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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칼럼] 중년의 수저는 무슨 색깔일까

중앙일보 2016.10.29 00:01 종합 29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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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환
고려대 국어국문과 3년

아버지는 50대 후반에 택시기사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이제 4년 차인 아버지의 식사는 늘 불규칙하다. 집을 지나치는 시간이 식사 시간이다. 어느 날 늦은 점심을 아버지와 함께했다. 조용히 밥을 뜨던 내가 한마디 여쭸다. “뭐가 제일 힘드세요?” 바쁘게 수저를 들던 아버지가 씁쓸히 웃으며 대답했다. “나를 불신하는 말들.”

아버지의 말씀은 이랬다. 택시는 관할 지역 밖에서는 영업할 수 없다. 단 출발점이나 도착점이 관할 지역인 경우는 상관이 없다. 이를테면 부천 택시가 부천에서 서울로 가는 손님을 태울 수 있다. 또 돌아오는 길에 부천행 손님을 태우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부천 택시가 서울에서 서울로 가는 손님을 태우면 규정 위반이다. 아버지는 타 지역에서 탄 손님이 지역 내 이동을 원할 경우 규정을 설명하고 승차가 불가함을 알려준다. 많은 사람이 이 규정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은 알겠다며 내린다고 한다. 하지만 몇몇 사람은 아버지가 승차 거부를 한다고 생각하며 언성을 높인다. 스마트폰을 꺼내 아버지의 기사등록증과 번호판을 찍기도 한다. 아버지는 다시 한 번 규정을 설명한다. 이쯤에서 ‘당신 같은’이라는 말이 들린다. ‘당신 같은’ 승차 거부, ‘당신 같은’ 택시기사. 아버지는 그렇게 ‘당신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다. 정직하게 살고자 평생을 애쓰신 아버지의 수저는 이내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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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물론 정직하지 못한 택시기사도 많다. 몇몇은 그들에게 덴 경험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생각해보자. 그 몇몇이 봤던 수많은 택시기사의 얼굴이 모두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진 않았으리라. 아버지는 ‘당신 같은’ 몇몇의 손님을 대하면서도 그들을 똑같이 생각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다. 모든 택시기사를 불신할 필요는 없다. 수많은 택시기사는 운전대에 삶을 짊어진, 정직한 가장일 뿐이다.

아들의 얼굴엔 걱정이 가득하다. 그러나 식사를 끝낸 아버지는 가볍게 수저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래도 아까 어떤 손님은 덕분에 편하게 왔다며 안전운전 하라더라. 그런 게 큰 힘이 돼.”

우리는 오늘도 일상에서 택시기사·경비원·자영업자·청소노동자의 모습을 한 중년들을 만난다. 여기저기 내몰려도 아직은 책임질 게 많은,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어머니다. 식사를 마친 아버지의 수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자식 세대의 퍽퍽한 삶이 수저의 색깔로 덧칠되는 세상에서, 중년의 수저도 메마른 흙빛으로 변해 가고 있다. 오늘은 위로 한마디로 그 메마름을 적셔보는 것은 어떨까.

이동환 고려대 국어국문과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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