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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창조한다던 지도자의 국정 파행

중앙일보 2016.11.02 00:41 종합 30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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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술
JTBC 사회2부 탐사플러스팀장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의 50층짜리 신축 빌딩 입구엔 커다란 ‘친필 휘호석’이 있다.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글씨다. 휘호 서두를 장식한 단어는 ‘창조’다. 그 뒤를 ‘협동’과 ‘번영’이 따른다. 옛 전경련 회관을 준공한 1979년에 선물한 휘호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준공식을 20여 일 앞두고 서거했다.

그렇게 떠난 부친의 뒤를 이으려 했던 걸까. 박근혜 대통령은 ‘창조’란 테마에 전력투구했다. 전국 17곳에 완성한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아이콘이다. 지난주 대통령의 예산안 시정 연설에서 ‘창조’란 단어는 10여 차례나 등장했다. 3년8개월 국정 성적표를 자랑하면서 창조센터를 가장 앞에 내세웠다. 그만큼 애착은 남다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자찬이 있던 바로 그날 JTBC는 ‘최순실 파일’ 보도를 시작했다. 200여 개의 파일은 얘기하기도 부끄러운 ‘국정 농단’의 증거들이었다. 연설문 유출로 시작한 파일은 외교·안보·인사 개입 정황까지 꼬리를 물었다. 가장 힘을 줬던 창조경제에서도 최측근의 돈벌이 정황이 드러났다.

문제는 간단치 않다. 의혹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국정 동력’은 심하게 훼손되고 있다. 4년 가까이 추진한 상당수 정책의 ‘지속 가능성’이 의심받을 위기에 처했다. 사실 창조경제만 해도 이미 ‘불신과 불만’의 싹이 트고 있었다. JTBC 탐사 취재진이 최근 창조경제혁신센터 ‘중간평가’를 하면서 들은 얘기는 의미심장하다. A입주사 대표는 “정부가 바뀌면 지원금이 주는 게 아니냐”고 걱정했다. 한술 더 떠 B사 임원은 “센터가 계속 유지될 것으로 보느냐”고 반문했다. 심지어 “이번에 자금을 받았다고 다음 정부에서 ‘주홍글씨’가 찍히면 어떻게 하느냐”는 걱정까지 나왔다.

최순실 파일은 이런 ‘파국적 심리’에 기름을 부을 수밖에 없다. 다른 중앙 부처에서도 결정 장애, 정책 미루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청와대 뒤에 숨은 유령과 일한 것이냐”는 공무원의 자조가 나오는 판이다. 대통령 비선 파문의 대가는 생각하기조차 끔찍하다. 창조라는 이름을 내건 ‘신(新)산업’ 정책만 봐도 10년 먹거리를 캐내는 절체절명의 과제다. 마침 이번 정부 들어 세계적인 ‘4차 산업혁명’ 대조류가 일었다. 하지만 대통령이 자초한 국정 혼란이 모든 걸 뒤흔들 태세다.

대통령의 상황 인식이 더 절박해야 한다. 먼저 ‘성역 없는 기자회견’을 열어 직접 모든 걸 밝히고, 향후 국정에 대한 입장도 내놓아야 한다. ‘90초 사과’로는 어림도 없다. 나아가 ‘모든 연루자’를 대상으로 수사 기관의 납득 가능한 진상 규명이 이뤄지게 협조해야 한다. 그게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그래야 창조가 ‘파괴와 파국, 재앙적 리더십’으로 치닫는 걸 막을 수 있다. 부친의 휘호석에 이어 딸이 도모하려던 창조는 사초(史草)에 과연 어떤 기록으로 남게 될까. 대통령의 선택을 모두가 지켜보고 있다.

김준술 JTBC 사회2부 탐사플러스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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