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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다마’로 바뀐 박근혜 대통령 호칭

중앙일보 2016.10.29 00:01 종합 30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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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영준
베이징 총국장

얼마 전 한·중 관계를 주제로 상하이에서 열린 심포지엄에 토론자로 참가했다. 일반 방청객 없이 양국 학자·전문가들만 참가한 비공개 행사였던 까닭에 양국 현안에 관한 비교적 솔직한 토론이 오갔다. 목소리를 높여가며 논전을 벌인 현안은 단연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였다.

중국 측 좌장 격이었던 한 원로 학자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사드는 결코 중국이 양보할 수 없는 사안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곧 퇴임하면 ‘큰 변화’의 기회가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이 말 속에 정부 공식 발표나 관영 언론에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중국의 속내가 담겨 있다고 본다. 한국의 대 선 향방을 예상하며 사드 문제에 대한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다는 얘기다. 사드 배치를 서두른다고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실제 예정보다 늦어지기 십상이고 그 사이 대선의 쟁점이 되어 국민의 의사를 다시 묻게 되는 상황을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그 학자도 한국에서 이처럼 빨리 ‘큰 변화’가 일어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최순실 사건을 중국에서 바라보는 심정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중국 매체와 인터넷은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희대의 정치드라마를 전문번역 수준으로 낱낱이 퍼나르고 있다. 한때 친근감을 담아 ‘다제(大姐·큰누님)’라 불리던 박 대통령의 호칭은 이미 ‘다마(大·아줌마)’로 바뀌었다. 한 중국 언론인은 “구중궁궐의 밀실에서 일어나는 궁정 야사에 익숙하기로 따지면 중국인을 따라올 민족이 없을 텐데 이번 사건만큼은 아무리 기사를 읽어도 이해가 안 된다”며 도움을 청해왔다. 그들은 이번 사건을 흥밋거리로만 보지 않는다. 중국 관변 학자들은 한국 정국의 추이와 사드를 포함한 한·중 현안 대응 시나리오를 실시간으로 작성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전대미문의 국면이 어떤 결말에 이를진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박 대통령이 내치(內治)는 물론 외교에서도 힘을 발휘하기 어렵게 됐다는 점이다. 미르인지 미륵인지 무슨 재단에 잘못 흘러간 돈이라면 지금이라도 바로잡고 책임자를 처벌하면 된다. 하지만 상대가 있는 외교·안보 정책은 사정이 다르다. 이대로라면 정상회담에 나간들 외국 정상을 상대로 어떤 약속을 할 수 있겠는가. 한시바삐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습 방안을 마련해 국정공백을 막는 게 급선무인 이유다.

독설로 유명한 환구시보는 26일자에서 중국 학자의 입을 빌려 이런 분석을 내놓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외교 정책은 최근 2년간 충동적이고 (이성이 아닌) 정서에 좌우되는 경향을 보였는데 그게 최순실의 영향 아니었나”라는 것이다. “2년 안에 북한이 붕괴한다는 말을 최씨가 하고 다녔다”며 현 정부의 대북 강경정책과 연관 지은 야당 원내대표의 발언에 힌트를 얻은 것처럼 보인다. 여태까지 설마했던 시중의 소문들이 모두 사실로 드러나 입을 다물 수 없는 상황이지만 제발 이 소문만은 사실이 아니기를 바란다. 이 이상 더 어떻게 참담해질 수 있단 말인가.

예영준 베이징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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