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하먼=더 고립주의적이 되진 않을 것이며, 더 보호주의적이 되진 않길 바랍니다. 클린턴이 반무역주의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대해서도 반대하는 게 아니라 “지금의 내용으로는 지지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게 정확히 그가 한 말입니다.
김=클린턴에게 외교적 자문을 하는 커트 캠벨 전 국무부 차관보나 웬디 셔먼 전 국무부 차관이 북한에 대해 하는 말을 들어보면 과거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네오콘들만큼이나 강경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정권 교체나 선제타격도 지지하는 것 같고요. 이들이 새 행정부에 합류한다면 미국의 대북정책이 보다 강경해질 것이란 걱정이 드는데, 기우입니까.
하먼=미국의 정책은 비핵화를 지지하는 것이지, 선제타격을 지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최근 내가 신문 기고에서 제안했듯 실질적이고 진정성 있는 대화를 통해 북한의 핵 동결을 달성하는 방법을 시도해야 합니다. 이를 토대로 관계를 형성해 비핵화까지 이루는 것이죠.
김=방금 언급한 9월 30일 워싱턴포스트(WP) 기고에서 제재와 무력 과시로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포기하도록 할 수 없단 점을 정확히 지적했습니다. 또 미국이 한·미 합동 군사훈련을 중단하고 ‘불가침조약’(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해 주는 대가로 북한이 대화에 나서도록 유연성을 보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핵 동결 및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달성한다는 로드맵을 갖고 말이죠. 이런 의견이 워싱턴 정책 입안자들 사이에서 공감을 얻고 있습니까.
하먼=그건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제재를 해제하자는 게 아닙니다. 강제 제재는 북한이 다시 대화를 해야겠다고 느낄 만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핵 동결과 비핵화로의 길을 여는 확고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이상 북한에 대한 압박을 줄이자는 제안은 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대화를 위한 대화가 아닙니다.
김=비핵화가 대화 재개를 위한 전제조건, 선결조건이란 뜻입니까.
하먼=비핵화는 마지막에 가서 달성해야 하는 목표입니다. 만일 북한에 대화를 하기도 전에 비핵화에 먼저 합의하라고 하면, 대화할 기회조차 없을 겁니다. 대화를 위한 전제조건은 “비핵화로 이어지는 핵 동결 협상을 하겠다”는 북한의 약속입니다.
김=다시 확인하겠습니다. 비핵화는 대화의 전제조건이 아니라 최종 목표라는 것입니까.
하먼=그렇습니다.
김=클린턴의 대중국 정책은 어떨까요.
하먼=굉장히 미묘한 정책을 취하길 바랍니다. 중국과 기후변화 대응 문제에 협력하게 된 건 플러스 요소입니다. 남중국해나 지적재산권 문제, 사이버안보 문제 등은 마이너스 요소고요. 기후 대응 부문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 협력하면서 미·중 간 문제도 풀어나가는 방법을 찾는 게 필요하고, 클린턴은 이를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오바마 대통령이 남긴 업적은 무엇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하먼=기후변화 대응, 쿠바와의 외교관계 정상화, 이란 핵 협상 타결 등을 꼽고 싶습니다. 아시아 재균형 정책도 있습니다. 끝내지 못한 일도 많아요. 시리아 사태 등은 유능한 후임 대통령이 풀어야 할 문제들입니다. 해야 할 일이 두 손 가득(her hands full)할 겁니다.
김=오바마의 대북정책은 F학점이겠지요.
하먼=네, 북한 상황은 더 나빠졌죠. 동의하지만, 점수를 매기는 것이 생산적이진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바마 대통령도 열심히 노력했다고 봅니다.
김=박근혜 대통령을 위협하고 있는 엽기적 스캔들에 대해 얼마나 자세히 알고 있습니까.
하먼=한국에 와서 처음 뉴스를 봤는데, 이는 한국 국민이 풀어야 할 문제이고 제 의견을 밝히진 않겠습니다. 다만 박 대통령을 세 차례 만나봤는데 부드러움과 강인함을 모두 갖췄으며 유능하다고 느꼈습니다. 정치란 참 어려운 일이죠.
김=한국에 특별한 애착을 가지신 것 같은데요.
하먼=우드로윌슨센터뿐 아니라 저 개인적으로도 한국에 애정이 많습니다. 제 며느리 중 한 명이 한국인입니다. 제게도 한국 할머니들 같은 데가 있습니다. 한국말로 하면 저는 ‘손녀바보’입니다. 손녀라면 껌뻑 죽는 할머니입니다. 그게 자랑스럽습니다.

김=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제인 하먼은…
미 민주당 하원의원 출신이다. 하버드대 로스쿨 졸업 뒤 연방상원 사법위원회 헌법소위 자문대표로 일하며 정계에 입문했다. 1992년 처음 하원의원에 당선된 뒤 9선까지 성공했다. 2011년 2월 의원직을 사퇴하고 미 4대 싱크탱크 중 하나인 우드로윌슨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정보·안보 분야 베테랑으로 클린턴이 당선되면 안보 부처 수장으로 중용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자녀 여덟 명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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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정리=유지혜 정치부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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