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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책] 길

중앙일보 2016.10.29 00:15 종합 23면 지면보기
중앙일보와 교보문고가 함께하는 ‘이달의 책’ 11월 키워드는 ‘길’입니다. 한 해가 두 달밖에 남지 않은 지금 여러분들이 서 있는 자리는 어디인가요.

신년 초 목표했던 계획들을 점검하며 숨을 고르기 좋은 계절입니다. 잠깐 멈춰 서서 주위를 둘러보고, 다시금 나아갈 힘을 얻는 데 보탬이 되길 바랍니다.
공자의 인 사상, 유럽 계몽주의의 씨앗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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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패스,
세상을 바라보는
혁신적 생각

마이클 푸엣·
크리스틴 그로스 로 지음
이창신 옮김, 김영사
304쪽, 1만4800원

서양의 동양철학에 대한 인식은 이중적이다. 낙후된 전통이라고 폄훼 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영원한 지혜로 떠받들기도 한다. 두 시각이 교차하는 가운데 벌어지는 세계사의 왜곡을 눈치채기가 쉽지 않다. 이 책의 저자인 하버드대 중국사 교수 마이클 푸엣은 “흥미로운 왜곡”이라고 했다.

마테오 리치를 비롯한 예수회 선교사들이 16세기 중국에 가서 기독교 전파만 한 것이 아니다. 동양문화를 서양에 역으로 알리는 역할도 했다. 지식인이 과거시험을 통해 관료가 되어 정치를 이끌고, 농민이나 귀족 모두에게 법률이 적용되는 중국의 제도는 당시 유럽에서 듣도 보도 못한 ‘선진 문물’이었다. 18세기 유럽을 휩쓴 계몽주의의 철학적·문화적 연원은 동양으로 소급된다. 아담 스미스가 중국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라고 평가한 것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동양의 앞선 문물을 흡수한 서양이 새롭게 국가를 세우고, 법체계를 확립하며, 강력한 군대까지 창설한 후 19세기에 들어서는 오히려 동양을 식민지로 만들어버렸다. 영토만 침략한 것이 아니라 역사마저 왜곡했다. 동양은 본래 정체되고 낙후한 곳으로 간주하는 서양 근대의 이데올로기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21세기 들어 중국의 부상과 함께 동양철학도 새롭게 재조명된다. 저자는 세계사 속에서 중국의 위상을 재정립하려고 한다. 그런 흐름에 서서 동양철학에 대한 왜곡과 오해도 바로 잡으려고 한다. 이 책은 『논어』 『맹자』 『도덕경』 『장자』 등에 나타난 동양사상의 핵심을 21세기 서양인을 대상으로 하여 이야기 하듯 해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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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좋은 삶을 살 것인가’는 인류에게 주어진 영원한 숙제다. 하버드대 교수인 저자는 그동안 서양에서 왜곡돼 온 동양철학에서 그 답을 찾아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사진 김영사]

패스(path)는 ‘길’이다. 길은 도(道)다. 저자는 동양철학의 지향점을 ‘좋은 삶’ 으로 설명한다. 원서의 부제는 ‘좋은 삶으로 가는 영원한 코드 풀기’(Unlocking the timeless code to a good life).

서양인들은 추상적이고 이성적인 사유에 익숙하다. 이에 대해 저자는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길을 제시한다.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일상의 현실을 헤쳐나가며 행복을 가꿔나가기 위해선 감정의 조절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마음의 수련을 통해 감정 조절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했다. 공자 철학의 키워드인 인(仁)을 타인에게 제대로 반응하는 능력이자 선한 감정이라고 풀이했다. 타인에게 제대로 반응하는 것은 상황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고 하면서, 삶의 복잡성을 이해하는 것이 동양적 사유의 출발임을 확인시키고 있다. 이미 삶의 대부분이 서양화된 오늘의 한국인에게도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 줄 것 같다.

함께 읽을만한 책으로 황태연 동국대 교수가 쓴 『패치워크문명의 이론』을 추천한다. 황 교수가 『공자와 세계』(전5권), 『감정과 공감의 해석학』(전2권·이상 청계출판사) 등에서 앞서 선보인 자신의 문명이론을 정식화했다. 공자 철학이 서양사에 미친 영향을 집대성해 보여준다.
 
[S BOX] 하버드대학의 지성 사로잡은 두 명의 마이클 교수 특강
하버드대에서 두 마이클의 철학 강의가 인기다. 하나는 마이클 샌델의 서양철학 특강. 2010년 국내에 소개된 『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하다. 다른 하나는 마이클 푸엣의 동양철학 특강. 푸엣은 2013년 ‘하버드대 최고 교수상’을 받으며 샌델의 인기에 도전하고 있다. 『더 패스』는 푸엣의 학부 강의를 대중적으로 풀어낸 책이다.

샌델은 윤리적 판단의 딜레마를 설정해 흥미를 끌었다. 예컨대 전차 실험 같은 것이다. 철로의 전차가 다섯 사람을 들이받게 놔두겠는가, 아니면 스위치를 당겨 선로를 바꿈으로써 한 사람만 죽게 하겠는가. 이런 딜레마를 다룬 문제에 대해 마이클 푸엣은 우리의 일상생활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 지적 게임일 뿐이라고 한다. 대신 그는 인간 관계와 처한 상황의 복잡성을 다양하게 보여준다. 가정·학교·직장·사회단체 등에서 삐걱거리는 관계를 개선하는 지혜를 찾아보자고 한다.

배영대 문화선임기자 balance@joongang.co.kr
 
성공한 천재의 공통점 ‘그릿’ 키울 방법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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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릿
엔젤라 더크워스 지음
김미정 옮김
비즈니스북스
416쪽, 1만6000원

어느 분야에서든 재능 있는 인재를 마다하는 곳은 거의 없을 테다. 미디어에서는 범인보다 천재의 이야기에 더 집중한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이런 인간들의 성질을 파악하고서 명언을 남겼다. “우리의 허영심과 자기애가 천재 숭배를 조장한다. 왜냐하면 천재를 마법적인 존재로 생각한다면 우리 자신과 비교하고 우리의 부족함을 느끼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의 심리학과 교수인 저자는 인간의 재능과 성공의 상관관계를 파헤친 결과, ‘그릿(GRIT)’을 발견했다. 그릿의 사전적 정의는 투지, 끈기, 불굴의 의지 등을 의미한다. 자신이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를 끝까지 해내는 힘이라고 했다. 저자는 고등학교 교사 시절 IQ 높은 학생이 꼭 좋은 성적을 거두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 재능이나 성적보다 훨씬 더 중요한 다른 요인이 작용한다’고 생각해 심리학을 공부하고, 그릿을 추적한다. 조사 결과 미국 육군사관학교의 혹독한 집중훈련기간을 버티는 생도들의 그릿 점수는 높았다. 영어 스펠링을 맞추는 대회에서 천재적인 암기 재능이 있는 아이보다 그릿이 높은 아이들이 나중 라운드까지 진출했다. 10년이 넘게 이어진 그릿 연구로 저자 역시 ‘천재에게 주는 상’으로 유명한 맥아더 펠로상을 수상한다.

그렇다면 그릿은 타고나야 하는 걸까. 기를 수 있는 것일까. 저자는 그릿을 학습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당찬 포부만으로는 부족하다. 최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목표 체계를 단계별로 정리하는 게 중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열정이 없다고 낙담할 필요 없다. 열정이 하늘의 계시처럼 오는 게 아니기에 발견하고 키우면 된다. 토끼와 거북이의 우화 같은 이야기가 새삼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은 저자가 연구하고 정리한 생생한 사례 및 데이터 덕이다. 2013년 저자의 테드(TED) 강의는 1000만 가까운 조회수를 세웠고, ‘그릿’은 미국에서 핫 키워드가 됐다. 명사들의 극찬이 책 도입부에 가득하다. 로렌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교육과 경영 현장, 독자들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을 책”이라고 호평했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달팽이처럼 움츠린 삶, 편의점서 만난 남과 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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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인간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살림
192쪽, 1만2000원

지금은 덜하지만 일본의 주요 문학상 수상 소설이 한국 시장에서도 잘 먹히던 시절이 있었다. 아쿠타가와상은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다는 ‘주요’ 중에서도 주요. 소개하는 책은 올해 수상작이다.

소설은 우선 형식부터가 제목에 잘 들어맞는다. 독파하는데 두 시간이 채 안 걸렸다. 잘 읽히는 일본소설에 대개 엇비슷한 느낌이 있지만 편의점 상품처럼 무해하고 반듯한 이야기를 소비한 느낌이랄까.

소설 제목은 평범해 보이지만 핵심적인 주제가 온전히 담겨 있다. 단순히 편의점에서 일하거나 애용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다. 인생 자체가 편의점과 떼려야 뗄 수 없게 된 기묘한, 어찌 보면 서글픈 인물의 이야기다.

주인공 후루쿠라 게이코는 어렸을 때부터 특이한 여자아이였다. 인간의 종자라면 양육과정에서 마땅히 체득했어야 했을 인륜에 대한 감각이나 분별심 같은 게 결여돼 있다. 부족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없는 상태다. 그래서 하루는 공원에서 죽은 새를 발견하자 새 꼬치구이나 닭튀김을 좋아하는 아빠와 여동생을 떠올리고는 엄마에게 구워먹자고 말해 대경실색시킨다. 식용과 애틋한 애완용의 차이를 구분하는 관습적이고 문화적인 분별력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인습과 선험적 가치관으로도 ‘오염되지’ 않은 게이코의 무구한 시선은 거꾸로 우리가 정상이라고 여기는 사회생활의 예절과 인간적 도리가 과연 절대적으로 정당한지를 묻는 장치다.

몇 차례 기이한 체험을 통해 스스로 정상인 사이의 ‘이물질’이라 여기고 최대한 수동적인 달팽이 같은 삶으로 움츠러든 게이코에게 편의점은 이상적인 공간이 아닐 수 없다. 감정과 속마음을 드러낼 필요 없고, 오히려 고객에게 언제나 미소를 날릴 준비가 돼 있는 가면 뒤에 내키는 대로 숨을 수 있고, 특별한 재능과 순발력 없이도 남만큼만 따라가면 동등한 정상인 대접을 받을 수 있다.

그런 게이코에게 어느 날 자신보다 더한 강적이 나타난다. 서너 살 아래인 백수 남성 시라하다. 둘의 만남이 빚어내는 반전의 드라마가 소설의 백미다. 작가는 주인공이 깨우치도록 하지 않는다. 편의점과 공동운명임을 확인하는 결말이 지극히 현실적이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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