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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슈퍼 사건’ 17년 만에 살인 누명 벗다

중앙일보 2016.10.29 01:06 종합 10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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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심에서 17년 만에 누명 벗고 무죄를 선고받은 임명선·강인구·최대열씨(왼쪽부터). [전주=김준희 기자]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 치사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한 지적장애인 3명이 17년 만에 누명을 벗었다.

재심서 억울한 옥살이 3명에 “무죄”
법원 “약자 방어권 보장 관심 둘 것”

전주지법 제1형사부(부장 장찬)는 28일 강도치사 혐의로 기소된 최대열(37)·임명선(37)·강인구(36)씨 등 3명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당시 최씨 등의 자백 진술이 일관되지 않고, ‘범인은 경상도 말씨를 썼다’는 피해자의 진술과 어긋나는 등 객관적으로 유죄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진범인 이모(48)씨의 자백과 유족이 촬영한 경찰 현장검증 영상 등이 유죄를 뒤집는 근거가 됐다.

최씨 등은 1999년 2월 6일 오전 4시쯤 전북 완주군 삼례읍 ‘나라슈퍼’에 침입해 유모(당시 76세) 할머니의 입을 막아 숨지게 하고 현금과 패물 254만원어치를 훔친 혐의로 기소됐다. 수사기관은 ‘진범이 따로 있다’는 제보를 무시했다. 한글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등 지적장애 3급 수준인 최씨 등은 각각 징역 3∼6년을 선고받고 복역을 마쳤다. 최씨 등은 지난해 3월 “경찰의 강압 수사 때문에 허위 자백을 했다”며 전주지법에 재심을 청구했고, 지난 7월 재심 개시가 결정됐다.

장찬 부장판사는 선고 직후 “17년간 크나큰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겪은 피고인들과 가족 여러분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법원이 피고인들이 지적장애 등으로 자기방어력이 부족한 약자들이라는 점을 감안해 자백 내용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지 면밀히 살피지 못한 것은 매우 아쉽고 유감스럽다”며 “이 사건을 계기로 법원은 앞으로 사회적 약자의 방어권 보장을 위해 좀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피고인들은 무죄 선고를 반겼다. 최대열씨는 “저희 엄마·아빠가 좋은 나라, 편한 나라로 가시게 됐다”며 “무거운 짐을 내리고 이제 새롭게 출발하겠다. 국민 여러분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숨진 유 할머니의 사위 박성우(56)씨는 “국가는 17년 동안 잘못을 인정하지도,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며 “사법부는 무죄를 선고하고 잘못을 인정했다. 이제 경찰과 검찰의 차례”라고 말했다.

박준영 변호사는 “명백한 조작 사건인 만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낼 방침”이라며 “이 사건과 관련된 경찰관과 검사, 법관에게도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검찰은 판결문을 검토한 뒤 항소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이날 법정 방청석에서 선고를 지켜본 진범 이씨는 전날 전주의 한 가정집에서 피해자 최성자(51·여)씨를 만나 “트라우마가 있었을 텐데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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