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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베를린필 지휘자로 활약한 카라얀, 냉전시대 CIA 문화공작 덕분이었다

중앙일보 2016.10.29 00:23 종합 22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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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냉전-
CIA와 지식인들

프랜시스 스토너
손더스 지음
유광태?임채원 옮김
그린비, 776쪽
3만7000원

도록이 아닌데도 미국 화가 잭슨 폴록(1912~1956)의 그림으로 시작하는 게 의미심장하다. 작품엔 이런 설명이 달렸다. ‘폴록의 추상 미술은 CIA의 문화전략으로 세계화된 대표적 사례다.’

영국 역사학자이자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인 지은이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냉전 시절인 1950~67년 서유럽에서 벌인 ‘문화 프로파간다’라는 비밀공작의 실체를 파헤친다. 세계문화자유회의라는 조직을 앞세워 지식인들이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아닌 미국적 사고방식을 받아들이도록 유도했다. ‘팍스 아메리카나’를 위한 문화전쟁 성격이다. 유로코뮤니즘의 이론적 바탕을 마련한 이탈리아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1891~1937)가 창안한 개념인 ‘문화적 헤게모니’를 오히려 CIA가 활용해 소련의 숨통을 누른 셈이다.

자유분방한 폴록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집권기에 문화 뉴딜정책의 하나로 가동했던 ‘연방미술프로젝트’에서 지원금을 받으면서 정부를 위해 일하게 됐다. 미국 주류 평론가들은 물감을 마구 흩뿌리는 그의 ‘액션 페인팅’ 기법에서 반공·자유 이데올로기와 자유기업가 정신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대척점에 서있는 작가로 평가받은 그는 보이지 않는 손의 도움에 힘입어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문제는 문화전쟁을 위해 나치 부역자들까지 사면해 활용했다는 점이다. 지휘자 빌헬름 푸르트벵글러(1886~1954)는 나치 시절 고위 공직을 맡았다. 하지만 종전 뒤 비공식 사면돼 계속 지휘봉을 잡았다. 오스트리아 출신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1989)도 무혐의 처리돼 베를린 필하모닉에 복귀할 수 있었다. 나치 당원이었고 당가를 콘서트에서 연주해 ‘나치 친위대 폰카라얀 대령’이라고 불렸던 전력도 흠이 되지 않았다. 베를린필은 냉전 시대 동독에 둘러싸인 서베를린에서 소련 전체주의로부터 서방의 자유와 문화를 지키는 상징적인 방파제 구실을 했다. CIA가 원하던 것이었다. 지은이는 이런 고발을 통해 ‘정의는 힘의 부속물인가’라는 화두를 던진다.

채인택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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